제향악, 제사악
제례에 연주되는 음악과 춤
제사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의미가 있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생명을 부여받고 땅의 소산물로 자라며, 조상에게서 혈기를 받고, 성현(聖賢)의 가르침으로 사람답게 살게 되었으므로, 이에 제사를 지내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하였다. 슬픔을 표하는 흉례(凶禮)의 제사에서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므로, 제례악과 관련된 것은 길례(吉禮) 제사이다.
○ 아악을 쓰는 제사
풍운뇌우는 천사(天祀)이고, 사직은 지제(地祭)이며, 종묘ㆍ문묘ㆍ선농ㆍ선잠ㆍ우사(雩祀)는 인향(人享)이다. 세종 초기만 하더라도 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영신(迎神)에 황종궁 하나만을 집례(執禮)의 말에 따라 3번 또는 2번이나 1번을 연주했으며, 전폐(奠幣)~철변두(撤籩豆)의 악조도 음양합성(陰陽合聲)에 어긋났는데, 세종 중기에 『주례(周禮)』에 근거하여 천사ㆍ지제ㆍ인향의 영신악을 각각 6성ㆍ8성ㆍ9성으로 만들고, 영ㆍ송신 및 전폐~철변두의 악조를 바로잡았다.
『주례』에서는 천사(天祀)의 영신악으로 〈원종위궁(圜鍾爲宮)〉ㆍ〈황종위각(黃鍾爲角)〉ㆍ〈태주위치(太簇爲徵)〉ㆍ〈고선위우(姑洗爲羽)〉를 언급했는데, 조선에서는 황종위각을 황종균(黃鍾均)의 각성인 고선을 기본음으로 하는 고선궁, 태주위치를 태주균의 치성인 남려를 기본음으로 하는 남려궁, 고선위우를 고선균의 우성인 대려를 기본음으로 하는 대려궁으로 풀이하였다. 원종위궁은 그대로 썼는데, 원종궁은 협종궁과 서로 통하는 용어이다. 나머지 지제와 인향도 같은 방식으로 각ㆍ치ㆍ우조를 모두 궁조로 풀이하였다.
음양합성은 해와 달이 매달 그믐에 12차(十二次)에서 만나 오른편으로 돌고, 북두칠성 자루가 12신(十二辰)에서 운행하여, 왼쪽으로 도는 것을 본뜬 제도로서, 양률(陽律: 황종ㆍ태주ㆍ고선ㆍ유빈ㆍ이칙ㆍ무역)은 왼쪽으로 돌고, 음려(陰呂: 대려ㆍ응종ㆍ남려ㆍ임종ㆍ중려ㆍ협종)는 오른쪽으로 돌아 서로 만난다. 따라서 11월에 해당하는 황종은 12월에 해당하는 대려와 합하고, 1월의 태주는 10월의 응종과 합하는 식이다. 전폐~철변두의 악조는 음양합성제도를 따랐다.
