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두
명창이 전승받은 소리제를 새롭게 구성하였을 때 해당 소리제를 규정하는 말
바디라는 말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스승에게 받았다 하여 ‘받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틀에 달린 연장을 일컫는 ‘바디’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베틀의 바디는 날실을 한 가닥씩 구분해주어 실이 엉키지 않게 만드는 도구이므로 스승이 잡아 준 소리제의 굵은 줄기를 의미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바디는 다른 이름으로 바두라고 하는데, 전라도에서 베틀의 바디를 보두나 바두, 보디 등으로 부른다. 바디를 제나 유파보다는 작은 개념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바디의 한문 표현이 제(制) 또는 유(流)라고 보아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근래의 사용 양상으로 보면 제나 유파보다 작은 개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바디는 소리꾼의 이름 뒤에 붙여 이전의 소리제와 달라진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다. 송만갑 바디, 김세종바디와 같은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드물게 동편바디, 서편바디와 같이 유파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여 유파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일반적이지 않다. 오히려 동편제 송만갑바디 박봉술창와 같이 유파에 이어 바디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즉 바디는 유파보다는 층위가 작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제, 바디, 창의 순서처럼 마지막에 현재 부르는 이의 이름을 연결함으로써 해당 소리제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판소리의 전승 계보를 나타내는 말 가운데 가장 큰 개념으로 유파나 제를 들 수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는 이를 ‘대가닥’이라 규정하고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호걸제의 네 가지 유파를 들었다. 그런데 동편제 내에서도 명창에 따라 세분되는 차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바디와 같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동편제 송만갑바디, 동편제 김세종바디와 같이 동일한 동편제이지만 서로 음악적 구성과 내용이 달라진 경우 이를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바디는 본인이 전승하는 소리제에 개성을 더해 새로운 양식을 구축하였을 때 붙일 수 있는 개념이므로 새롭게 만든 명창의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소리 명창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소리를 득음과정을 거치면서 자기화하게 되고, 종국에는 자신만의 소리제로 만들게 되므로 이름을 얻은 명창이라면 누구나 바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연수는 매우 독창적인 소리제를 완성하였으므로 그의 소리는 김연수의 호를 붙여 동초제라 부른다. 김연수의 소리를 오정숙이 이었고, 이후 은희진, 이일주, 조소녀 등이 이었고 이후에도 여러 제자들에 의해 여러 세대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경우 김연수바디도 가능하지만 오정숙바디나 이일주바디도 가능하다. 김연수는 동초제라는 유파 개념으로 상향시키고 김연수의 소리를 조금 정리한 오정숙에 바디를 사용한 후 이일주 창과 같이 쓸 수 있다. 그러나 세대가 더 지나게 되면 바디를 붙일 명창의 이름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바디는 본래 해당 소리제를 완성한 대표 명창의 이름을 붙여야 하지만 근래에는 자신의 직계 스승의 이름을 붙이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현재 전승되는 춘향가는 서편제의 정정렬바디, 동편제의 송만갑바디와 김세종바디(보성소리)가 있고, 동편제와 서편제가 섞여 만들어진 김연수의 동초제와 김소희의 만정판 등이 전승되고 있다. 동초제와 만정판은 비교적 늦게 만들어졌지만 유파가 섞였다는 점에서 바디보다는 유파의 층위로 볼 수 있다. 현재 전승되는 심청가에는 서편제의 정응민바디, 김채만바디(또는 박동실바디), 그리고 중고제의 김창진바다(또는 박동진바디), 여러 유파를 섞은 김연수의 동초제가 전승된다. 흥보가에는 동편제의 송만갑바디, 송만갑에서 비롯된 김정문바디(또는 박녹주바디, 박송희바디)와 박봉술바디, 서편제의 박초월바디, 김연수의 동초제가 전승되고 있다. 수궁가는 유성준바디(또는 임방울바디, 정광수바디, 박동진바디 등), 정응민바디, 김연수바디가 전한다. 적벽가는 송만갑바디, 정응민바디, 김연수바디, 조학진바디 등이 전한다. 이상과 같이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소리제들은 스승의 이름을 내세운 바디명을 쓸 수도 있고 제자들 중에서 바디명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다.
판소리의 유파나 제에 대한 개념이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고, 무형문화재 제도에 의해 전승 계보가 강조되면서 바디의 개념 역시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판’이라는 개념도 사용하는데 송만갑바디를 송판이라 하거나 만정 김소희의 소리제를 만정판과 같이 표현하는 등 판과 바디를 같은 개념이나 층위로 보기도 한다.
김혜정, 『판소리음악론』, 민속원, 2009. 김혜정, 『판소리』, 국립무형유산원, 2023.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사, 1940. 김기형, 「적벽가의 형성과 창자의 전승계보」, 『판소리 동편제 연구』, 태학사, 1998. 유영대, 「심청가의 형성과 전승계보」, 『판소리 동편제 연구』, 태학사, 1998. 이보형, 「판소리제에 대한 연구」, 『한국음악학논문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인권환, 「수궁가의 형성과 창자의 전승계보」, 『판소리 동편제 연구』 , 태학사, 1998. 최동현, 「흥보가의 전승 과정과 창자」, 『판소리 동편제 연구』, 태학사, 1998.
김혜정(金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