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천(姜彛天, 1769~1801)이 열 살 때인 1778년 서울 남대문 밖에서 인형극과 가면극을 보고, 11년 후인 1789년에 지은 한시
남성관희자는 강이천이 1778년 남대문 밖에서 본 인형극과 가면극을 묘사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가면극은 바로 〈본산대놀이〉이다. 인형극은 지금의 꼭두각시와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가면극은 현전하는 《양주별산대놀이》나 《봉산탈춤》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한국의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과장 등 서로 다른 독립적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 방식을 갖고 있다. 1770년대의 〈본산대놀이〉를 묘사한 남성관희자(1789)에 의하면, 〈본산대놀이〉는 18세기 중후반부터 이미 독립된 여러 내용이 모여 하나의 가면극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시는 먼저 인형극을 묘사하고, 이어서 가면극을 묘사한다. 인형극 부분에는 낯짝이 안반 같은 놈, 노기를 띠어 흉악한 놈, 더벅머리에 귀신 가면을 쓴 두 놈, 얼굴은 구리쇠에 눈에 도금을 한 놈, 북방민족인 달자(韃子, 달단), 귀신과 그 새끼 등 여러 인형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 인형극에 등장하는 인형들과 연희 내용은 현존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이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가면극 부분은 등장인물, 연희 내용, 과장 구성이 현전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들과 거의 유사하다.
(가) 평평한 언덕에 새로 자리를 펼쳐 平陂更展席
상좌 아이 깨끼춤 추는데 僧雛舞緇素
선녀 하늘로부터 내려왔나. 仙娥自天降
당의(唐衣)에 수놓인 바지(繡袴)를 입었으니 唐衣復繡袴
한수(漢水)의 선녀 구슬을 가지고 노는 듯 漢女弄珠游
낙수(洛水)의 여신 푸른 물결에 걸어나오듯. 洛妃淸波步
(나) 노장스님 어디서 오셨는지? 老釋自何來
석장을 짚고 장삼을 걸치고 拄杖衣袂裕
구부정 몸을 가누지 못하고 龍鍾不能立
수염도 눈썹도 도통 하얀데 鬚眉皓如鷺
사미승 뒤를 따라오며 沙彌隨其後
연방 합장하고 배례하고 合掌拜跪屢
이 노장 힘이 쇠약해 力微任從風
넘어지기 몇 번이던고? 顚躓凡幾度
한 젊은 계집이 등장하니 又出一少妹
이 만남에 깜짝 반기며 驚喜此相遇
흥을 스스로 억제치 못해 老興不自禁
파계하고 청혼을 하더라. 破戒要婚娶
광풍이 문득 크게 일어나 狂風忽大作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즈음 張皇而失措
또 웬 중이 대취해서 有僧又大醉
고래고래 외치고 주정을 부린다. 呼號亦恣酗
(다) 추레한 늙은 유생 潦倒老儒生
이 판에 끼어들다니 잘못이지. 闖入無乃誤
입술은 언청이, 눈썹이 기다란데 缺脣犭尨其眉
고개를 길게 뽑아 새 모이를 쪼듯 延頸如鳥嗉
부채를 부치며 거드름을 피우는데 揮扇擧止高
아우성치고 꾸짖는 건 무슨 연고인고? 呌罵是何故
헌걸차다 웬 사나이 赳赳一武夫
장사로 뽑힘직하구나. 可應壯士募
짧은 창옷에 호신수 短衣好身手
호탕하고 고매하니 누가 감히 거역하랴! 豪邁誰敢忤
유생이고 노장이고 꾸짖어 물리치는데 叱退儒與釋
마치 어린애 다루듯 視之如嬰孺
젊고 어여쁜 계집을 獨自嬰靑娥
홀로 차지하여 손목 잡고 끌어안고 抱持偏愛護
칼춤은 어이 그리 기이한고! 舞劍一何奇
몸도 가뿐히 도망치는 토끼처럼. 身輕似脫兎
(라) 거사와 사당이 나오는데 居士與社堂
몹시 늙고 병든 몸 老甚病癃痼
거사는 떨어진 패랭이 쓰고 破落戴敝陽
사당은 남루한 치마 걸치고. 纜縷裙短布
불가의 계율이 다 무엇인가! 禪律是何物
소리와 여색을 본디 좋아하여 聲色素所慕
등장하자 젊은 계집 희롱하더니 登場弄嬌姿
소매 벌리고 춤을 춘다. 張袖趂樂句
(마) 할미 성깔도 대단하구나 婆老尙盛氣
머리 부서져라 질투하여 碎首恣猜妬
티격태격 싸움질 잠깐새 鬪鬨未移時
숨이 막혀 영영 죽고 말았네. 氣窒永不窹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神巫擺叢鈴
우는 듯 하소하듯 如泣復如訴
너울너울 철괴선(鐵拐仙) 춤추며 翩然鐵拐仙
두 다리 비스듬히 서더니 偃蹇植雙胯
눈썹을 찡긋 두 손을 모으고 竦眉仍攢手
동쪽으로 달리다가 서쪽으로 내닫네. 東馳又西騖
(가)는 〈상좌춤(上佐舞)〉과 〈선녀춤〉이다. 현재 상좌춤과장은 《별산대(別山臺)놀이》와 《해서(海西)탈춤》에서 전승되고 있는 벽사적 의식무이다.
(나)는 〈노장과장〉이다. 노승이 젊은 계집[小妹]에게 반해 파계하면서 청혼한다. 이때 “또 웬 중이 대취해서 고래고래 외치고 주정을 부린다(有僧又大醉 呼號亦恣酗)”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술 취한 중 즉 취발이[醉僧]가 등장해 주정을 부린다. 현재 《별산대놀이》와 《해서탈춤》의 〈노장과장〉에서 노승이 소매를 차지한 후 취발이가 나와서 노승으로부터 소매를 뺏기 위해 싸우는데, 이 시에서도 노승이 소매를 차지한 후 술 취한 중 즉 취발이가 등장하고 있다.
(다)는 〈샌님과 포도부장춤〉이다. 샌님(늙은 유생)이 젊은 계집[小妹]을 차지하고 있는데, 칼을 찬 젊은 포도부장이 등장해 소매를 뺏고 칼춤을 추는 내용이다. 이는 현재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봉산탈춤》 등의 〈샌님ㆍ포도부장과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특히 샌님의 가면은 긴 눈썹에 쌍언청이 모습이어서, 《별산대놀이》ㆍ《해서탈춤》과 완전히 일치한다.
(라)는 〈거사(居士)와 사당(社堂)춤〉이다. 현재도 《봉산탈춤》에 〈거사와 사당춤〉이 있다.
(마)는 〈영감과 할미과장〉이다. 할미가 첩을 질투해 싸우다가 죽자, 무당이 등장해 방울을 흔들며 굿을 거행하는 내용이다. 이는 지금도 《별산대놀이》와 《해서탈춤》에서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내용이다.
이 시에는 〈사자춤〉 과장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에는 〈사자춤〉이 없지만 《봉산탈춤》ㆍ《강령탈춤》ㆍ《은율탈춤》 등 《해서탈춤》에는 〈사자춤〉이 나온다. 북한학자 김일출에 의하면, 《봉산탈춤》의 〈사자춤과장〉은 1913~1915년경부터 비로소 놀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강이천, 『중암고(重菴稿)』.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하, 창작과 비평사, 1992. 전경욱, 『산대희와 본산대놀이』, 민속원, 2021.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 학고재, 2020. 윤주필, 「조선 전기 연희시에 나타난 문학사조상의 특징」, 『동양학』 25,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95.
전경욱(田耕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