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보는 조선 후기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악기인 양금(洋琴)의 악보집이다. 양금은 원래 구라파의 악기로서 일명 ‘서양금(西洋琴)’ 또는 ‘구라파에서 들어온 쇠줄로 된 악기’란 의미로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이라고도 한다. 『구라철사금자보』 제1편 「창래(刱來)」에는 양금의 유입과 전수 과정‚ 그리고 악보가 만들어진 과정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1편 「창래」에서 양금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을 살펴보면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 1552∼1610)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양금이 들어온 지는 거의 60년이 되었는데 당시에는 악기로 연주되지 못하고 한갓 문방의 기물로만 취급되며 좋다고 여겨졌다 한다. 그러다가 정조년간 장악원 전악 박보안(朴寶安)이 사신을 따라 연경에 들어가 처음으로 연주법을 배워 우리나라 음악으로 번역하였다. 이후로 전해가며 익히게 되었는데 손으로만 전수되고 악보가 없으니 선율을 배우면 곧 잊어버릴 것을 우려하여 1817년(순조 17) 중춘(仲春)에 전악(典樂) 문명신(文明新)이 연구하여 이 악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구라철사금자보』가 양금만을 위한 악보로는 최우선의 것으로 추정된다.
양금의 조율에 관해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동란섭필(銅蘭涉筆)」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에서 1772년 6월 18일 홍대용이 양금을 처음으로 우리나라 조[土調]에 맞추어 연주했다고 한다. 그 후로 널리 퍼져서 단 9년 사이에 모든 악사들이 이 양금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양금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홍대용이 양금을 1765년 11월 삼절년공(三節年貢) 사은(謝恩)의 목적으로 사행하던 당시 직접 양금을 사온 사실과 강세황의 『표암유고(豹菴遺稿)』(1762년) 「팔물지(八物志)」에 ‘서양금’이 소개된 것을 통해 적어도 1762년 당시에 이미 양금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의 원본은 ‘歐邏鐵絲琴字譜(구라철사금자보)’라는 서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영인본은 1984년에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14)의 일부로 간행되었다.
○ 체재 및 규격
필사본 1책 21장. 세로 17.0cm × 가로 21.0cm
○ 소장처 소장처 및 청구기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청구기호: 가람古787-Y55g
○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책의 앞표지 겉면 왼쪽과 첫 장에 악보명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가 보인다.
편찬연대는 제1편 「창래」편 기록을 통하여 1817년(순조 17)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저자는 이규경(李奎景, 1788∼?)이 번역(飜譯)하고 아우인 이규달(李奎達)이 교정[參校]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악보의 저본은 1817년 봄에 전악 문명신이 만든 양금 악보이며,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아우의 도움을 받아 악보의 전반부에 양금과 서양음악 이론에 관한 9편의 글을 함께 엮어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악보는 동시대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에 의해 편찬된 『유예지』의 「양금자보(洋琴字譜)」와 같다.
편저자인 이규경은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손자로 청대 학풍에 큰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금사물(古今事物)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고 정밀한 고증을 통하여 천문ㆍ역수ㆍ지리ㆍ문학ㆍ종교ㆍ초목ㆍ어조 등의 학문을 고찰하고 변증하여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60권을 집대성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구라철사금자보』의 일부 내용이 들어가 있다.
