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음 분류법
동아시아 전통의 악기 분류법의 하나로 악기의 8가지 발음체 재료에 따라 다른 음색 분류법
동아시아 전통의 악기 분류법 중의 하나이다. 악기의 소리를 악기의 발음체가 되는 재료인 쇠(金), 돌(石), 명주실(絲), 대나무(竹), 바가지(匏), 흙(土), 가죽(革), 나무(木)의 8가지에서 나오는 음색을 달리하는 구분법이다. 그 구분을 8가지로 하는 이유는 팔괘(八卦), 팔풍(八風), 팔방(八方)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팔음 악기가 전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악학궤범』에 이론이 소개되었으며 악기도감의 설치로 자체 생산으로 팔음을 구비할 수 있게 되었다. 『동국문헌비고』에서 팔음분류법을 적용한 이후 근대시기에는 이왕직아악부의 저서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전통적 악기분류법으로 소개되는 정도에 그친다.
팔음은 중국의 오랜 전통의 악기 분류법으로서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아악(雅樂) 연주와 관련하여 등장한다. 1116년(예종 11) 대성아악 유입 시 팔음의 악기가 전래되었다가 고려 명종대에는 사부(絲部)와 토부(土部)의 악기가 누락되었던 상황이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한다. 조선 건국 후 팔음의 악기를 갖추기 어려웠지만 세종대에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하여 편종(編鐘)과 편경(編磬)을 비롯한 여러 악기 제작을 성공한 결과 국산화가 실현됨으로써 팔음이 구비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팔음에 해당하는 여러 악기를 보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수리하거나 새로 만드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팔음의 악기를 제례 악현에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을 뿐 아니라 포부(匏部)를 충족하는 생황의 경우 전란 후 떨림판[簧葉] 제작 기술 전승 부재 때문에 중국산을 수입하여 쓰기도 하였다.
○ 구성 요소 및 원리 조선시대에는 『악학궤범』 권1에서 처음 팔음의 개념과 그 사상적 배경을 진양(陳暘)의 『악서(樂書』를 인용하여 소개하였다. 이 그림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8音 | 혁 | 포 | 죽 | 목 | 사 | 토 | 금 | 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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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方 | 북 | 동북 | 동 | 동남 | 남 | 서남 | 서 | 서북 | |||||
8卦 | 감 | 간 | 진 | 손 | 이 | 곤 | 태 | 건 | |||||
8節 | 동지 | 입춘 | 춘분 | 입하 | 하지 | 입추 | 추분 | 입동 | |||||
8風 | 광막풍 | 융풍 | 명서풍 | 청명풍 | 경풍 | 양풍 | 창합풍 | 부주풍 | |||||
간지 | 자 | 축 | 인 | 묘 | 진 | 사 | 오 | 미 | 신 | 유 | 술 | 해 | |
12율 | 황 | 대 | 태 | 협 | 고 | 중 | 유 | 임 | 이 | 남 | 무 | 응 |
이어지는 진양의 『악서』를 인용한 팔음의 팔괘 팔풍의 배치, 절기와 팔음에 해당하는 악기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금석사죽포토혁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금(金) | 석(石) | 사(絲) | 죽(竹) | 포(匏) | 토(土) | 혁(革) | 목(木) | |
태(兌) | 건(乾) | 이(離) | 진(震) | 간(艮) | 곤(坤) | 감(坎) | 손(巽) | |
(八卦) | ||||||||
(八風) | 閶闔風 | 不周風 | 景風 | 明庶風 | 融風 | 凉風 | 廣漠風 | 淸明風 |
(八節) | 秋分 | 立冬 | 夏至 | 春分 | 立春 | 立秋 | 冬至 | 立夏 |
악기 | 종(鍾) | 경(磬) | 금(琴) 슬(瑟) |
관(管) 약(籥) |
생(笙) 우(竽) |
훈(塤) 부(缶) |
도(鼗) 고(鼓) |
축(柷) 어(敔) |
한편 『악서』를 인용한 부분으로 팔음이 내는 소리는 어떤 소리이며 이 소리에 따라 군자가 들으면 어떤 정치성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금(金)에서 혁(革)까지는 성(聲이)라고 하고 군자가 들으면 반드시 연관된 신하가 생각난다데 비해 토에서 목까지는 음(音이)라고 하였으며 음을 바르게 들으면 어떤 마음이 생긴다고 하였다.
