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악보
조선시대 민간에서 지식인층이 연주한 풍류음악과 가곡 등의 거문고 선율과 고금 및 거문고의 금론(琴論) 등을 모아서 편찬한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악보집이다.
조선 왕조는 유교를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유교 국가는 예(禮)와 악(樂)으로써 나라를 통치하였고, 유가의 악론(樂論)이 궁중 악(樂)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고려 왕실에서 전승된 궁중 음악 중 유가의 악론에서 벗어난 음악을 없애거나 개작하고 유교 음악인 중국 아악(雅樂)을 복원하여 사용하는 등 유교 국가의 이상적인 음악을 조선 왕실에서 구현하려 하였다.
세종 때 국가의 제례ㆍ조회ㆍ회례 등의 의식에서 사용할 음악을 정리한 『세종실록악보』를 제작하였고, 성종 때 궁중 의례에 사용한 음악 제도를 정리한 『악학궤범』(1493)을 제작하였다.
궁중에서 악(樂)에 의한 치세(治世)는 민간에서 악(樂)에 의한 수신(修身)이 동반되어야 한다.
조선 후기 민간 지식인층은 수신을 위한 악기론 ‘禁’(금지)의 속성을 갖는 군자의 악기 ‘琴’(거문고)을 주목하였다.
중국의 금은 고금(古琴)이다. 고금은 유생과 도사가 연주하는 연원이 깊은 신비한 악기로 여겨졌다. 고금은 세상을 다스리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데 사용하는 악기였다. 즉 중국에서 치세와 수신의 관점에서 중요한 악기로 여겨졌다. 고금이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아들 영헌왕 주권(永獻王 朱權, 1378∼1448)이 쓴 고금보인 『신기비보(神奇秘譜)』(1425) 서(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금은 성인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정사를 지도하며, 육기를 화합하고, 옥촉(玉燭, 즉 태평성세)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는 실제로 천지의 신령한 기물이며, 태고의 신비로운 물건이다. 곧, 중국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소리이며, 군자가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고, 오직 봉액(선비가 입는 도포)을 입고, 황관(도사가 쓰는 관)을 쓴 이들에게만 적합한 것이다(然琴之爲物, 聖人製之以正心術, 導政事, 和六氣, 調玉燭. 實天地之靈器, 太古之神物, 乃中國聖人治世之音, 君子養修之物, 獨縫掖黃冠之所宜)” (출처: 『신기비보(神奇秘譜)』)
고금으로 연주하는 대표적인 음악이 아악이다.
조선 전기까지 유가의 이상적인 음악인 아악과는 속성이 다른 우리나라 음악인 속악(俗樂)은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민간 지식인층이 거문고를 주목하면서 거문고로 연주되는 우리나라 속악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중국 아악과 다르지 않은 ‘바른 음악’, ‘아정한 음악’, ‘상탄(常彈)할 수 있는 음악’이란 긍정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 문인 지식인들은 수신을 위한 악기로 거문고를 선택하고 음악으로 속악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속악에 유가 악론의 이상을 투영하였다. 민간 악보집에 실린 속악은 풍류 음악이라 불리며 문인 지식인층에서 주로 향유하는 음악으로 발전하는데 나중에 중인에까지 확대되었고 이들이 풍류 음악을 더욱 다채롭게 발전시킨 주역이 되었다.
〇 금보의 등장과 전개
16세기 이후 낱장으로 돌아다니던 악보가 제본된 형태의 거문고 중심의 악보집, 즉 금보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민간 금보에는 거문고 및 음악 관한 글과 시, 그림이 거문고 선율이 기보된 악보와 함께 수록되었다.
악보집 형태로 제작된 민간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금보는 안상(安瑺, 1511~1579 이후)이 장악원 첨정(僉正, 종4품) 시절인 1561년에 편찬하고 덕원부사 시절인 1572년에 간행한 『금합자보(琴合子譜)』이다. 초기 금보는 장악원과 관청의 인적ㆍ물적 지원을 받아서 목판본으로 제작되었다.
목판본 악보는 비용과 보관이 어렵지만, 목판만 온전하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목판본 『양금신보(梁琴新譜)』(1610)를 저본으로 한 악보의 수(현재 11종)가 가장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17세기 중반 이후 청나라로의 연행(燕行)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중국의 서적과 문물이 대량으로 유입되는데, 이때 중국 음악과 고금에 대한 문헌도 들어와 거문고 악보에 인용되었다. 이는 당시 문인 지식인들의 음악적 관심을 높이며, 음악을 다채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〇 금보의 기보법
금보에 거문고 선율을 기보한 대표적인 기보법은 합자보(合字譜)와 육보(肉譜)이다.
합자보는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 연주에 필요한 운지법(運指法)ㆍ탄법(彈法)ㆍ농현법(弄絃法) 등을 간단히 부호로 만들고 이들을 모아 적은 기보법이다. 문인 지식인들은 감성을 표현하는 음악을 연주 부호를 사용해서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연주하였다.
당: 유현을 무명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당: 유현을 무명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둥: 대현을 식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동: 유현을 식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등: 대현을 모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징: 유현을 모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쌀갱: 유현을 무명지, 식지, 모지 등으로 누른 후, 문현을 거쳐 유현을 내는 소리 | |
싸랭: 쌀갱 주법에서 문현의 시가를 짧게 내는 소리 | |
슬기덩/둥/등: 대현을 장지/식지/모지로 누른 후, 문현과 유현을 거쳐 대현을 내는 소리 | |
뜰: 유현, 대현, 괘상청을 술대를 안으로 뜨며 연주하는 기법 | |
러, 루, 르, 라, 로, 리: 덩, 둥, 등, 당, 동, 징 등의 자출성(술대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튀기어 내는 소리)을 각각 구음으로 표현하는 소리 |
금보에 거문고 선율을 기보한 기보법으로 정간보(井間譜)와 율자보(律字譜), 오음약보(五音略譜)가 사용되기도 한다.
