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仙道), 풍류도(風流道), 거문고 음악사상
거문고(금) 타는 법, 연주 규범, 연주자가 사상적으로 깊이 깨우친 근본적인 이치 또는 그런 경지에 관한 이론적ㆍ실천적 개념
거문고(금) 실기에 관한 연주법, 거문고 연주 예의와 절차에 관한 마땅히 지켜야 할 연주 규범, 거문고 및 거문고 음악사상에 관한 연주자가 연주 과정에서 사상적으로 깊이 깨우친 근본적인 이치 또는 도달하고자 한 높은 경지를 포괄하는 이론적, 실천적 개념이다. 좁은 의미로 거문고 음악사상을 말한다.
원래 금도(琴道)는 중국의 고금(古琴)을 대상으로 발전한 전통적인 개념으로 유교보다 도교에 더 가깝다고 여겨지지만 고금이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이 철학들의 결합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아들 영헌왕 주권(永獻王 朱權, 1378~1448)이 쓴 고금보인 『신기비보(神奇秘譜)』(1425) 서(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금은 성인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정사를 지도하며, 육기를 화합하고, 옥촉(玉燭, 즉 태평성세)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는 실제로 천지의 신령한 기물이며, 태고의 신비로운 물건이다. 곧, 중국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소리이며, 군자가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고, 오직 봉액(선비가 입는 도포)을 입고,황관(도사가 쓰는 관)을 쓴 이들에게만 적합한 것이다(然琴之爲物, 聖人製之以正心術, 導政事, 和六氣, 調玉燭. 實天地之靈器, 太古之神物, 乃中國聖人治世之音, 君子養修之物, 獨縫掖黃冠之所宜).”(출처: 『신기비보(神奇秘譜)』) 주권은 고금이 유생과 도사가 연주하는 연원이 깊은 신비한 악기라고 한다. 그리고 고금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고금은 세상을 다스리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데 사용하는 악기라 한다. 즉 치세(治世)와 수신(修身)의 관점에서 중요한 악기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금도’라는 용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의 거문고 유래에 처음 나온다. 이 용어는 문맥상 중국 고금의 도(道)가 아닌 우리나라 거문고(현금)의 도에 관한 내용이다.
“신라인 사찬(沙湌, 제8관등) 공영(𦷧永)의 아들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금을 공부하였다. 스스로 새로운 가락 30곡을 지어 이를 속명득(續命得)에게 전하였고, 속명득은 이를 귀금선생(貴金先生)에게 전했고, 귀금선생도 역시 지리산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신라 왕이 금도(琴道)가 단절될까 두려워하여, 이찬(伊湌, 제2관등) 윤흥(允興)에게 일러 방법을 찾아서 그 음(音)을 전수받도록 하면서, 마침내 남원의 공사(公事)를 맡겼다. 윤흥이 관부에 도착하여 총명한 소년 두 명,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을 선발하여 산중에 가서 배워 전수받게 하였다. 귀금선생은 이들을 가르쳤으나 그 미묘하고 섬세한 부분은 전수해주지 않았다. 윤흥과 그 처가 함께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왕이 나를 남원으로 보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재주를 잇고자 함인데, 지금 3년이 되었으나 선생이 숨기고 전수해주지 않는 바가 있어, 나는 명령을 완수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윤흥은 술을 받들고 그의 처는 잔을 잡고 무릎걸음으로 가서 예의와 정성을 다하니, 그런 연후에야 그 감추었던 표풍(飄風) 등 세 곡을 전수해 주었다. 안장은 그의 아들 극상(克相)과 극종(克宗)에게 전하였고, 극종은 일곱 곡을 지었으며, 극종의 뒤에는 금으로써 스스로 업을 삼은 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하였다. 지은 음률에는 두 조(調)가 있어 첫째는 평조(平調)이고 둘째는 우조(羽調)로, 모두 187곡이다. 그 남은 곡 중 전해져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고, 나머지는 모두 흩어지고 없어져 여기에 갖추어 싣지 못한다.” (번역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악지」에서 신라왕이 단절될까 두려워 한 금도는 일차적으로 귀금 선생의 재주, 즉 거문고의 미묘하고 섬세한 연주법에 관한 것이다.
금도에 관한 연구는 신라시대는 모두 『삼국사기』 「악지」를 대상으로 하며, 조선시대에는 특정 인물의 문집이나 악보에서 언급한 내용을 대상으로 하여 당시에 유행했던 사상과 결부시켜 논의되어 왔다.
『삼국사기』의 금도는 선도(仙道)와 관련이 있고, 금도를 전수한 옥보고는 선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선가(仙家)와 연관된 인물로 보기도 한다. 신라시대 거문고 음악을 선가(仙家)에 뿌리를 둔 우주론적이고 자연합일적인 관념성을 가지고 있는 신선사상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것이다. 거문고 음악과 신선사상의 관련성은 고구려 고분벽화 중 〈장천1호분〉, 〈무용총〉, 〈강서대묘〉, 〈통구4호분〉, 〈통구5호분〉의 벽화 속 거문고를 신선(神仙) 또는 선인(仙人)이 연주하는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금도를 풍류와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풍류는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하늘의 성품이 하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만나서 천인(天人)이 합일(合一)하면 선인(仙人)이 되고 이부기성(以復其性)의 상태가 된다고 믿는 사상으로 이것이 거문고의 음악사상이고 거문고는 몸을 닦고 성을 다스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준 완전성을 회복하게 하는 악기라고 한다.
