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중건 시 고종이 중건 현장에 친림했을 때 연행된 공연물들을 보고 지은 작품(1865년 추정)으로 작자 미상
『기완별록』(1865년 추정)은 경복궁 중건 시 고종이 중건 현장을 친림했을 때 연행된 공연물들을 보고 지은 것으로 분량 29면의 필사본 별책이다. 겉표지에 ‘奇琓別錄’이라 쓰여 있고 옆에 작은 글씨로 ‘가사’라고 부기되어 있다. 속표지에는 ‘긔완별녹’이라 표기했다. 『기완별록』에는 고종 2년(1865) 4월 25일 친림 행사에서 연행된 〈승전놀음(무동춤)〉 등 16종류의 공연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가사의 음보에 맞추어 필사했고 글씨체는 순한글이다. 작품형식은 3ㆍ4조 혹은 4ㆍ4조의 4음보 가사이며, 내용상의 특징은 송축과 함께 놀이의 양상에 대해 의식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원소장자로는 신암 김약슬 및 나손 김동욱의 인장이 찍혀 있고, 현재 단국대 율곡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완별록』의 가사 내용은 경복궁 중건의 송축(頌祝), 부역장의 노동 상황, 공연물 등을 묘사한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특히 고종 2년(1865) 4월 25일 친림 행사에서 연행된 16종류의 공연물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공연물은 (1) 승전놀음(무동춤), (2) 승전놀음(별감행열), (3) 승전놀음(포도군관의 가장행렬) (4) 탈춤판(노승, 취발이, 왜장녀), (5) 무동패 무동놀이, (6) 사냥놀이(무동, 포수, 수할치, 호랑이탈) (7) 팔선녀놀이 1(팔선녀, 성진), (8) 금강산 놀이(이동형 가산假山, 가산을 멘 군인들, 성진, 팔선녀). (9) 서유기놀이(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백마), (10) 팔선녀놀이 2(성진, 팔선녀, 이동형 채붕), (11) 요지연놀이(신선, 동자, 선녀(서왕모), 이동형 화가산花假山), (12) 상산사호놀이(네 신선, 선녀, 동자, 유자선), (13) 선동놀이(7~8세 가량의 어린아이, 가학假鶴), (14) 기생놀이(여복한 남자 연희자). (15) 축사逐邪놀이(호녀胡女), (16) 백자도놀이(제 각기 다른 소도구를 가진 어린아이들) 등이다.
이 중 〈금강산놀이〉, 〈팔선녀놀이2〉, 〈요지연놀이〉는 끌고 다니는 소형 산대인 산붕을 사용한 연희이다. 〈상산사호놀이〉도 산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가산(假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금강산놀이〉
한 곳을 바라보니 금강산이 온다 하네
허황한 말이로다 산이 어이 움직이랴
틀 위에 가산(假山) 꾸며 군인들이 메어 오네
가에는 곡곡주란(曲曲朱欄) 가운데는 첩첩청산(疊疊靑山)
암석(巖石)도 의연하고 송죽(松竹)도 새로워라
산속에 절이 있고 동구(洞口) 밖에 홍문(紅門)이라
성진이라 하는 중은 가사착복(袈裟着服) 합장하고
팔선녀 바라보고 석인(石人)같이 섰는 거동
우습다 저 화상이 삼혼칠백(三魂七魄) 잃었도다
산봉(山峯)마다 섰는 선녀 화안성모(花顔盛貌) 자랑하네
낭자에 가화(假花) 꽂고 화관(花冠)에 금봉채(金鳳釵)며
쌍환녹운(雙鬟綠雲) 두 귀 밑에 귀고리 흔들리네
능라의상(綾羅衣裳) 찬란하고 금수원삼(錦繡圓衫) 화려하다
깁부채와 꽃가지로 반만 차면(遮面) 할락말락
선연(嬋然)히 고운 자태 구름으로 내려온 듯
성진의 높은 도행(道行) 속절이 전혀 없네
윤회(輪回)의 괴로움 한번 면키 어려워라
이 산 이름 금강산이 번연히 의제(擬製)로세
성진과 팔선녀가 형산에서 만났으니
남악(南嶽)에 금강산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 산붕의 이름은 ‘금강산’인데,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내용이 널리 알려졌으므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구운몽」에서 성진과 팔선녀가 등장하는 배경은 중국 남악 형산이므로, 작자는 “남악에 금강산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 곳을 바라보니 금강산이 온다 하니 허황한 말이로다. 산이 어이 움직이랴.”라는 구절을 통해, 이것이 산의 형태를 갖춘 구조물인 이동식 산붕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산붕은 틀 위에 가산(假山)을 꾸며 군인들이 메고 오는 형태이다. 이는 군인들만의 힘으로 가산을 들어 메고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군인들이 수레바퀴를 설치한 가산을 메고 오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 산붕의 네 면에 난간이 있고, 가운데 첩첩이 중첩된 청산이 있는데, 암석과 송죽, 산속의절, 동구 밖 홍문도 있다. 성진은 가사를 입고 팔선녀를 바라보고 있고, 팔선녀는 각 산봉우리 위에 있다. 가화를 꽂고 화관, 금봉채를 하고 능라의상ㆍ금수원삼을 입었다. “석인같이 섰는 거동”과 “산봉마다 섰는 선녀”라는 구절에서 성진과 팔선녀가 잡상 인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팔선녀놀이2〉
