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패(風角牌)
풍각쟁이패는 조선 후기 벙어리, 소경 등 장애인을 주축으로 한 유랑연희패로서 판소리, 퉁소, 북, 가야금, 해금, 검무 등을 공연했다. 많은 감로탱에 풍각쟁이패가 묘사되어 있는 점으로 볼 때, 풍각쟁이패도 대표적 유랑예인집단 중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재효본 《변강쇠가》에서는 변강쇠의 치상 장면에 풍각쟁이패로 판소리 가객, 퉁소쟁이 소경, 검무쟁이, 가얏고쟁이, 북쟁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변강쇠의 송장을 치우기 전에 우선 각자의 재주를 자랑한다. 검무쟁이는 〈여민락(與民樂)〉과 〈심방곡(心方曲)〉에 맞춰 춤을 춘다. 판소리 가객은 〈초한가(楚漢歌)〉를 부른다. 가얏고쟁이는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蒼梧雲)이라 하던 이태백으로 한짝. 삼년정리관산월(三年征裡關山月)이요 만국병전초목풍(萬國兵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짝. 둥덩덩지둥덩둥” 하며 〈짝타령〉을 연주한다.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의 『해동죽지(海東竹枝)』 중 〈풍각패〉 시에서도 풍각쟁이패가 신방곡(神房曲), 즉 심방곡(心方曲)을 연주한다.
풍각패(風角牌) | |
벙어리 소경이 손과 다리로 서로 위로하며 허리엔 퉁소 주머니엔 해금을 넣고 음식을 구하네. 구름 속까지 퍼지는 한 곡조 신방곡에 듣자마자 마음 움직여 눈물 흘리네. |
啞盲攣躄影相弔 腰笛囊琴食自求 穿雲一闋神房曲 聞輒移情淚迸流 |
풍각쟁이패는 대부분 장애인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이 시에서도 벙어리, 소경이 풍각쟁이패를 구성하고 있다.
정현석의 『교방가요』(1865) 잡희 조에서는 “풍각쟁이는 퉁소와 피리를 불며 구걸하러 다닌다.(風角 簫笛行乞)”라고 지적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에서는 “풍각쟁이(風角牌)는 병을 앓았던 자들이 해금, 단소를 배워 무리를 지어 시정에서 구걸하며 다녔는데, 그 곡조가 울거나 하소연하는 것같이 애절하여 듣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돈을 던져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풍각쟁이라고 부른다.(舊俗殘疾者習奚琴短 簫隊隊行乞於市 其曲如泣如訴聲甚哀絶 聞之者莫不流涕擲錢相助 名之曰 풍각쟁이)”라고 기록했다.
이보형은 풍각쟁이들의 기본 악기 편성은 퉁소ㆍ해금ㆍ가야금ㆍ북(소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악사의 편성과 다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풍각쟁이는 크게 퉁소ㆍ해금ㆍ가야금ㆍ북ㆍ가객ㆍ무동으로 편성이 되고, 작게는 퉁소ㆍ해금ㆍ북 또는 퉁소ㆍ해금 또는 퉁소ㆍ꽹과리로 편성되며, 극단적으로 퉁소 또는 해금잽이 홀로 행걸(行乞)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연주하는 악곡에는 흔히 〈니나리가락(메나리가락)〉, 〈시나위가락(심방곡)〉, 〈봉장취〉가 있고, 이 외에 〈삼현도드리〉 비슷한 곡, 〈자진타령〉 비슷한 곡, 판소리, 단가, 병창, 검무를 연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나위〉, 〈봉장취〉, 판소리, 단가, 병창은 본디 시나위권의 재인ㆍ광대ㆍ악공의 기예이므로, 이것들은 재인ㆍ광대ㆍ악공의 퇴물들이 풍각쟁이로 행걸하면서 끼어든 것이라고 보았다. 〈니나리가락〉은 메나리ㆍ어사용ㆍ산유화 같은 가락을 기악화한 것으로, 경상도 박수 퇴물들이 풍각쟁이 노릇을 하면서 끼어든 것으로 보았다.
풍각쟁이패는 〈수락산 흥국사 감로탱〉(1868), 〈개운사 감로탱〉(1883), 〈경국사 감로탱〉(1887), 〈불암사 감로탱〉(1890), 〈봉은사 감로탱〉(1892), 〈보광사 감로탱〉(1898), 〈삼각산 청룡사 감로탱〉(1898), 〈백련사 감로탱〉(1899), 〈신륵사 감로탱〉(1900), 〈대흥사 감로탱〉(1901) 등의 감로탱에 묘사되어 있다.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감로탱(1892년)에는 퉁소쟁이 소경, 검무쟁이, 가얏고쟁이, 해금쟁이, 북쟁이가 묘사된 풍각쟁이패가 그려져 있다. 또한 신재효본 《변강쇠가》에서 “검무 추난 아이놈이 양손에 칼을 들고 연풍대 좌우사위 번듯번 듯 드러메고”라고 서술한 것처럼 검무는 아이가 담당했다. 여러 감로탱에 나타나는 풍각쟁이패에는 한삼을 낀 무동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아이가 바로 검무쟁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여러 감로탱은 조선 후기의 풍각쟁이패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각쟁이패는 벙어리, 소경 등 장애인을 중심으로 성립된 연희집단으로 퉁소ㆍ해금ㆍ가야금ㆍ북 등의 악기 연주와 함께 판소리, 검무 등을 연행했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을 떠돌면서 연희를 공연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유랑예인집단이 속출했는데, 풍각쟁이패는 대표적 유랑연희패 중 하나였다.
심우성, 『한국전통예술개론』, 동문선, 2001.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 학고재, 2020. 박전열, 「풍각쟁이의 기원과 성격」, 『한국민속학』 11, 민속학회, 1979.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한국민속학』11, 민속학회, 1979. 전경욱, 「감로탱에 묘사된 전통연희와 유랑예인집단」, 『공연문화연구』 20,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전경욱(田耕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