한편 옥보고를 화랑이 되기 위해 수행하던 낭도 출신으로 최초로 음악을 통한 정신 수양으로 인간과 자연의 합일 음악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융합과 승화를 이룩한 금도 혹은 풍류도(風流道)의 체현자라고 보았다.
조선시대의 금도는 대부분 유가사상의 연장선에서 설명된다.
중국 금의 정신은 거문고의 기본 정신과 서로 통하는데, 그 핵심인 ‘금사욕(禁邪慾)’은 유가사상의 기본 정신이며 곧 거문고의 정신이다. 조선시대 유가사상에 영향을 받아 거문고 음악에 투영된 정신적 색채는 주로 인격완성에 모아졌다. 이 시대 이득윤(李得胤, 1553~1630)이 쓴 거문고에 관련된 명(銘)ㆍ부(賦)ㆍ기(記)ㆍ시(詩)ㆍ서(書)ㆍ고금금보(古今琴譜) 등을 집대성한 『현금동문유기(玄琴東門類記)』(1620)는 우주만상의 원리가 함축되어 있는 한 권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한편 『양금신보(梁琴新譜)』(1610)는 조선 후기에 양덕수(梁德壽)의 거문고 악보를 바탕으로 김두남(金斗南, 1559~1647)이 편찬한 금보(琴譜, 거문고 악보)인데 이 악보의 「금아부(琴雅部)」에 중국 후한의 『백호통(白虎通)』에 기록된 ‘금은 금지하는 것이니 사악함을 금지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다(琴者禁也 禁止於邪以正人心也)’라는 문구가 실렸다.
금보에 이 문구를 수록한 이유는 거문고 음악을 향유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옛 성인의 음악 사상을 계승하고 거문고 연주 행위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여 유가사상을 내면화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양금신보』에서 고금의 기원과 상징, 정신에 관한 「금아부」 다음에 거문고의 유래 관한 「현금향부(玄琴鄕部)」가 이어진다.
거문고 음악사상에 대해 선가사상과 유가사상을 혼용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 고금의 음악사상의 큰 틀은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의 융합이며, 거문고의 음악사상은 대부분 중국 고금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금도에 관한 개념은 거문고 음악사상에 한정된 개념이 아닌 보다 포괄적으로 사용된 개념이다. 한국에서의 금도는 거문고 실기에 관한 직접적인 연주법을 의미하기도 하고, 거문고 연주 과정에서의 예의와 절차 등 마땅히 지켜야 할 연주 규범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양금신보』는 거문고 유래 다음에 거문고 그림(琴圖)과 거문고의 산형(散形), 거문고 연주법 및 기보법에 관한 집시법(執是法)ㆍ조현법(調絃法)ㆍ안현법(按絃法)ㆍ타량법(打量法)ㆍ합자(合字)가 나온다.
또한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사상(유ㆍ불ㆍ선 등)이 거문고 및 거문고 음악에 투영되어 거문고 연주과정에서 깊이 깨우친 근본적인 이치 또는 이르고자 한 높은 경지를 포괄하는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금도는 실천적 방법으로서의 도(道)의 영역에 속하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용어이지만 내재된 가치지향에 있어서는 시대와 사상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연성을 포함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금도의 금은 반드시 고금과 거문고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 몬토쿠 천황 3년(850)에 의하면 781년에 일본으로 귀화한 신라인 연주자 사량진웅에게 신라금을 배운 일본인이 숨은 도(道)를 얻었다고 한다.
“신라인 사량진웅(沙良眞熊)이 신라금(新羅琴, 시라기고토, 가야금)의 연주에 능통했는데 서주(書主)라는 일본인이 그에게 배워서 마침내 숨은 도(道)를 얻었다(文德天皇 嘉祥 3年 11月) "新羅人沙良眞熊 善彈新羅琴 書主 相隋傳習 遂得秘道” (출처: 『日本文徳実録』 嘉祥3年 11月 6日条)
일본 음악사에서 신라인을 통해서 일본에 전수된 금도는 가야금의 연주법 외에도 가야금의 연주 예의와 절차 등의 연주 규범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며, 당시 신라의 사상과 일본의 사상이 결합하여 가야금 음악사상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금도는 시대와 장소, 사회가 요구하는 철학을 개별적으로 실천하는 금 연주자들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금도는 거문고 연주법이자 거문고 연주 규범이며 거문고 및 거문고 연주를 통해 깨우치고자 한 이치 또는 도달하고자 한 높은 경지에 이르는 길이었다. 금도는 여러 악기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 오늘날에도 악기 연주를 통해 바른 길을 찾고자 하는 연주자에게 철학적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삼국사기』 『신기비보(神奇秘譜)』 『양금신보』 『일본문덕실록(日本文徳実録)』 『현금동문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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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