어느 패 팔선녀는 재력(財力)만 허비하고
의상도 다름없고 치장(治粧) 별함 없다
여복(女服) 위에 긴 등거리 모양다리 바이 없네
올려 세운 난간판(欄干板)에 네 귀 연화(蓮花) 괴이하랴
대기둥 가가(假家) 위에 남사앙장(藍紗仰帳) 덮었으며
오색면주(五色綿紬) 얽어치고 좌우에 양각등(羊角燈)과
홍살문에 북을 달고 성진이가 법고 치네
저 성진이 거동보소 장삼 소매 젖혀 매고
두 손에 북채 쥐고 어지럽게 두드릴 때
대가리는 요령(搖鈴) 같고 검은 수염(鬚髥) 흩날리네
번화한 의사(意思)로되 소견(所見)에 눈이 설다
아무리 의빙(依憑)인들 저런 성진 뉘 보았나
앞의 〈금강산놀이〉에서는 “틀 위에 가산(假山) 꾸며 군인들이 메어 오네”라고 했지만, 〈팔선녀놀이2〉에는 가산(假山) 대신 가가(假家)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올려 세운 난간판(欄干板)에 네 귀 연화(蓮花) 괴이하랴 대기둥 가가(假家) 위에 남사앙장(藍紗仰帳) 덮었으며 오색면주(五色綿紬) 얽어치고”라고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 고종 2년(1865) 5월 20일 기사 중 반촌(泮村)의 〈선녀무(仙女舞)〉와 유사하다. 이 기사에서는 회동(會同)의 〈연화대〉, 반촌의 〈선녀무〉, 전동(典同)의 〈사호기(四皓碁)〉가 가장 이름난 잡희라고 지적했다.
〈팔선녀놀이2〉에서도 “홍살문에 북을 달고 성진이가 법고 치네. 저 성진이 거동 보소. 장삼 소매 젖혀 매고 두 손에 북채 쥐고 어지럽게 두드릴 때, 대가리는 요령(搖鈴) 같고 검은 수염 흩날리네”라고 해, 성진이로 분장한 연희자가 실제로 북을 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팔선녀도 당연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는 〈낙성연도〉의 채붕 위에서 실제 인간 연희자들이 만석중(노장)과 기생, 취발이와 기생으로 가장하고 연행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경복궁 중건 시 성진, 팔선녀와 관련된 연희는 〈금강산놀이〉처럼 이동식 가산(假山) 위에 성진과 팔선녀의 잡상 인형을 설치한 경우도 있고, 〈팔선녀놀이2〉와 〈선녀무〉처럼 이동식 채붕 위에서 성진과 팔선녀로 분장한 인간 연희자들이 실제로 북을 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지연놀이〉
어느 패 신선놀이 배포(排布)가 방불(彷佛)하다
연봉난간 채색판(彩色版)에 화가산(花假山) 괴석(怪石)이며
송죽기화(松竹奇花) 불로초 황학 청학 사슴이라
언연(偃然)히 앉은 신선 풍채가 단정하다
… 중략 …
앞에 앉은 작은 동자(童子) 색등거리 쌍상투에
호로병 옆에 차고 풍로에 차(茶)를 달여
유리종(琉璃鐘)에 부어 들고 꿇어 앉아 드리는양
선녀 일인(一人) 모셨으니 자질도 요나(嫋娜)하다
… 중략 …
요지연(瑤池宴)을 마다하고 어디로 향하는가
… 중략 …
앞으로 지나갈 때 향취(香臭)가 옹울(蓊鬱)하니
한편에 섰는 것은 유자선(柳子仙)이 분명하다
파초선(芭蕉扇)에 상모 달아 조심하여 들었으니
티끌을 붙였는지 햇빛을 가리는가
자두지족(自頭至足) 푸른 외에 의복(衣服)조차 푸르도다
… 중략 …
이처럼 〈요지연놀이〉는 곤륜산의 서왕모가 요지에서 베푸는 요지연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동자, 선녀, 유자선을 묘사한다. 그리고 “연(蓮)봉난간 채색판(彩色版)에 화가산(花假山) 괴석(怪石)이며 송죽기화(松竹奇花) 불로초 황학 청학 사슴이라 언연(偃然)히 앉은 신선 풍채가 단정하다”라고 해, 가산(假山) 위에 신선들과 송죽기화, 불로초, 동물 등 신선계의 모습을 잡상으로 설치했음을 전해준다. 즉 신선 세계를 형상화한 산붕으로 볼 수 있다.
『기완별록』(1865)에서 경복궁 중건 시 연행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공연물은 16종목이다. 조선 말기에 민간에서 전승되던, 매우 다양한 전통연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금강산놀이〉, 〈팔선녀놀이2〉, 〈요지연놀이〉 등 끌고 다니는 소형 산대인 산붕을 사용하는 연희가 매우 후대까지도 존재했음을 전해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박세연, 『동아시아 기관인형 연구』, 민속원, 2015. 윤주필, 『조선조 축제문화의 마지막 광경을 읽다 -경복궁 중건의 연희 공연과 관극시가 연구-』, 민속원, 2020. 전경욱, 『산대희와 본산대놀이』, 민속원, 2021. 사진실, 「산희와 야희의 공연 양상과 연극사적 의의 : 『기완별록』에 나타난 공연 행사를 중심으로」, 『공연문화연구』 3, 한국공연문화학회, 2001.
전경욱(田耕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