정간보는 정간이라는 네모난 칸을 사용하여 음의 길이를 기보하는데 한 칸은 한 박을 의미하며, 각 칸 안에 음의 높이를 나타내는 율자나 구음, 합자 등을 나타내는 문자가 들어간다. 율자보는 12율명의 첫 글자로 음의 높낮이를 기보한다. 오음약보는 궁(宮)을 중심으로 음계상의 음들을 위로 ‘上一ㆍ上二ㆍ上三’, 아래로 ‘下一ㆍ下二ㆍ下三’ 순서대로 적는다.
〇 금보의 연대 해석
금보의 연대 해석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필사연대가 분명한 금보라도 내용연대 즉 실린 음악은 당대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수삼산재본금보』(1651)와 『박기환 소장 금보』 (1825)는 기보된 음악 내용이 같다. 한편 동시대인이라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옛 음악(고조)을 고수하거나, 새로운 음악(신조, 시조)을 따라갈 수 있음. 예를 들어 17세기 후반 한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거문고 연주자(금객) 한립은 고조를 연주하였고, 김성기는 신조를 연주하였다.
현재 금보의 연대 해석은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① 옛 음악 소멸 또는 새 음악의 출현(보례 1. 〈보허자〉에서 파생한 〈본환입〉의 출현)
② 동일 악곡의 변천(보례 2. 『양금신보』의 ‘스렝’(1음)이 『금보신증가령』에서 ‘딩스렝딩’(3음)으로 증가)
③ 기보법의 변천(보례 3. ‘一징’, ‘二징’의 출현)
④ 종지구의 변천(보례 4. 〈상영산〉 4장 6각의 종지구의 변천)
⑤ 음악 관련 기록(악론, 금론 등)의 출현.
이혜구는 연대 해석의 기둥이 되는 금보를 『금합자보』(1572), 『양금신보』(1610), 『금보신증가령』(1680), 『유예지』(19세기 초)로 보았다.
제1군 금보는 『양금신보』 수용 정도에 따라 다시 3개의 소군으로 나뉘고, 제2군 금보는 『금보신증가령』과의 유사한 정도에 따라 다시 3개의 소군으로 나뉜다. 끝으로 제3군 금보는 음악 내용에 따라 다시 5개의 소군으로 나뉜다.
금 합 자 보 1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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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
양 금 신 보 1610 |
㉠ | |
㉡ | ||
㉢ |
2군 | ||
금 보 신 증 가 령 1680 |
㉠ | |
㉡ | ||
㉢ |
3군 | ||
유 예 지 19세기 초 |
㉠ | |
㉡ | ||
㉢ | ||
㉣ | ||
㉤ |
3군 | ||
1군 | ||
양 금 신 보 1610 |
㉠ | 『현금동문유기』 |
㉡ | 『윤용진 소장 금보』 | |
㉢ | 『이수삼산재본금보』, 『박기환 소장 금보단』, 『경대금보』, 『인수금보』, 『남훈유보』, 『증보고금보』 |
2군 | ||
금 보 신 증 가 령 1680 |
㉠ | 『연대 소장 금보』, 『금보고』 |
㉡ | 『한금신보』, 『백운암금보』, 『고대 소장 금보A』 | |
㉢ | 『신증금보』, 『신작금보』, 『낭옹신보』, 『어은보』 |
③ 3군 금보
3군 | ||
유 예 지 19세기 초 |
㉠ | 『유예지』, 『강외금보』 |
㉡ | 『동대 소장 금보』, 『죽취금보』, 『삼죽금보』, 『희유금보』, 『아금고보』, 『초입문금보』, 『김동욱 소장 금보』 | |
㉢ | 『현금오음통론』, 『역양아운』 | |
㉣ | 『해산유음』, 『하버드大琴譜』, 『학포금보』 | |
㉤ | 『방산한씨금보』, 『가곡현금보』, 『청음고보』, 『고대 소장 금보B』, 『원객유운』, 『금학입문』, 『흑홍금보』, |
금보는 조선시대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향유되었던 거문고 음악과 금론 등을 기록한 악보이다. 이는 거문고와 거문고 음악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지식인층의 음악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조선시대 민간 음악의 전개 과정과 그 당시 지식인층의 음악적 취향 및 음악적 교류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중국의 고금과 한국의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금(琴)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보는 현전하는 음악을 포함하여 많은 수의 풍류 음악과 성악곡을 기록하고 있어서, 개별 음악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금보는 과거의 음악을 현재와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며, 전통음악의 현대적 재해석과 보존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금합자보: 보물 283호(1963) 윤소장 소장 금보: 대구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2012)
『금보신증가령』 『금합자보』 『세종실록악보』 『신기비보(神奇秘譜)』 『악학궤범』 『양금금보』 『유예지』
김영운, 『(개정증보판)국악개론』, 민속원, 2020. 이동복, 『한국고악보연구』, 민속원, 2009. 이혜구,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국악원논문집』 1, 국립국악원, 1989: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한국음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재수록. 최선아, 「조선후기 금론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조선후기 금론연구』, 민속원, 2017 재수록. 최선아, 『지음을 기다리며』, 민속원, 2021.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