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음악(民俗音樂), 속악(俗樂)
민간에서 향유되었던 음악 가운데 풍류방 음악을 제외한 나머지를 이르는 분류 명칭, 또는 생활 속에서 연주되는 음악만을 이르기도 함.
민속악, 민속음악, 속악은 각각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고 유래와 역사도 차이가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용어는 속악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우리나라의 음악을 향악이라 하였으나 『고려사 』 「악지」에서는 우리나라의 음악을 속악이라 명명하고 있다. 성리학을 숭상한 고려사 편찬자들의 모화사상으로 아악의 대칭어 격인 속악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속악은 정악의 대칭어로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정악은 구한말의 정악유지회와 조선정악전습소, 광복 이후 한국 정악원 등에서 사용하였던 용어이며 이때부터 정악과 민속악의 대칭적 용어 사용이 널리 정착하게 되었다. 정악이라는 용어가 궁중음악과 풍류방 음악을 포함하는 개념이었고 때로는 이를 아악이라고도 하였으므로 정악과 아악의 대칭어로서의 민속악은 풍류방 음악을 제외한 민간의 음악을 이르는 말로 활용되었다.
민속악에 포함되었던 음악 가운데 공연예술음악의 연주자들은 궁중음악이나 풍류방 음악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므로 음악적인 구분이 어렵다는 점, 정악과 아악의 대칭어로 사용되던 민속악을 신분 문제와 연계하여 보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점차 이러한 구분을 벗어나려는 여러 시도가 계속되었다.
한편 학문 분야 가운데 민속학이 있는데, 여기에서 ‘민속’은 민간생활과 관계된 생활 풍속이나 습관, 신앙, 기술, 전승 문화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국악계의 민속악이 포함하고 있는 직업음악인의 공연예술 계열은 민속악이라 볼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직업음악인이 아닌 일반인의 삶 속에서 자족적으로 향유하던 민요와 농악 등의 음악을 민속음악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 따라 기존의 민속악으로 규정하던 민간 음악 가운데 공연예술음악을 예술음악으로 따로 분리하고, 일반인들의 음악을 민속음악으로 규정하는 사례도 있다.
국악개론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분류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정악(아악)과 민속악의 2분법과 기악, 성악, 악가무(樂歌舞)종합의 3분법, 풍류음악, 예술음악, 민속음악, 궁중음악, 종교음악, 창작음악의 6분법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정악과 민속악의 2분법은 궁중음악과 풍류방 음악을 정악으로, 이외의 민간 음악을 민속악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신분제도를 기반으로 하였다는 점과 동일한 연행자의 음악이 두 분야에 각각 걸쳐 있으므로 그렇게 나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2분법을 대체하는 분류방식으로는 제시된 3분법은 음악 구성을 기반으로 분류한 것이나 악가무(樂歌舞)종합예술의 비중이 매우 큰 탓에 분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가장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6분법은 음악의 기능과 역할, 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나눈 분류법으로 새롭게 시도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민속악은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광의의 민속악은 풍류방 음악 이외의 민간음악으로 보는 경우이며 협의의 민속악은 공연예술음악이나 종교음악을 제외한 민간 생활 관련 음악으로 보는 경우이다. 광의의 민속악에는 공연예술음악인 판소리, 산조, 잡가, 통속민요, 농악, 삼현육각, 연희 음악, 가면극 음악 등과 종교음악인 무속음악, 불교음악이 포함되며 협의의 민속악에는 향토민요, 마을 농악이 해당된다. 그런데 농악의 경우 뜬쇠의 농악, 걸립패의 농악, 사당패의 농악 등은 공연예술음악에 해당하므로 협의의 민속악에는 속하지 않으나 두렁쇠의 마을 농악은 협의의 민속악에 해당하므로 동일 음악 갈래임에도 구분이 쉽지 않다.
○ 광의의 민속악 : 공연예술음악과 종교음악
17세기부터 18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후 한국음악에서 공연예술음악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공연예술음악은 직업음악인들에 의해 베풀어지는 음악이며, 누군가는 수요자가 되어 구입해야 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만큼 전문적이고 세련되어야 하며, 대중적이면서도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어야 했다. 음악을 사고 파는 일을 가능케 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필수 조건이었다. 조선후기 이앙법 등 농사법이 발달하여 생산량이 증가했고 이로 인한 잉여 생산물을 통해 장시가 발달했다. 바로 그러한 장시는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공연예술음악의 전승 주체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지역별 붙박이 집단이며, 다른 하나는 유랑하며 공연을 하던 유랑예인집단이다. 붙박이 집단은 재인청이나 신청 중심으로 활동하던 무계 출신 음악인들이며, 유랑예인집단은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공연을 펼치는 집단을 말한다. 조선후기 붙박이집단이 만들어낸 음악문화는 판소리를 시작으로 하여 기악 음악인 산조로 확장되었다. 또 사당패와 같은 유랑예인집단의 공연 종목은 후에 각종 연희, 걸립농악, 잡가와 통속민요의 기반이 되었다.
