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허자(장춘불로지곡) 제1장과 제2장의 선율에 맞춰 노래하는 창사.
1829년 효명세자(1809-1830)가 순조의 4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진찬의(進饌儀)를 열며, 직접 지은 장생보연지무의 악장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노랫말은 순조 기축 진찬의궤 중 정재 악장에 수록되어 있다. 1829년에는 전단 끝의 노랫말을 미미류담담풍(靡靡柳澹澹風,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와 담담한 바람)으로, 후단의 노랫말 세번째 소원을 균천악노래의(勻天樂老萊衣, 광균천악을 듣고 노래의를 입으소서)로 불렀다. 이 노랫말은 1901년 신축진연의궤(한국음악자료총서 24)와 1920년에 묶여 전해지는 정재무도홀기(한국음악자료총서 4, 1980)에도 원문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나 윤용구가 1901년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국연정재창사초록>에는 세세류담담풍(細細柳澹澹風)과 균천악구여송(勻天樂九如頌)으로 바뀌어 있으며, 현재는 바뀐 노랫말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순조 기축진찬의궤에서는 정재 중간에 선모(仙母)와 좌우 협무가 함께 불렀으나, 현재는 정재에서 분리되어, 수악절창사라는 독립적인 악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수악절창사는 정재의 무용수가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보허자 선율에 맞춰 불렀던 노래로, 일반 창사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 후기에 창사는 무원(舞員)이 노래만 부르거나, 가곡의 농락편의 선율을 차용(借用)하여 부르는데, 수악절창사는 무용수가 춤(回舞 등)을 추며 반주 음악 선율에 얹어 부르기 때문에 구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연행된 정재(呈才) 중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오양선(五羊仙), 몽금척(夢金尺), 헌선도(獻仙桃),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하황은(荷皇恩), 향령무(響鈴舞) 등 당악(唐樂) 계 정재에서 수악절창사가 불렸으며, 각 정재의 수악절창사가 어느 음악에 맞추어 노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보허자 선율에 맞추어 노래하던 장생보연지무의 수악절창사 만 전해오고 있다.
장생보연지무의 수악절창사 원문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단(前段): 천문해일선홍(天門海日先紅) 강사옥부(絳紗玉斧) 서기이융(瑞氣怡融) 승천가주천악(承天嘉奏天樂) 금봉은아일총총(金鳳銀鵝一叢叢) 양란포무회파(揚蘭蒲舞廻波) 세세류담담풍(細細柳澹澹風)"; 후단(後段): "구중춘색번도연(九重春色磻桃宴) 나삼엽엽무일편(羅衫葉葉舞一遍) 재배진삼원(再拜陳三願) 일원성수무강(一願聖壽無疆) 이원조야청연(二願朝野淸宴) 삼원균천악구여송(三願勻天樂九如頌) 세세년년차배헌(歲歲年年此盃獻) 전단(前段, 보허자 1장에 맞춰 부른다): 천문(天門)은 바다에서 해 오르자 먼저 붉고 진홍 옥도끼엔 서기(瑞氣)가 엉겨 있네. 하늘의 기쁨 이어받아 하늘 음악 연주하고 금봉새와 은거위들 떼지어 모였네. 향기로운 난초 품은 춤은 물결처럼 돌고, 가는 버들가지에 깃든 담담한 바람 같네. 후단(後段, 보허자 2장에 맞춰 부른다): 구중(九重)의 봄날에 반도(蟠桃)의 잔치 열리고, 비단옷 올올이 한바탕 춤추며 두 번 절하고 세 가지 소원 드리니 첫째는 폐하의 수(壽)가 무궁하시고, 둘째는 조야(朝野)가 맑고 편안하고, 셋째는 균천악(鈞天樂)이 퍼지고 구여(九如)를 살부리리. 세세년년하시길 이 잔을 바친다네.
창사의 선율은 관악보허자의 당피리 선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성악의 특징을 살려 다양한 시김새와 고음에서는 가성을 사용하기도 한다. 구전되던 노래였기에 채보하는 사람에 따라 선율과 시김새가 조금씩 다르며, 이주환 채보, 김기수 채보, 장사훈 채보, 이강덕 채보 등이 전하고 있다.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7. 『기축진찬의궤』, 한국음악자료총서3, 1980. 김우진,「 시조 가곡창사의 명칭에 대한 검토」, 『만당이혜구박사구순기념 음악학논총』, 이혜구학술상위원회, 1998. 송방송, 『한겨래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예술지식백과", 문화포털.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List.do?code_value=C&ccm_code=C011&ccm_subcode=C111 『신축진연의궤』, 한국음악학자료총서 24, 1984.
김우진(金宇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