○ 구성 및 내용
우선 악보집의 전반부는 양금의 유래, 모양과 재료, 제작과 보관법, 기보와 연주법, 그리고 서양음악 이론 등에 관한 총 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제1편 「창래」는 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 왕사정(王士禎)의 『지북우담(池北偶談)』, 『주어고존(奏御稿存)』 등을 참고하여 양금이 중국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위를 설명한다. 제2편 「율명(律名)」은 율려의 상생과 조화의 원리에 입각하여 12율 4청성을 양금 현 아래에 죽 벌여서 써 넣는 것을 설명한다. 제3편 「자점(字點)」은 악보에 쓰인 자(字)와 점(點)에 대해 설명한다. 제4편 「의용피자(宜用彼字)」는 당낙우의 『논률산서(論律算書)』에 근거하여 서양 음악의 조표, 음표, 음자리표, 음계 등 서양음악 이론과 양금 사용에 관해 설명한다. 제5편 「제형(製形)」은 양금의 재료와 형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제6편 「장기(藏棄)」는 양금 보관법을 설명한다. 제7편 「고현(鼓絃)」은 양금을 연주하는 방법에 관해 간략히 설명한다. 제8편 「금명(琴銘)」은 양금을 담는 상자(匣)에 새길만한 명(銘)에 관한 내용으로, 조부인 아정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담헌 홍대용(洪大容, 1731∼1783)과 관재(觀齋) 서상수(徐常修, 1735∼1793)의 금에 쓴 명문과 이규경 본인의 양금에 쓴 명문을 설명한다. 제9편 「전고(典攷)」는 양금을 주제로 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와 원항(鴛港) 당낙우(唐樂宇)가 문답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다음으로 악보집의 후반부는 《영산회상》 관련 음악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계면조와 우조 〈조현〉, 가곡ㆍ시조 관련 음악이 나온다.
《영산회상》 관련 음악은 〈영산회상 대(靈山會相 大)〉 제1∼4편ㆍ〈영산회상 중(靈山會相 中)〉 제1∼4편ㆍ〈영산회상 소(靈山會相 小)〉 제1∼4편ㆍ〈제편(除篇)(속칭 편제(篇除) 가락더리)〉 제1∼4편ㆍ〈환입(還入)〉 제1∼4편ㆍ〈하현환입(下絃還入)〉 제1∼4편이 있다. 이들은 현행 《영산회상》 중 〈상영산〉ㆍ〈중영산〉ㆍ〈세영산〉ㆍ〈가락더리〉ㆍ〈상현환입〉ㆍ〈하현환입〉과 관련 있다. 이어서 〈계면조 조현(界面調 調絃)〉ㆍ〈우조 조현(羽調 調絃)〉이 나오고 〈가곡 대엽(歌曲 大葉, 속칭 츠닙〉은 현행 〈삭대엽〉과 관련이 있고 〈시조(時調)〉는 현행 〈평시조〉와 관련이 있다.
모든 악곡에서는 율명차용보(律名借用譜)로 음의 높이를 기보한다. 율명차용보는 12율 4청성(黃∼浹)과 3청성(沽, 沖, 濱)의 첫 글자와 ‘工’ 문자로 양금의 줄 이름을 지시하여 율명차용보라 한다. 양금의 줄 이름은 악보에 그려진 '구라철사금도(歐邏鐵絲琴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율명차용보 아래에 병기된 삼조표(三條標)는 검은색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선으로 양금의 연주법(●, ● ●, ●-●)을 표기한다. 이 삼조표는 고형에 속하며 음악의 시가를 해석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준다.
좌괘 좌현 | 좌괘 우현 | 우괘 좌현 | |||||||||||||||||||
줄 번호 (아래부터) |
1 | 2 | 3 | 4 | 5 | 6 | 7 | 1 | 2 | 3 | 4 | 5 | 6 | 7 | 1 | 2 | 3 | 4 | 5 | 6 | 7 |
줄 이름 | 潢 | 汏 | 汰 | 浹 | 沽 | 沖 | 濱 | 獎 | 林 | 夷 | 南 | 無 | 應 | 工 | 黃 | 大 | 太 | 夾 | 姑 | 仲 | |
실음 | 林 | 南 | 無 | 潢 | 汰 | 洳 | 沖 | 黃 | 太 | 夾 | 仲 | 林 | 南 | 無 | 債 | 休 | 俠 | 仲 | 林 | 㑲 | 無 |
당시의 실제 연주된 양금의 좌괘의 좌현과 우현의 길이의 비는 현행과 동일한 2 : 3 이며, 두 현에서 나는 소리는 5도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현행의 양금 조율 방법과 같다.
