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琴譜』), 『안상금보』(『安瑺琴譜』)
1561년 장악원 첨정(僉正, 종4품) 시절 안상(安瑺, 1511~1579 이후)이 악사(樂師) 홍선종(洪善終), 허억봉(許億鳳), 이무금(李無金)의 도움을 받아서 악공 시험용 궁중의 악보[譜冊]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한 악보집이다. 실제 목판본으로 간행은 1572년 덕원 부사 시절에 이루어졌다. 이 악보집은 16세기 당시의 악기 연주법과 구음, 노랫말, 장구와 북의 연주법 등에 대한 범례를 책머리에 두었다. 〈평조 만대엽〉 및 고려가요 계통 노래와 〈여민락〉ㆍ〈보허자〉 등의 거문고 선율은 1행 16정간 6대강의 정간보 안에 오음약보, 합자보, 한자식 육보 등으로 기보되어 있고 장구ㆍ북의 타악기 연주법이 병기되어 있다. 일부 악곡은 관악기인 적 악보도 오음약보와 육보로 병기되어 있다. 끝부분에 당비파의 연주법과 조현법을 보여주는 범례와 당비파와 적으로 연주하는 〈비파 만대엽〉도 실려 있다.
○ 체재 및 규격
목판본 1책 88장. 세로 28cm×가로 22.4cm
○ 소장처
간송미술재단
○ 편찬연대 및 편찬 이유, 편저자 사항
책의 판심에 악보명 ‘금보(琴譜)’가 보인다. 이 악보는 『금합자보』로 알려졌으나 원 악보명은 『금보』이다.
1561년(명종 16)에 장악원 첨정이었던 안상은 『금합자보』를 편찬했다. 악보 편찬의 직접적인 동기는 장악원에 소장된 악공 시험 감독자용 악보가 온전한 형태의 합자(合字)로 기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상은 악보를 고치기로 결심하여 장악원 악사 가운데 보법(譜法)에 통달한 홍선종에게 당시의 ‘지법(指法)을 더한 곡[加指曲]’의 악보를 모아 악보를 개수하게 하였고, 또 대금으로 유명한 허억봉에게는 적보를, 장고로 유명한 이무금에게는 장구보를 만들게 하여 노랫말과 한자식 육보도 함께 기록하였다. 아울러 시험 감독자가 이 악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합자의 규칙에 대한 주해(註解)를 범례에 적었다. 나아가 안상은 장악원에 소장된 『악학궤범』과 같은 악서에서 거문고 음악 관련 글이나 그림 등도 옮겨 적었다. 이렇게 안상은 장악원 첨정 시절에 『금합자보』 필사를 끝냈다.
그러나 실제 악보 간행은 1572년(선조 5) 안상의 함경도 덕원 부사 시절(1570~1579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안상은 시골에서 거문고를 배우고 싶어도 거문고에 일가견을 가진 스승이나 벗을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혼자서 거문고의 기초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금합자보』를 간행하였다. 그가 악보를 편찬한 배경은 주희(朱熹)의 『근사록(近思錄)』에서 언급된 궁벽한 시골에서 학문에 뜻을 품지만 이끌어 줄 밝은 스승이나 좋은 벗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안상은 『금합자보』 서문에서 풍속을 바꾸는 데에 악(樂)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강조하며, 거문고 연주를 통해 유가 악론(樂論)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는 거문고 연주가 개인적인 수신(修身)뿐 아니라 향촌의 풍속 교화와 성리학적 사회질서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안상은 덕원에서 『금합자보』를 간행하여 목민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였다.
이 악보의 편저자인 안상은 본관이 순흥(順興)이며, 호가 죽계(竹溪)이다. 안상은 형조 정랑 또는 공조 정랑으로서 경복궁 재건 사업에 힘을 다했고, 장악원 첨정으로서 『금합자보』를 편찬하는 등 중앙 관리로서 주어진 일뿐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여 다방면에 중요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특히 안상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교류하면서 지방관으로서 16세기 중엽 성리학적 사회질서의 정착을 위해 이산서원(伊山書院)을 건립하고 『속문범(續文範)』(1565), 『한서전 초(漢書傳抄)』(1566), 『근사록』(1566), 『용학석의(庸學釋義)』(1567) 등의 성리학 서적을 간행하였다. 따라서 그의 악보 편찬도 16세기 중엽 성리학적 사회질서의 정착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 구성 및 내용
가장 먼저 금보 편찬 목적과 과정을 기록한 ‘금보서’가 나온다.
이어서 거문고와 박, 장고, 북, 적의 악기 구조 및 연주법, 기보법에 대해서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 범례가 나온다.
