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1900년부터 1905년까지 존속한 궁내부 소속 장악기관
갑오개혁으로 왕실 업무 관련 기관을 총괄하는 궁내부가 설치된 후, 궁내부 장례원 봉상사를 거쳐 협률과가 궁중의 악무(樂舞)를 담당하다가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교방사가 이를 이었다. 교방사는 황실의 주요 공식 행사에서 악무를 담당하고 교육을 통해 이를 전승하였다.
조선시대의 장악원은 예조 소속이었으나 갑오개혁과 함께 1894년 왕실 관련 기관을 총괄하는 궁내부가 설치되면서 궁내부 소속이 되었다. 이후 1895년 4월 궁내부 소속 장례원의 봉상사가 제례와 함께 악을 담당하다가 11월 장례원의 다섯 과(課) 중의 하나인 협률과에서 악을 담당하게 되었고, 1900년 협률과의 명칭이 교방사로 바뀌었다. 교방사의 이름은 명나라와 청나라 등 중국 궁중에서 악무(樂舞)와 희곡(戱曲)을 관장한 기관명에서 유래한다.
○ 설립 목적
갑오개혁으로 개혁파 인사들에 의해 궁내부가 설치되었다.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하여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지 않도록 한 것인데, 고종의 황제 즉위 이후에 궁내부는 황제권을 실현하는 기구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궁내부 소속 교방사는 이러한 대한제국기 황실의 악무을 담당하도록 설립되었다.
○ 조직의 체계와 구성원
갑오개혁 이후 장악원은 궁내부에 직속되었다. 고종실록 1900년(고종 37) 6월 19일 기록에 따르면, 교방사에 제조 1인은 칙임관(勅任官), 주사(主事) 2인은 판임관(判任官)으로 둔다고 하였다. 칙임관이란 상급, 판임관은 하급 관료이다. 포달(布達) 제59호 궁내부관제(宮內府官制) 개정(改正)에 따르면, 궁내부 장례원 경(卿)이 교방사 제조를 겸했으며 연향(宴享)이 있을 때는 제조를 별도로 차출했다. 교방사의 인원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다만, 『조선아악요람』에 1897년 장악기관1 의 구성원으로 행정 관리직인 제조 1명, 주사 2인 외에도
악인과 악인 출신으로 직(職)을 받은 악사 12명, 전악 15명, 아악을 담당하는 악생 200명, 향악과 당악 담당인 악공 540명, 사무를 돕는 임시 직원인 고원(雇員) 1명과 사령(使令) 1명으로 총 775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900년부터 1905년까지 존속한 교방사의 인원을 이에 비추어 추정해 볼 수 있다.
1) 『조선아악요람』은 1897년 장악기관을 교방사로 기록하였으나, 1897년의 장악기관은 협률과였으므로 부서명이 잘못된 것인지 연도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 역사적 변천
궁내부의 장례원이 1905년 3월 예식원으로 변경되면서, 장례원 소속이었던 교방사는 예식원에 속하게 되었고, 이름도 장악과로 바뀌었다.
○ 활동
교방사는 국가와 황실의 주요 공식 행사에서 악무를 담당하고 악인(樂人)들을 교육하고 이를 전승했다. 대한제국에서는 국왕이 황제의 지위를 갖게 되었으므로 일무를 제후국의 육일무(六佾舞)에서 천자의 팔일무(八佾舞)로, 헌가(軒架) 악대를 궁가(宮架)로 승격시키고, 천신을 제사하는 원구제를 복원했다. 또한 고종은 황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적지 않은 진연을 개최했다. 1900년 고종의 생일인 만수성절(萬壽聖節) 연회, 1901년 황실 어른인 현종의 계비(繼妃), 효정왕후의 망팔(望八)인 71세 경축 진찬과 고종의 50세 생일 경축 진연을 베풀고, 다음 해인 1902년에는 고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入所) 기념 진연, 그리고 고종 즉위 40주년 및 망륙(望六)인 51세 경축을 위한 진연을 개최했다. 이때 의식절차가 복잡해지고 정재, 악곡의 수가 늘어나 참여 여령(女伶)과 무동의 수가 늘었다. 교방사 제조 이하 관리와 악인들은 여령과 무동을 교육시키고 이들과 함께 진연과 진찬 등 연회에 참석하여 악의 연행을 주도했다. 또한 조선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고종이 파견한 일행과 함께 1900년 11월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여 전통음악을 연주했다.
국내외적 격변기였던 대한제국기에 교방사는 5년 동안 황제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내는 대규모 행사에서 악무를 연행하고 교육을 통해 이를 전승했다. 교방사는 그 이름이 황제국이었던 중국 궁중의 악무와 희곡 관장 기관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도 대한제국 시기 장악기관으로서 상징성을 보여준다.
『조선아악요람』(국립국악원 소장) 『조선왕조실록』
박은옥, 「조선후기와 청나라의 궁중연악 비교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64, 2020. 이정희, 「대한제국기 장악기관의 체제」, 『공연문화연구』 17, 2008. 조경아, 「대한제국기 연향에서 정재 준비와 공연의 변모」, 『한국음악사학보』 45, 2010.
서인화(徐仁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