불교의 의식 전반에는 음악이 사용된다. 절에 거처하는 스님들이 하는 기본적인 경 읽기에 사용되는 음악을 염불이라 하고, 따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스님들이 규모가 있는 의식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범패(梵唄)라 한다. 절에서는 새벽과 저녁 식사 전에 예불(禮佛)을 드리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시간에는 사시공양을 하는 등 일상적인 의례에도 모두 음악이 있고, 일반인을 위한 크고 작은 다양한 불교의식에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이같이 일상 생활 속에서 하던 음악은 협의의 민속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범패는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이며, 범음(梵音)·어산(魚山) 또는 인도(印度, 引導)소리라 불리기도 한다. 범패가 불리는 대표적인 재는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수륙재(水陸齋)·영산재(靈山齋) 등이다. 범패는 음악적인 성격에 따라 안채비들이 부르는 안채비소리와 겉채비(바깥채비)들이 부르는 홋소리와 짓소리, 그리고 축원을 하는 화청(和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아울러 범패는 의식무용인 작법(作法)과 더불어 연행되는데, 범패는 이들 작법무의 반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법무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法鼓)춤>, <타주(打柱)> 등이 있다. 범패와 작법은 그야말로 전문예인의 것이므로 광의의 민속악에 해당한다.
무속신앙(巫俗信仰)은 사제자인 무당을 주축으로 하여 민간에서 전승하고 있는 종교 형태이며 이들의 의식인 굿은 음악과 춤을 주축으로 연행된다. 굿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대풍류 계열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시나위 계열, 경을 읽는 독경 계열, 그리고 농악으로 연주되는 행진음악 계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풍류》는 <긴염불>, <자진염불>, <도드리>, <타령>, <굿거리>와 같은 악곡을 거상악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취타>나 <길타령>과 같은 악곡을 행진음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시나위는 무가나 무무의 반주에 사용하며 무당의 노래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선율을 반주하는 것으로 <남도시나위>와 <경기시나위>로 구분된다. 즉흥적인 악기의 선율이 중첩되는 화려한 연주의 시나위는 현재 독립된 공연예술 레퍼토리로도 연주되고 있다.
○ 협의의 민속악 : 향토민요와 농악
향토민요와 농악은 평민들의 생활음악이다. 민요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향토민요는 노동요와 유희요, 의식요로 구분하며 다양한 삶의 현장 곳곳에서 불려 왔다. 사투리와 닮은 지역별 토리를 기반으로 지역민의 언어적 관습과 미적 취향을 담은 문화로서 감정과 정서의 표현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농악은 한국 사람들이 널리 향유해 왔던 전통 문화로서 음악과 춤, 연극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종합 예술이다. 농악은 마을굿과 같이 풍요를 기원하거나 축원 행사, 예술음악으로서의 공연, 공공기금 마련을 위한 걸립, 풍년이나 풍어를 축하하는 마을 잔치나 개인의 잔치 등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매구, 지신밟기, 마당밟이, 풍장굿, 두레굿, 걸립굿, 걸궁 등 수 많은 별칭으로 불려왔다.
공연예술음악 계열은 직업으로 음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들의 음악이므로 예술적 완성도, 세련된 기교와 공력 등 무대 예술로서 갖추어야 할 높은 수준의 음악을 구현하며 대중의 호응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매우 심미적이며 창의성과 예술성, 대중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음악적으로는 다양하고 난이도 있는 음악적 특징, 발달된 음악이론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굿음악과 불교의식음악 등의 종교음악은 대체로 사제자가 직접 연행하는 경우가 많다. 무속집단은 세습되는 경우와 강신되는 경우로 나뉘지만 양자가 모두 직접 굿을 연행한다. 불교의식 역시 불교 사제자 내에서 별도로 훈련을 통해 키워낸 범패승과 작법승에 의해 진행되므로 사제자이지만 직업음악인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 협의의 민속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 향토민요와 마을농악은 구전 음악이면서 비 직업음악인들이 수행하는 음악이다. 일반인들이 스스로 자족적으로 향유하던 문화로서 유동성과 창의성, 즉흥성 등이 특징이지만 공동체의 의식, 축제, 노동에 활용되므로 합주나 제창 형태인 경우가 많아 내재된 음악적 질서와 공동체 정신이 잘 담겨 있는 문화이다.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김혜정, 『새로 쓴 국악교육의 이론과 실습』, 민속원, 2013. 백대웅 외, 『전통음악개론』, 어울림, 1995. 장사훈‧한만영, 『국악개론』, 한국국악학회, 1975.
김혜정(金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