[악보 차례]
제1 창래(第一 刱來)
제2 율명(第二 律名)
제3 자점(第三 字點)
제4 의용피자(第四 宜用彼字)
제5 제형(第五 製形)
제6 장기(第六 藏棄)
제7 고현(第七 鼓絃)
제8 금명(第八 琴銘)
제9 전고(第九 典考)
영산회상 대 1편(靈山會相 大 一篇)
영산회상 대 2편(靈山會相 大 二篇)
영산회상 대 3편(靈山會相 大 三篇)
영산회상 대 4편(靈山會相 大 四篇)
영산회상 중 1편(靈山會相 中 一篇)
영산회상 중 2편(靈山會相 中 二篇)
영산회상 중 3편(靈山會相 中 三篇)
영산회상 중 4편(靈山會相 中 四篇)
영산회상 소 1편(靈山會相 小 一篇)
영산회상 소 2편(靈山會相 小 二篇)
영산회상 소 3편(靈山會相 小 三篇)
영산회상 소 4편(靈山會相 小 四篇)
제편 일편 속칭 편제 가락더리(除篇 一篇 俗稱 篇除 가락더리)
제편 2편(除篇 二篇)
제편 3편(除篇 三篇)
제편 4편(除篇 四篇)
환입 1편(還入 一篇)
환입 2편(還入 二篇
환입 3편(還入 三篇
환입 4편(還入 四篇
하현환입 1편(下絃還入 一篇)
하현환입 2편(下絃還入 二篇)
하현환입 3편(下絃還入 三篇)
하현환입 4편(下絃還入 四篇)
계면조 조현(界面調 調鉉)
우조 조현(羽調 調絃)
가곡 대엽 초장 속칭 ᄌᆞ츠ᄂᆡ닙(歌曲 大葉 初章 俗稱 츠닙), 이장(二章), 3장(三章), 중여음(中餘音), 4장(四章), 5장(五章), 대여음(大餘音)
시조(時調)
『구라철사금자보』는 1762년에 이미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양금이 빠르게 민간의 풍류 음악계에 수용되어 풍류방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정착하였음을 알게 한다. 이 악보는 양금으로 연주하는 19세기 초반 풍류방 음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악보에 해당한다. 특히 이 악보에 수록된 〈시조〉는 현행 경제 〈평시조〉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이다. 양금이 19세기 이후 민간 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은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양금 악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악보는 19세기 초반 양금 이론과 실기를 통해 서양 음악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 문인 지식인들의 음악관 및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양금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음악을 연주하는 산투르에서 기원하는데 이 악기가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참발롬, 덜시머, 양친 등 다양한 이름으로 토착화되었다. 이 악보명은 유럽으로 유입된 양친[揚琴]이 청나라를 거쳐 우리나라로 전파되었음을 알게 한다.
현재 『구라철사금자보』의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영인본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연구/자료-학술연구-영인ㆍ번역’ 섹션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된다.
『열하일기』 『오주연문장전산고』 『유예지』
강명관 외 역, 『역주 고악보』 2, 민속원, 2021. 김세중, 「양금 고악보의 다스름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김영운, 「고악보의 기보법에 관한 연구: 『협율대성』 양금보의 시가기보법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15ㆍ16 합병호, 한국국악학회, 1986. 송지원, 「구라철사금자보 해제」, 『구라철사금자보』,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이동복, 「구라철사금자보와 유예지 중 양금자보의 비교연구」, 『논문집』 42, 경북대학교, 1987. 장사훈, 「구라철사금자보의 해독과 현행 평시조와의 관계」, 『아세아연구』 1-2, 고려대학교 출판부, 1958. 장사훈, 「3.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4, 국립국악원, 1984. 최선아,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의 칠조(七調)」, 『한국음악연구』 44, 한국국악학회, 2008.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