원나라 임우(林宇)의 「대성악보(大成樂譜)」에 근거하여 제례악곡을 마련하여 1430년(세종 12) 윤12월에 새 아악보를 완성하였다. 이때 제정한 음악이 현재 문묘 제사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절차 | 천사: 풍운뇌우 | 지제: 사직 | 인향: 문묘ㆍ선농ㆍ선잠ㆍ우사 | ||||
영신(迎神) | 헌가 | 협종궁 3성 | 문무(文舞) | 임종궁 2성 | 문무 | 황종궁 3성 | 문무 |
고선궁 1성 | 유빈궁 2성 | 중려궁 2성 | |||||
남려궁 1성 | 응종궁 2성 | 남려궁 2성 | |||||
대려궁 1성 | 유빈궁 2성 | 이칙궁 2성 | |||||
전폐 | 등가 | 대려궁 | 문무 | 응종궁 | 문무 | 남려궁 | 문무 |
진찬 | 헌가 | 황종궁 | 태주궁 | 고선궁 | |||
초헌 | 등가 | 대려궁 | 문무 | 응종궁 | 문무 | 남려궁 | 문무 |
문무퇴무무진(文舞退武舞進) | 헌가 | 황종궁 | 태주궁 | 고선궁 | |||
아헌 | 헌가 | 황종궁 | 무무(武舞) | 태주궁 | 무무 | 고선궁 | 무무 |
종헌 | 헌가 | 황종궁 | 무무 | 태주궁 | 무무 | 고선궁 | 무무 |
철변두 | 등가 | 대려궁 | 응종궁 | 남려궁 | |||
송신(送神) | 헌가 | 송협종궁 | 송임종궁 | 송황종궁 |
송신악의 협종궁ㆍ임종궁ㆍ황종궁에 ‘송(送)’자를 붙인 것은 영신악으로 쓰이는 협종궁ㆍ임종궁ㆍ황종궁과 악조는 같지만 악곡이 다름을 표시한 것이다. 조선 전기에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는 각각 매 일(佾)이 8인씩인 육일(六佾), 즉 48인으로 구성되었으나, 후기에는 매 일이 6인씩인 육일, 즉 36인으로 구성되었다. 문무는 약(籥)과 적(翟:꿩깃)을 들고 추고, 무무는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춘다.
○ 아악을 쓰다가 속악으로 바꾼 제사
1463년(세조 9)까지는 종묘에서 아악을 썼으나, 1464년(세조 10)부터 세종 후기에 창제된 《보태평(保太平)》ㆍ《정대업(定大業)》을 제사에 알맞게 고치고, 진찬ㆍ철변두ㆍ송신악을 보충하여 종묘에 썼으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영신 | 헌가 | 보태평지악: 희문(熙文) 9성(成) | 보태평지무: 희문 (9變) |
전폐 | 등가 | 보태평지악: 희문 | 보태평지무: 희문 |
진찬 | 헌가 | 풍안지악(豊安之樂) | |
초헌 | 등가 | 보태평지악: 희문. 기명(基命) 귀인(歸仁) 형가(亨嘉)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龍光) 정명(貞明) 대유(大猷) 역성(繹成) | 보태평지무 |
아헌 | 헌가 | 정대업지악: 소무(昭武) 독경(篤.慶)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분웅(奮雄) 순응(順應) 총수(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영관(永觀) | 정대업지무 |
종헌 | 헌가 | 정대업지악: 아헌과 같음 | 정대업지무 |
철변두 | 등가 | 옹안지악(雍安之樂) | |
송신 | 헌가 | 흥안지악(興安之樂) | |
문덕을 찬미한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는 약(籥)과 적(翟)을 들고 추며, 무공을 찬미한 《정대업지무》는 칼, 창, 활과 화살을 들고 추는데, 각각 매 일이 6인씩인 육일, 즉 36인으로 구성되었다.
○ 속악을 쓰는 제사
문소전은 돌아간 이를 생시처럼 섬기며 친애(親愛)의 정을 펴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태조와 4대조를 모시는 원묘(原廟)이다. 문소전에서는 참신(參神)과 사신(辭神)에는 〈낙양춘(洛陽春)〉, 초헌ㆍ아헌ㆍ종헌에는 각각 〈환환곡(桓桓曲)〉ㆍ〈유황곡(維皇曲)〉ㆍ〈정동방곡(靖東方曲)〉을 연주하였다. 〈낙양춘〉은 송(宋)에서 들어온 당악이고, 〈환환곡〉은 당악 〈중강령(中腔令)〉에 맞추어 부른 곡이며, 〈유황곡〉과 〈정동방곡〉은 각각 고려 향악인 〈풍입송(風入松)〉과 〈서경별곡(西京別曲)〉에 맞추어 부른 곡이다.
