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조선시대 행행(行幸), 강무(講武), 창덕궁 관처용(觀處容) 등 행사에서 노래를 담당한 소년
② 노래하고 춤추며 정재(呈才)를 공연한 소년을 가리킨 경우도 있음
③ 노래를 부르는 소년을 의미하는 범칭
『악학궤범』(1493년)에 따르면, 행행(行幸), 강무(講武), 모화관 친열(親閱), 후원에서의 문무신 관사(文武臣觀射), 창덕궁 관처용(觀處容)에 가동이 참여하고, 창경궁 관처용에 무동이 참여하였는데, 이 경우 가동은 노래하는 소년, 무동은 춤추는 소년을 뜻한다. 창경궁 관처용에서 무동은 가면이 달린 동연화관(銅蓮花冠)을 착용하고, 창덕궁 관처용에서 가동은 가면을 쓰지 않은 것에서 보듯이 복색도 서로 다르다. 가동은 모화관 친열 때 융복(戎服)을 입었고, 후원에서의 문무신 관사(文武臣觀射) 때 자주 두건에 녹주단령(綠紬團領)을 입었으며, 강무와 행행 때는 깃을 꽂은 주황색 초립에 토홍색 면포 홑철릭[土紅綿布單帖裏]을 착용했고, 나이 제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한편, 1432년(세종 14)에 무동을 처음 뽑아서 1433년(세종 15)부터 외연에서 정재를 공연하게 했다. 활동 기간이 10대 초반으로 한정된 남자아이를 계속 잇대는 것이 어려워 1447년(세종 29)에 무동 제도를 폐지하자, 3년이 지난 1450년(문종 즉위) 11월에 박연이 ‘세종께서 정한 인국객인연(隣國客人宴)에 노래도 있고 춤도 있고 또 정재도 있는데, 아이가 아니면 노래가 맑지 못하고 춤이 볼품없으며 정재도 기예를 이루지 못하니, 가동이 없을 수 없다.’ 라며, 가동을 두자고 아뢴 바 있는데【문종 즉위년 11월 22일(壬戌)】, 이 경우 가동은 노래하고 춤추는 소년을 뜻한다.
『문종실록』 『악학궤범』 김종수, 『의궤로 본 조선시대 궁중연향문화』, 민속원, 2022.
김종수(金鍾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