한국에서 금보(琴譜)는 대개 거문고 악보[玄琴譜]를 의미한다. 실제로 민간의 금보는 거문고 외에 적, 장구 등 다른 악기의 악보를 병기하기도 하는데, 거문고 악보가 중심이 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책명을 금보로 한다.
우선 악보집의 전반부는 〈평조 만대엽(平調慢大葉)〉(“오ᄂᆞ리”)ㆍ〈정석가(鄭石歌)〉(“딩아 돌하”)ㆍ〈한림별곡(翰林別曲)〉(“元淳 文”)ㆍ〈감군은(感君恩)〉(“四海 바닷”)ㆍ〈평조 북전(平調北殿)〉(“흐리누거”)ㆍ〈우조 북조(羽調北殿)〉(“空房을”)ㆍ〈여민락(與民樂)〉(해동장(海東章)ㆍ근심장(根深章)ㆍ원원장(源遠章)ㆍ석주장(昔周章)ㆍ금아장(今我章)ㆍ적인장(狄人章)ㆍ야인장(野人章)ㆍ천세장(千世章)ㆍ자자장(子子章)ㆍ오호장(鳴呼章))ㆍ〈보허자(步虛子)〉(“碧煙籠曉”)ㆍ〈사모곡 계면조(思母曲 界面調)〉(“호ᄆᆡ도”) 총 9곡이 수록돼 있다.
모든 악곡은 1행 16정간 6대강 정간보로 음의 길이를 기보하고 거문고의 오음약보, 합자보, 한자식 육보 등으로 음의 높이와 연주법을 기보한다. 이 악보는 거문고 연주법과 구음, 노랫말, 장구와 북 연주법 등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일부 악곡의 경우에는 관악기인 적 악보가 오음약보와 육보로 병기되어 있다.
이 악보에 수록된 〈평조 만대엽〉과 〈감군은〉ㆍ〈한림별곡〉은 현전 악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고려가요 〈정석가〉ㆍ〈사모곡〉은 『시용향악보』(1500년경)와 이 악보에만 수록돼 있고, 〈북전〉의 3장 6구로 이루어진 한글 시형과 음악은 현행 〈시조〉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조 신악인 〈여민락〉은 10장이 전하며 현재 거문고, 가야금, 향피리, 대금, 해금, 아쟁, 소금 등 관현합주로 연주되는 〈여민락〉 7장(제8∼10장 탈락)과 관련이 있다. 당악인 〈보허자〉는 이 악보에서 거문고로 연주되면서 장별은 없고 거문고 연주법인 문현과 청현의 용법이 가미되는 등 향악화 과정이 나타난다. 〈보허자〉의 노랫말 사(詞)는 전단(前段)인 미전사(尾前詞)와 후단(後段)인 미후사(尾後詞)로 구분되는데, 미후사의 첫 번째 구가 미전사의 첫 번째 구와 다른 가락으로 바뀌는 현상을 환두(換頭)라 하고 미후사의 둘째 구부터는 미전사의 둘째 구 이하 가락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이를 환입(還入)이라 한다. 이 악보의 〈보허자〉는 현행 〈보허사〉처럼 미전사의 가락과 미후사의 환두가락(“宛然共指嘉禾瑞”)만 남고 둘째 구(“開一笑破朱顔”) 이하 환입가락은 생략되었다. 또 〈보허사〉의 적보는 하오(下五)에서 상이(上二)까지 원래의 당악기 음역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하여 거문고는 음역이 넓어져서 두 옥타브에 이른다.
악보집의 후반부는 당비파가 주인공이다. 당비파의 악기 구조 및 연주법, 기보법에 대해서 그림을 곁들인 범례가 우선 나온다. 이어서 〈비파 만대엽(琵琶 慢大葉)〉(“오ᄅᆞ리”)이 나오는데 1행 16정간 6대강 정간보로 음의 길이를 기보하고, 오음약보, 합자보, 한자식 육보 등으로 음의 높이와 연주법을 기보한다. 당비파보에는 당비파 연주법과 구음, 노랫말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노랫말이 붙는 선율의 경우 관악기인 적 악보가 오음약보와 육보로 병기되어 있다.
〈비파 만대엽〉은 당비파 음악의 옛 모습을 전하는 유일한 고악보이다.