성리학 이해가 점차 깊어지는 중종대(1506~1544) 이후 원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고, 1592년(선조 25) 왜란으로 문소전 위판을 강화에 봉안하였다가, 임금이 서울로 돌아온 후 원묘를 다시 설치하지 않아 폐지되었다.
왕비가 왕보다 먼저 승하한 경우 상기(喪期)를 마친 뒤라도 혼전(魂殿)에 계속 모시었다가, 훗날 왕의 승하 후 함께 종묘에 부묘(祔廟)하였는데, 상기를 마치고 부묘하기 전의 기간에 혼전에 음악이 연주되었다. 악장은 왕비를 찬미하는 내용으로 새로 지었지만 악곡은 문소전 제례악을 썼다.
1446년(세종 28), 1474년(성종 5), 1515년(중종 10)에 각각 승하한 세종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성종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중종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혼전인 휘덕전(煇德殿)ㆍ소경전(昭敬殿)ㆍ영경전(永慶殿)이 이에 해당한다.
1600년(선조 33)에 승하한 선조비 의인왕후(懿仁王后) 혼전인 효경전(孝敬殿)에서는 난리 후라 경황이 없어서인지, 종묘례와 원묘례를 혼합하여 영신과 전폐에 《보태평》중 〈희문〉을 연주하고, 초헌ㆍ아헌ㆍ종헌에서는 문소전 제례 악곡을 연주하였다. 1680년(숙종 6)과 1701년(숙종 27)에 각각 승하한 숙종 초비 인경왕후(仁敬王后)와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 혼전인 영소전(永昭殿)과 경녕전(敬寧殿)에서는 종묘제례악인《보태평》중의 악곡을 발췌하여 연주하였다.
대장기(大將旗)에 지내는 둑제(纛祭)에서는 초헌ㆍ아헌ㆍ종헌에 각각 〈납씨가(納氏歌)〉를 부르며 〈간척무(干戚舞〉ㆍ〈궁시무(弓矢舞)〉ㆍ〈창검무(槍劍舞〉를 추고, 철변두에 〈정동방곡〉을 불렀다. 〈납씨가〉는 이성계가 원나라의 무장인 납씨를 물리친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악장을 고려 향악인 〈청산별곡(靑山別曲)〉에 맞추어 부른 곡이다.
정조의 생부인 장헌세자 사당인 경모궁(景慕宮) 제례에서는 1778년(정조 2) 영조 상(喪)을 마친 후부터 《보태평》 중 〈희문〉, 〈기명〉ㆍ〈역성〉, 《정대업》 중 〈소무〉ㆍ〈독경〉ㆍ〈영관〉 및 종묘 제례의 진찬곡을 줄여서 연주하였으며, 관왕묘(關王廟)에서는 1786년(정조 10)부터 《정대업》 중 〈소무〉ㆍ〈분웅〉ㆍ〈영관〉을 연주하였다.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이 현재까지 문묘와 종묘에서 연주되고 있다. 사직제는 1910년 일제강점으로 폐지되었다가 1988년에 다시 거행되었고, 200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매년 정기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경모궁과 문소전은 현재 없어졌지만 이 제사에 쓰였던〈낙양춘〉ㆍ〈유황곡〉ㆍ〈정동방곡〉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으니, 사실 이 곡들은 조회ㆍ연향에서도 쓰인 곡들이다. 세종 후기에 연향악으로 창제된 《정대업》ㆍ《보태평》이 세조대부터 연향과 제례에 같이 쓰이다가 조선 후기에는 아예 제례악으로 굳어져 혼전과 경모궁 및 관왕묘에서도 연주된 점이 흥미롭다.
『세종실록』 『악학궤범』 장사훈, 『국악논고(國樂論攷』, 서울대출판부, 1966. 장사훈, 『증보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김문식ㆍ김지영ㆍ박례경ㆍ송지원ㆍ심승구ㆍ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문화사적 고찰』, 민속원, 2018.
김종수(金鍾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