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思悼世子)와 부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신위(神位)를 모신 경모궁(景慕宮)의 제례에 사용했던 음악과 악장(樂章, 노래))과 일무(一無, 춤)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은 조선 22대 왕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의 생부(生父)인 사도세자(1735~1762)와 부인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신위를 모신 경모궁의 제례에 올렸던 음악과 악장(樂章, 노래), 일무(佾舞, 춤)이다. 고종(高宗) 광무(光武) 3년(1899)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각각 장조(莊祖)와 헌경왕후(獻敬王后)로 추존(追尊)되고 그 신위가 경모궁에서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으로 합사(合祀)되면서, 제례에서는 더 이상 이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경모궁제례악의 구성곡은 〈오휴곡(於休曲)〉, 〈재명곡(齊明曲)〉, 〈제권곡(帝眷曲)〉, 〈진색곡(震索曲)〉, 〈유길곡(維吉曲)〉, 〈독경곡(篤敬曲)〉, 〈휴운곡(休運曲)〉, 〈휘유곡(徽柔曲)〉, 〈혁우곡(赫佑曲)〉, 〈유분곡(有芬曲)〉, 〈아례곡(我禮曲)〉으로 총 열한 곡이며, 일무는 문무(文舞)인 《계희운지무(啓熙運之舞)》와 무무(武舞)인 《보융은지무(報隆恩之舞)》의 2종을 의식과 음악에 따라 맞추어 춘다.
정조는 즉위 원년(1776) 생부인 사도세자의 사당을 수은묘(垂恩廟)에서 경모궁(景慕宮)으로 이름을 바꾸고 개축을 명하였으며, 그 사당에 사용할 제례를 중간 규모인 중사(中祀)로 정하였다. 열한 편의 악장은 대제학(大提學) 이휘지(李徽之, 1715~1785)에게 짓게 하고, 음악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인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서 발췌하였으며, 영신악(迎神樂)인 〈오휴곡〉을 세 번 연주하는 3성(成), 춤은 여섯 명씩 여섯 줄로 36명이 춤추는 육일무(六佾舞)로 하였다. 선왕(先王)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의 상(喪)이 끝난 정조 2년(1778)부터 경모궁제례악을 올렸다.
○ 역사 변천 과정
최초로 지은 경모궁제례악의 악장은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1783)에 기록되어 있다. 정조 4년(1780)에 편찬된 『시악화성(詩樂和聲)』에 일부 악곡의 악장을 고쳐 짓고 아악(雅樂) 양식으로 개작한 것이 있으나, 실제 연행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 정조는 곡 별 악장의 글자 수가 사언(四言) 또는 오언(五言)으로 일정하지 않아 이를 개작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제23대 순조 9년(1809)에 이르러서 악장은 대제학 남공철(南公轍, 1760~1840)에 의해 현재와 같은 사언사구(四言四句)로 개작되었고, 악곡명도 현재와 같아졌다.
정조 23년(1779) 영신악을 아홉 번 연주하는 9성으로 체계를 바꾸었다. 19세기 경모궁제례악의 음악과 악장 및 절차는 『악장요람(樂章要覽)』, 『속악원보(俗樂源譜)』, 『대한예전(大韓禮典)』 등의 문헌과 악보에 남아 있다. 광무 3년(1899)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신위가 종묘 영녕전에 합사된 이후 경모궁제례악은 더 이상 제례에 연행되지 않는다. ○ 절차 경모궁제례악은 영신, 전폐(奠幣), 초헌(初獻)에 《계희운지악(啓熙運之樂)》 다섯 곡, 진찬(進饌)에 〈혁우곡〉,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에 《보융은지악(報隆恩之樂)》 세 곡, 철변두(撤籩豆)에 〈강안지악(康安之樂〉, 송신(送神)에 〈경안지악(景安之樂)〉을 연주한다. 일무는 초헌의 문무인 《계희운지무》는 36명이 왼손에 약(龠),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고, 아헌과 종헌의 무무인 《보융은지무》는 36명 중 12명은 목검(木劍), 12명은 목창(木槍), 12명은 궁시(弓矢; 활과 화살)를 들고 춘다.
오늘날 경모궁제례악은 제례 없이 감상용 음악으로 연주된다. 악곡의 수와 순서도 제례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오휴곡〉, 〈진색곡〉, 〈유길곡〉, 〈혁우곡〉, 〈독경곡〉, 〈휴운곡〉, 〈휘유곡〉의 순서로 일곱 곡만 연주한다. 일무는 연행하지 않는다. ○ 악대 및 악기 편성 경모궁제례악의 악대(樂隊)는 당상(堂上)의 등가(登歌)와 당하(堂下)의 헌가(軒架)로 나뉘어 배치되었고, 절차에 따라 헌가와 등가가 번갈아 연주하였다.
