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歌者), 가차비(歌差備), 가인(歌人), 가(歌)
제사와 연향을 비롯한 각종 의례에서 노래를 담당한 음악인
가공은 악공 또는 악생의 신분이다. 나이 어린 가공은 가동(歌童)으로 불렸다. 노래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은 악사(樂師)는 도창(導唱)으로 불려 가공과 구별되었다. 『악학궤범』(1493년)에 따르면, 사직(社稷)ㆍ풍운뇌우(風雲雷雨)ㆍ선농(先農)ㆍ선잠(先蠶)ㆍ우사(雩祀)ㆍ문묘(文廟) 제례에 아악이 연주되었는데, 성종 당시 등가(登歌)에 스물네 명의 가공과 두 명의 도창이 배치되었고, 헌가에는 가공이 배치되지 않았다. 세종대 회례 아악에서는 등가에 스물 네 명의 가공과 두 명의 도창이 배치되었을 뿐 아니라 헌가에도 열 명의 가공이 배치되었다.
1464년(세조 10) 이후 종묘에 〈정대업〉ㆍ〈보태평〉의 속악이 연주되었으며, 『악학궤범』 편찬 당시에는 등가ㆍ헌가에 각각 여섯 명의 가공이 배치되고, 『종묘의궤』(1706년) 편찬 당시에는 등가ㆍ헌가에 각각 두 명의 가공이 배치되었다.
조선 후기 연향 의궤에 따르면, 숙종대(1674~1720)ㆍ영조대(1724~1776)ㆍ순조대(1800~1834) 외연(外宴)의 경우 전상악(殿上樂)에 네 명, 전정악(殿庭樂)에 세 명의 가공이 있었으며, 고종대(1863~1907) 외연의 경우 전상악에 다섯 명 또는 네 명의 가공만 배치하고 전정악에는 가공을 배치하지 않았다. 여기(女妓)와 관현맹인이 음악을 담당한 영조대 내연(內宴)의 경우나 악공이 음악을 담당한 정조대(1776~1800) 이후 내연의 경우에는 악대에 별도로 노래 부르는 사람을 배치하지 않았고, 정재를 연행한 여령이 악장을 노래했다.
제사와 연향 이외에 친경((親耕)과 대사례(大射禮) 같은 의례에서도 가공이 악장을 노래했다.
『악학궤범』 『기해진연의궤』 『갑자진연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기축진찬의궤』 『무신진찬의궤』 『임진진찬의궤』 김종수, 『의궤로 본 조선시대 궁중연향문화』, 민속원, 2022.
김종수(金鍾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