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반(告祀盤), 비나리, 고사염불(告祀念佛)
고사를 지낼 때 부르는 소리
고사소리는 재수와 복을 기원하여 올리는 고사(告祀)에서 부르던 소리이다. 고사는 주로 집안 일이나 마을의 일에 지내는 일이 많으나 특별한 목적을 가진 고사들도 있다. 고사를 할 때에는 고사소리를 연행할 수 있는 사제자나 연희자를 초대하여 노래로 축원하도록 하므로, 이때 불리는 노래를 고사소리라 한다.
고사의 유래와 시작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사로는 홍패고사나 백패고사와 같은 것이 있다. 홍패고사와 백패고사는 과거에 급제한 이들이 지내는 고사이다. 소과(小科)에 급제한 이는 흰 교지를 주므로 백패고사라고 하고, 문과(文科)에 급제한 이는 붉은 교지를 주므로 홍패고사라고 한다. 과거에 합격하면 국가에서 길일을 택해 왕이 참석한 가운데 합격증인 홍패(紅牌), 백패(白牌), 모화(帽花), 개(蓋), 주과(酒菓) 등을 하사받는 방방의(放榜儀)를 행하고, 이후 과거 급제자가 광대를 앞세우고 삼현육각을 연주하게 하면서 거리를 돌며, 과거 시험관·선배·친척들을 찾아보는 삼일유가를 행하고, 자신의 집으로 친척이나 친구를 초대하여 급제를 축하하는 문희연(聞喜宴)을 베풀었다. 이와 같은 풍습은 당송대에 비롯되어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부터 확인된다. 정조대의 「낙남헌방방도」에는 방방의를 행하는 공간 밖에서 대기하는 광대들이 그려져 있으며, 「평생도」에는 삼일유가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송만재의 『관우희』(1843)에도 문희연에서 덕담을 하는 것과 연행자인 판소리꾼들이 언급되어 있다.
○고사의 종류
성주고사는 새 집을 지은 후 드리는 고사를 가리키며 이때 안택경을 읽으면 안택고사라고도 이른다. 성주고사는 집안의 일이 잘 풀리도록 지내는 경우도 있다. 명당고사는 조상의 묘를 쓸 때나 묘에 비석을 세울 때 지내는 고사이며, 비를 세우는 고사를 한편 입비고사(立碑告祀)라고 한다. 뱃고사는 배를 새로 만들었을 때, 그리고 안전과 풍어(豊漁)를 빌기 위해 해마다 정초에 지낸다.
○고사소리의 연행자
판소리꾼과 같은 광대나 창부가 노래하는 경우 이를 광대고사소리라 부른다. 과거에는 판소리꾼이 고사소리를 연행하는 일이 당연하였으나 판소리가 무대 예술화되면서 점차 판소리꾼은 판소리만 부르고 고사소리는 고사소리꾼이 부르는 것으로 분리되었다. 걸립승이 오거나 승려를 불러 고사를 하는 경우에는 고사염불을 외워 고사를 지낸다. 이때 그릇에 쌀을 수북이 담고, 실타래를 감은 숟가락을 세워 꽂아 놓은 고사반을 놓고 외우므로 고사염불을 고사반이라고도 부른다. 독경쟁이가 고사를 지내줄 때는 주로 안택경을 읽기 때문에 안택고사(安宅告祀)라고 한다. 농악대나 탈광대를 쓴 걸립패들도 고사를 지내주는데 직업적 걸립패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지역에 따라 성격이 다른 고사소리를 구연한다.
○고사소리의 음악적 종류와 특징
고사소리의 성격을 분류할 때에는 연행자 성격에 따라 절걸립패와 직업적 걸립패(비나리패, 낭걸립패)의 두 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음악적 계열성에 따라 절걸립패계통, 성주굿계통, 광대 고사소리계통으로 나누기도 한다. 절걸립패 계통이라 함은 승려가 하는 고사염불과 그 영향을 받은 절걸립 농악대의 고사소리를 말한다. 주로 중부 이북과 서도에서 전승되며 고사덕담(告祀德談), 고사선염불(告祀先念佛), 뒷염불, 평염불(平念佛)이라고 하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일명 <회심곡>), <반맥이>, <오조(悟調)> 등을 부른다. 이 지역의 고사소리는 경토리와 메나리토리로 된 곡이 많으며 굿거리, 세마치, 자진모리장단이나 불규칙 장단으로 된 것들이 많다. 반맥이와 같은 일부 곡에서는 서도의 토리와 시김새가 사용되기도 한다.
광대고사소리 계통은 판소리꾼이 많았던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부르는 소리로 <치국(治國)잡기>, <산세풀이(명당풀이)>, <성주풀이>, <과거풀이>, <액풀이>, <삼재(三災)풀이>, <살풀이>, <비단풀이>, <패물풀이>, <호구역(戶口役)살풀이>, <농사풀이>, <집짓기>, <방안등물풀이>, <노적타령>, <업타령>, <음식타령>, <기물타령>, <집치레>, <보화타령>, <농기구타령>, <액맥이타령> 등을 부른다. 광대고사소리는 패개성음과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으로 부르며 대부분 육자배기토리(평계면조), 또는 남부경토리(우조)로 되어 있다.
여러 풀이류 계열 악곡에는 중중모리와 자진모리 장단이 사용되며 대부분 고수(鼓手)가 북으로 반주한다. 이들 악곡 가운데 치국잡기와 산세풀이, 명당풀이 등과 같이 본래부터 고사소리의 성격으로 시작된 계열이 있는가 하면 비단타령이나 방안등물풀이, 기물타령 등 판소리 흥보가의 <박타령> 대목과 유사한 악곡이나 <업타령>, <노적타령>, <액맥이타령> 등 굿의 축원 성격 무가를 공유하는 악곡이 포함되어 있다.
고사소리는 홍패고사와 백패고사 등에 소리꾼이 참여한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초기 판소리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광대고사소리가 패개성음으로 되어 있으며 음악적 양식이 판소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판소리의 음악적 연원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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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金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