『경모궁의궤』에 따르면 등가는 북쪽을 향하여 맨 앞에 박 1, 그 뒤로 제1열 가야금 1, 생(笙) 1, 퉁소 1, 현금(거문고) 1, 아쟁 1, 당비파 1, 제2열 당적 1, 대금 1, 노래 1, 노래 1, 훈 1, 피리 1, 제3열 방향(方響) 1, 편경 1, 어(敔) 1, 절고 1, 축 1, 장구 1, 편종 1로 총 20인이다. 헌가는 역시 북쪽을 향하여 맨 앞에 박 1과 노도(路鼗) 1, 그 뒤로 제1열 진고(晉鼓) 1, 편종 1, 어 1, 축 1, 편경 1, 방향 1, 제2열 훈 1, 피리 1, 노래 1, 노래 1, 대금 1, 태평소 1, 제3열 해금 1, 지 1, 생 1, 대금(大金) 1, 장고 1, 당적 1, 향비파 1로 총 21인이다. 대한제국의 의례서인 『대한예전』에서는 종래 쓰던 ‘헌가’라는 악대명을 황제의 예우에 따라 ‘궁가(宮架)’로 대체하였다. 『대한예전』의 등가는 북향으로 제1열 생 1, 가야금 1, 어 1, 축 1, 현금(거문고) 1, 아쟁 1, 비파 1, 제2열 퉁소 1, 방향 1, 노래 1, 노래 1, 훈 1, 피리 1, 제3열 당적 1, 대금 1, 편경 1, 장구 1, 절고 1, 편종 1로 총 19명이다. 궁가는 역시 북향으로 제1열 진고 1, 편종 1, 어 1, 축 1, 노도 1, 편종 1, 방향 1, 제2열에는 훈 1, 피리 1, 노래 1, 노래 1, 대금 1, 지 1, 제 3열 해금 1, 대금(大金) 1, 태평소 1, 장고 1, 생 1, 당적 1, 향비파 1로 총 20명이다. 악대에서 빠질 수 없는 박(拍)이 없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대한예전』 편자가 박을 악기로 보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박을 포함시킨다면 『대한예전』의 악대는 『경모궁의궤』의 것과 일부 악기의 위치만 달라졌을 뿐 인원과 구성에 거의 차이가 없다.
오늘날 경모궁제례악을 감상용으로 연주할 때는 일무를 연행하지 않으며, 악대는 생황, 가야금, 거문고, 비파, 통소, 훈, 당적, 노도, 향비파, 지가 빠진 편종, 편경, 축, 어, 절고, 방향, 아쟁, 대금, 당피리, 해금, 장고, 박, 그리고 휘의 편성으로 연주한다. 이는 종묘제례악 편성과 동일하다. 또한 제례절차가 사라진 상태에서 공연용으로 음약을 연행하기 때문에, 등가와 헌가를 구분하기도 하고 구분 없이 무대 위에 악기를 적절히 배치하기도 한다. ○ 음악적 특징 경모궁제례악의 구성 악곡은 종묘제례악인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곡을 발췌하여 만들었다. 〈오휴곡〉, 〈재명곡〉, 〈제권곡〉은 《보태평》 중 〈희문(熙文)〉을 축소한 곡이다. 〈진색곡〉은 《보태평》 중 〈기명(基命)〉을 축소한 곡이다. 〈유길곡〉은 《보태평》 중 〈역성(繹成)〉을 축소한 곡이다. 〈독경곡〉은 《정대업》 중 〈소무(昭武)〉를 축소한 곡이다. 〈휴운곡〉은 《정대업》 중 〈독경(篤慶)〉을 축소한 곡이다. 〈휘유곡〉은 《정대업》 중 〈영관(永觀)〉을 축소한 곡이다. 진찬〈혁우곡(숙안지악)〉, 철변두 〈유분곡(강안지악)〉, 송신 〈아례곡(경안지악)〉은 동일한 음악이며, 《종묘제례악》 중 〈풍안지악〉, 〈옹안지악〉, 〈흥안지악〉(역시 동일한 음악)을 축소하고 악장과 악곡명만 바꾼 것이다. 《보태평》에서 발췌한 《계희운지악》 다섯 곡(〈오휴곡〉, 〈재명곡〉, 〈제권곡〉, 〈진색곡〉, 〈유길곡〉)은 《보태평》과 같은 황(黃:C4), 태(太:D4), 중(仲:F4), 임(林:G4), 남(南:A4)의 5음 음계 황종 평조이다. 《정대업》에서 발췌한 세 곡(〈독경곡〉, 〈휴운곡〉, 〈휘유곡〉) 《정대업》과 같은 황(黃:C4), 협(夾:E♭4), 중(仲:F4), 임(林:G4), 무(無:B♭4)의 5음 음계 황종 평조이다. 〈혁우곡〉, 〈유분곡〉, 〈아례곡〉은 종묘제례악의 〈풍안지악〉 등과 같은 황(黃:C4), 태(太:D4), 고(姑:E4), 중(仲:F4), 임(林:G4), 남(南:A4), 응(應:B4)의 7음 음계이다.
정조 이후 조선의 역대 왕은 모두 사도세자의 후손으로 조선후기 경모궁제례는 국가의 중요한 의례로 연행되었다. 경모궁제례악은 정조가 그의 생부(生父)를 복권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진 제례악으로서, 그 음악과 일무는 종묘제례악을 기본으로 하여 그 규모를 축소하여 연행한 것이다. 경모궁제례악은 국왕으로서 정조의 음악관과 생부를 추모하는 마음이 담긴 악가무(樂歌舞)이며,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초기까지 제례악의 양상과 변화를 보여 주는 무형문화유산이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경모궁의궤』『금릉집』『대한예전』『속악원보』『시악화성』『악장요람』『이왕직아악부 오선보』『정조실록』『춘관통고』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김종수, 「경모궁 제례악 연구」, 『동양음악』 18, 1996. 김종수·이숙희, 『역주 시악화성』, 국립국악원, 1996. 서인화, 『역주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국립국악원, 2009. 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태학사, 2007. 임미선, 『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의 사적전개』, 민속원, 2011. 장사훈, 『증보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홍순욱(洪淳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