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조, 진장단, 진양
진양조는 판소리나 산조와 같은 민속음악에 사용되는 장단 가운데 가장 한배가 느린 장단이다. 진양조의 ‘진’은 ‘질다’의 줄임말이며, ‘길다’는 의미의 사투리 표현이다. 한배가 ‘길다’는 것은 음악의 빠르기가 느리다는 의미이다. 보통 산조의 첫 번째 장단으로 진양조가 사용되며, 판소리에서는 웅장하고 힘 있는 장면, 매우 애절하고 슬픈 장면 등 가장 극적인 대목의 묘사에서 사용된다. 진양조는 3소박 6박자(6/♩.)의 구조로 되어 있으나, 연주자에 따라 판소리나 산조에서 사용하는 진양조를 24박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기경결해(起景結解: 밀고, 또는 내고ㆍ달고ㆍ맺고ㆍ풀고)의 의미를 각각 1장단 씩에 부여하여 하나의 악구가 24박(6박×4장단)에 형성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진양조는 판소리와 판소리의 파생 장르인 창극, 병창과 산조, 잡가 등의 갈래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무가와 민요에서도 동일한 구조의 장단을 발견할 수 있다. 무가에서는 진장단, 진조와 같이 부르기도 한다.
『조선창극사』의 기록에 의하면 진양조는 19세기 김성옥이 발견하고 송흥록이 완성한 장단이라 한다. 전라도의 향토민요 가운데 육자배기와 흥글소리 등 6박자(2+2+2박자 구조) 민요가 있고, 무가에도 6박자 장단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층음악에서의 6박자를 정형화한 것이 판소리의 진양조 장단일 것으로 본다. ,
1950년대 이후로 진양조 장단이 24박 구조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는데, 진양24박론과 기경결해의 생사맥(生死脈) 관련 이론은 오성삼이 정리한 것이며, 이것을 음악에 적용하여 정리한 인물은 오성삼의 제자인 동초 김연수이다. 진양조 24박론이 나온 이후에 6박자 구조의 진양조는 육자배기에서 볼 수 있고, 판소리와 산조는 24박에 가깝다는 수정론이 제기되어 진양조의 성격을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24박론을 한 단계 더 이론화 시킨 결과 24박을 24절기(節氣)에 맞추어 해석하고 기경결해를 다시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절에 맞게 해석하기도 하는 등 음양절기설(陰陽節氣說)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 구성요소 및 원리
판소리에서 진양조는 매우 웅장하고 힘찬 분위기인 경우에 우조와 함께 사용하며, 아주 슬픈 분위기를 연출할 경우에는 계면조와 함께 사용한다. 우조와 진양조를 조합한 대표적인 대목으로 춘향가의 적성가, 긴사랑가, 박석티, 심청가 중 시비따라, 범피중류, 수궁가 중 소상팔경, 적벽가 중 천여척, 흥보가의 집터잡이 등을 들 수 있다. 또 계면조와 진양조가 사용된 대목으로는 춘향가 중 십장가, 이별가, 옥중가,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 추월만정, 수궁가 중 용왕 탄식, 주부 모친 통곡, 적벽가 중 군사설움타령, 흥보가 중 가난타령, 박타령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 진양조가 판소리의 서사적 구조 가운데 가장 중요한 눈대목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조는 느린 음악에서 빠른 음악으로 진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므로 진양조가 가장 첫 부분에 사용된다. 산조의 진양조 선율은 대부분 우조로 시작하고 이후 계면조로 전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진양조는 한배가 길어 한 장단의 주기가 크므로 장단을 넘나드는 엇붙임을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여긴다. 따라서 대체로 장단 내에서 음절수는 늘거나 줄 수 있지만 장단을 넘어서지 않는 대마디 대장단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정정렬과 같은 명창은 진양조에 엇붙임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진양조장단은 한배에 따라 ‘늦은진양조’, ‘진양조’, ‘자진진양조’ 등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2소박 6박자(6/4)의 약간 빠른 진양조를 자진진양조, 또는 세마치라 부른다. 세마치는 일제강점기에 많이 사용하였으나 근래의 판소리에서는 드물게 사용된다.
진양조는 내드름 부분에서는 가사를 보통의 절반 정도만을 붙여서 다른 장단들과 확실한 붙임새의 차이를 만든다. 가사가 많을 경우에는 중반에 가사를 더 촘촘히 붙여 부르며, 마지막 종지할 때는 내드름와 유사하게 음절 수를 줄여 붙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목 내에서 1장단에 붙는 음절의 수에 따라 형식적인 구조가 형성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드름에서 4글자 안팎이 1장단에 붙는 것과 달리 평균적으로는 8글자 안팎이 1장단에 붙는 경우가 많으며, 가사가 많아 곡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에는 12글자 안팎을 주서 붙이거나 엇붙임으로 붙이기도 한다.
퇴령 | 소 | 리 |
도련 | 님이 | 좋아 | 라고 |
요지 | 찾듯 | 차즘 | 차즘 | 찾어 | 갈제 |
진양조를 24박론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래와 같이 내는 형(미는 형), 다는 형, 맺는 형, 푸는 형의 네 개를 하나의 장단으로 묶는 이론이다. 모든 진양조의 음악이 24박 단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북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연수와 같은 경우 24박에 맞게 악곡의 단락을 수정하는 적극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내는(미는)형은 반각을 약간 세게 치고, 다는 형은 매화점자리를 굴려 치며, 맺는 형은 온각(대각)자리를 매우 세게 치고, 푸는 형은 뒷손으로 뒷 궁을 굴려 치는 주법을 말한다. 진양조장단의 북이나 장구 가락은 대체로 기경결해의 형태를 기반으로 하므로 2박에서 4박까지는 가락을 연주하지 않다가 5박과 6박에 기경결해의 특징이 드러나는 가락을 넣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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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조 장단은 전남 서남부 지역 민요와 무가 등 기층음악에서 출발하여 판소리와 산조 등 예술음악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장단이다. 느린 장단으로 정서적 표출을 극대화하는데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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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金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