[악보 차례]
금보서(琴譜序)
금도(琴圖)
낙시조(樂時調)
산형(散形) 평조(平調)ㆍ우조 평조(羽調 平調)ㆍ평조 계면조(平調 界面調)ㆍ우조 계면조(羽調 界面調)ㆍ청풍체(淸風體)ㆍ최자조(嗺子調)
금도(琴圖) 평조각궁분상하도(平調各宮分上下圖)ㆍ평조상용괘차도(平調常用卦次圖)
집시도(執匙圖)
장지상안이조모지세도(長指常按以助母指勢圖)
모지역인장지역추도(母指力引長指力推圖)
모명양지공안유현추용도(母名兩指共按遊絃推用圖)
식지안괘여곡척도(食指按卦如曲尺圖)
박보(拍譜)
장고보(杖鼓譜)
고보(鼓譜)
적보(笛譜)
안공법(按孔法)
금보합자해(琴譜合字解)
금평조대현괘차(琴平調大絃卦次)
금변괘겸용법(琴變卦兼用法)
궁상각치우출성도(宮商角徵羽出聲圖)
조현(調絃) 평조(平調)ㆍ계면조 평조(界面調 平調)ㆍ우조(羽調)
평조 만대엽(平調 慢大葉)
정석가(鄭石歌)
한림별곡(翰林別曲)
감군은(感君恩)
평조 북전(平調 北殿)
우조 북전(羽調 北殿)
여민락(與民樂)
보허자(步虛子)
사모곡 계면조(思母曲 界面調)
당비파도(唐琵琶圖)
산형(散形) 평조(平調)ㆍ계면조(界面調)
탄금수법이용비파법(彈琴手法移用琵琶法)
비파보(琵琶譜)
합자해(合子解)
용좌수지법(用左手指法)
용우수지법(用右手指法)
탄법(彈法)
좌수안주법(左手按柱法)
육보(肉譜)
조현(調絃)
비파 만대엽(琵琶 慢大葉)
『금합자보』는 국가적 규모로 편찬된 궁중 음악 악보로, 악공 시험 감독자용 악보로 편찬되었다. 이 악보는 궁중 악보에서 흔히 보이는 현악기ㆍ관악기ㆍ타악기의 악보가 혼합된 총보 형식으로 기록되어 현재 관악과 현악의 음정 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음의 시가는 정간보로, 음의 높이와 연주법은 오음약보ㆍ합자보ㆍ한문식 육보로 기보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16세기 후반의 거문고ㆍ적ㆍ당비파를 중심으로 한 향악ㆍ당악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이 악보는 당비파 음악의 옛 모습을 전하는 유일한 고악보로, 조선시대에 널리 유행했던 당비파 음악을 이해하는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정간보는 1행 16정간 6대강보로 된 『세조실록악보』와 『시용향악보』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며, 최초의 정간보인 『세종실록악보』에서 시작하여 『양금신보』ㆍ『대악후보』ㆍ『속악원보』 등을 거쳐 현행까지 이어져온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게 활용된다.
『금합자보』의 실제 간행은 민간에서 이루어졌는데, 안상은 유학자 개인의 수신(修身)과 향촌의 풍속 교화, 성리학적 사회질서 정착을 위해 음악 연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악기 입문자들이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연주법을 상세히 기재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에서도 유학자들이 거문고 연주를 쉽게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안상의 유가적 음악 실천은 조선 후기 지식인층에게 영향을 주어 민간 금보의 출현을 견인하였다.
보물 제283호(1963)
현재 『금합자보』의 원본 소장정보는 간송미술재단에서 제공되고 있다. 영인본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연구/자료-학술연구-영인ㆍ번역’ 섹션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된다.
『금합자보』 『대악후보』 『속악원보』 『세종실록악보』 『세조실록악보』 『시용향악보』 『양금신보』
이혜구, 『정간보의 정간ㆍ대강 및 장단』, 세광음악출판사, 1987. 문숙희, 「『금합자보』와 『양금신보』에 나타난 조선조 음악 및 기보법의 변천」, 『한국음악연구』 55, 한국국악학회, 2014. 성경린, 「22. 금합자보(琴合字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22, 국립국악원, 1987. 송지원, 「『금합자보』의 역사적 의미」, 『한국음악사학보』 50, 한국음악사학회, 2013. 윤병천, 「『금합자보』 <여민락> 금ㆍ적(琴笛)에 관한 연구」, 『한국음악연구』 64, 한국국악학회, 2018. 윤영해, 「고려가요와 조선전기 거문고 음악: 『금합자보』의 <정석가>와 <사모곡>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68, 한국국악학회, 2020. 이진원, 「정간보(井間譜) 시가(時價) 해독(解讀): 조선전기 관련 악보 및 문헌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50, 한국음악사학회, 2013. 장사훈, 「고악보 해제」,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정화순, 「『금합자보(琴合字譜)』 소재 악곡의 관현 선율 비교」, 『동양예술』 29,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15. 조은숙, 「금합자보(琴合字譜)의 음악교육적 의의」, 『국악원논문집』 43, 국립국악원, 2021. 최선아, 「안상의 가계와 생애 및 『금합자보』 편찬 과정」, 『한국음악사학보』 49, 한국음악사학회, 2012. 최선아, 「조선후기 금론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조선후기 금론연구』, 민속원, 2017 재수록.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