팔음 | 소리의 표현 | 떠오르는 마음의 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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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聲(쇠 소리) | 鏗鏗(견견) | 호령하는 소리 | 武臣(무신) | 무신 |
石聲(돌 소리) | 磬磬(경경) | 가벼운 소리 | 封疆之臣(봉강지신) | 봉강에서 죽은 신하 |
絲聲(줄 소리) | 哀哀(애애) | 애처로운 소리 | 志義之臣(지의지신) | 뜻 있는 신하 |
竹聲(대나무 소리) | 濫濫(람람) | 넘치는 소리 | 畜聚之臣(축취지신) | 군중을 기르는 신하 |
革聲(가죽 소리) | 讙讙(환환) | 시끄러운 소리 | 將帥之臣 | 장수의 신하 |
土音(흙 소리) | 濁濁(탁탁) | 탁한 소리 | 寬厚 | 너그럽고 후함 |
匏音(바가지 소리) | 啾啾(추추) | 청아한 소리 | 恭愛 | 공경하고 사랑함 |
木音(나무 소리) | 直直(직직) | 곧은 소리 | 絜己 | 자기를 깨끗이 함 |
『악학궤범』 권1에서는 팔음구분법에 대해 사상적인 배경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권6에서 권7의 악기부분에서는 팔음에 의한 구분법을 쓰지 않고 아악, 당악, 향악 구분법으로 사용하였다. 물론 팔음구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악기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된 용례는 얼마든지 있다. 팔음구분법을 실제로 적용한 문헌 사례는 『증보문헌비고』의 「악고(樂考)」편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체제는 진양의 『악서』와 같다. 이는 크게 팔음구분법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세부 항목으로 아부(雅部) 속부(俗部) 호부(胡部)로 다시 나누어서 악기를 배치하는 체제에 따라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아부(雅部) 속부(俗部)로 나누었다.
팔음 | 아속 | 해당 악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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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之屬 | 雅部 | 편종(編鐘), 특종(特鐘), 순(錞), 요(鐃), 탁(鐸), 탁(鐲) |
俗部 | 방향(方響), 향발(響鈸), 동발(銅鈸) | |
石之屬 | 雅部 | 경(磬) |
絲之屬 | 雅部 | 금(琴), 슬(瑟) |
俗部 | 현금(玄琴), 가야금(伽倻琴), 월금(月琴), 해금(奚琴),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 대쟁(大箏), 아쟁(牙箏), 알쟁(戛箏) | |
竹之屬 | 雅部 | 소(簫), 약(籥), 관(管), 적(篴), 지(篪) |
俗部 | 당적(唐笛),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笒), 통소(洞簫), 당필률(唐觱篥), 태평소(太平簫) | |
匏之屬 | 雅部 | 생(笙), 우(竽), 화(和) |
土之屬 | 雅部 | 훈(塤), 상(相), 부(缶), 토고(土鼓) |
革之屬 | 雅部 | 진고(晉鼓), 뇌고(雷鼓), 영고(靈鼓), 노고(路鼓), 뇌도(雷鼗), 영도(靈鼗), 노도(路鼗), 건고(建鼓), 삭고(朔鼓), 응고(應鼓) |
俗部 | 절고(節鼓), 대고(大鼓), 소고(小鼓), 교방고(敎坊鼓), 장고(杖鼓) | |
木之屬 | 雅部 | 부(拊), 축(柷), 어(敔), 응(應), 아(雅), 독(牘), 거(簴), 순(簨), 숭아(崇牙), 수우(樹羽) |
근대로 넘어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지낸바 있는 함화진의 저술서 『조선악개요』(1917), 『조선악기편』(1933)이나 이왕직아악부의 『조선악대요』(1934) 등에서도 악기 소개나 해설에서 팔음구분법을 쓰고 있다. 이에 비해 국학자 안확(安廓)은 관현타 분류법을 사용하여 대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 국악개론서에서는 이 분류법을 소개만 하고 있을 뿐 이러한 구분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팔음구분법은 동양 전통의 악기분류법으로 악기의 구조, 연주법 등의 분류법과는 달리 악기가 내는 음색을 중요한 기준법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음색은 악기의 재료에서 결정된다. 팔음은 악기의 8가지 재료를 기준으로 하지만 악기는 대개 한 가지 재료로만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한다면, 8가지 주재료에서 나오는 음색으로 구분하는 악기 분류법이다. 이런 동양 전통의 분류법이 현대에 와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분류법이 아닌 이유는 대분류의 가짓수가 다소 많다는 점과 소속 악기의 편중이 커서 불균형하다는 단점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관ㆍ현ㆍ타 분류가 그 기준의 일관성이 없다는 한계를 극복한 발음체에 의한 분류법으로서의 호른보스텔ㆍ작스 분류법은 팔음 분류법이 특정한 음색을 내는 결정적인 발음체의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분된다는 점에서 상통해 있다.
『增補文獻備考』 권 90 「樂考」1 <律呂製造> ‘八音’ 『增補文獻備考』 권 95 「樂考」6 <樂器> 김종수 역, 『증보문헌비고』 「악고-상」, 국립국악원, 1994. 한화진, 『조선악기편』, 1933. 히타가 에스케(일고영개), 『이왕가악기』, 1939. 김수현, 「동아시아 전통 악기구분법 팔음(八音)의 악기학적 연구」, 『조선의 악률론과 근대 음악론』, 경인문화사, 2021.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