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제례를 비롯한 궁중 의례의 악을 담당한 장악기관
대악서는 고려의 대표적인 장악기관이다. 관리직들의 조직을 갖추고 제례악을 담당할 뿐 아니라, 관현방과 함께 양부(兩部)로 불리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연례악 등 다양한 궁중 의식을 위한 공연을 관리했다.
『예기』 「악기」 편에 “대악(大樂)은 천지와 동화(同和)한다”고 하였다. 천자는 하늘에 제사 지내고 제후는 산천에 제사 지내는 유교의 법도가 있었다. 훌륭한 예와 악의 가치를 담은 대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장악기관을 대악서라고 한 것이다. 이미 신라시대에서도 장악기관인 음성서를 대악감(大樂監)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중국 당나라에도 국가기구로서 대악서가 있었다. 대악서의 설립연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사』에 목종 대(997~1009)에 대악서 영(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악서가 10세기 말에 행정체계를 갖추었다고 추정된다.
○ 설립 목적 고려 성종 대에 당나라 제도를 따라 대부분의 중앙관부를 정하고 제례의 대상을 유교적으로 정비하였는데, 대악서는 이후 당의 대악서를 따라 성률(聲律)을 교열(敎閱)하기 위한 기구로서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악은 나라의 제례악과 관련이 깊은 개념이므로, 대악서는 제례를 비롯한 나라의 의례에 사용하는 악을 관장하도록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조직 및 역할 대악서 악인(樂人)의 구체적인 인원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대악서(大樂司로 기록됨)에 왕이 상용하는 260인의 여기(女妓)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에는 대악서라는 기관명의 악인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대악관현방의 뛰어난 악인의 일부가 업사(業師), 즉 가(歌)ㆍ무(舞)ㆍ악(樂)의 지도자 혹은 어전(御前) 공연의 대표, 또는 조회와 의례를 담당한 관서인 각문(閣門)에서 일정한 직임이 없는 산직(散職)을 받은 자로서 작은 녹봉을 받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악서의 행정 관료로는 영(令) 1명과 승(丞) 2명이 있었다. 영은 임금에게 정기적으로 문안드리는 조참(朝參)에 나아가지 못하는 7품 이하에 속하는 종7품이었고, 승은 종8품이었다. 이들은 모두 문반 출신의 행정관이었다. 영은 의례에서 악기를 진설하고 악공과 여기를 무대로 인도하고 정렬하고 퇴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악서 이후에 생긴 관현방에 하급직인 판관이 있었던 것에 비해, 대악서 관리의 직급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 역사적 변천 목종 대에 영이 있었고, 문종 대에 승 2명이 추가되며 조직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1076년(문종 30)에 관현방이 설치되면서 대악서는 관현방과 함께 양부로 불리게 된다. 대악서와 관현방을 합하여 대악관현방이라고도 불렸다. 원의 간섭기에 들어서 대악서가 전악서로 고쳐졌다가 다시 대악서가 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308년(충렬왕 34)에 전악서가 되었으며, 이를 자운방(紫雲坊)에 속하게 하고 영 2명을 두고 종7품에서 정7품으로 승격시켰다. 그 아래 장(長), 승(丞), 사(史), 직장(直長)을 각각 2명씩 두었다. 장은 종7품, 승과 사는 종8품, 직장은 종9품이었다. 이후에 다시 영을 종7품으로 내렸으며, 장은 없애고, 직장은 종7품으로 올렸다. 부직장(副直長)을 더 두고 종9품으로 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전악서를 다시 대악서로 고쳤는데, 영은 그대로 종7품으로 하고, 다시 장을 두고 같은 종7품으로 올리고, 사와 승은 그대로 종8품으로 두고, 직장은 다시 종9품으로 내리고, 부직장은 없앴다.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전악서로 개칭하고, 관원 수와 관품은 모두 이전대로 하였다. 1369년(공민왕 18)에 대악서로 바꾸었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다시 전악서로 고쳤다. ○ 활동 고려시대에는 향악과 당악에 더하여 1116년(예종 11)에 송나라를 통해 아악이 유입되었다. 대악서는 원구제ㆍ사직제ㆍ종묘제ㆍ문묘제ㆍ선농제 등 각종 제례에서 악을 담당했으며, 관현방과 함께 양부로서 조회ㆍ하례 등 궁중 의례와 의례 이후 벌어지는 잔치에서 연례악을, 왕의 행행(行幸)과 환궁, 연등회 등 나라의 대대적인 야외 행사 시에 채붕을 설치하고 놀이판을 벌여 가무, 백희(百戲) 연행을 관리했다.
대악서는 고려의 대표적인 장악기관이다. 고려의 공식적인 최초의 장악기관으로 3세기 이상 제례악을 담당하고, 관현방과 함께 양부로 불리면서 나라의 주요 잔치와 행사에서 아악과 당악, 향악 등 다양한 악을 관장했다.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김창현, 「고려시대 음악기관에 관한 제도사적 연구」, 『역대 국립음악기관 연구』, 2001 송방송, 「대악서와 관현방」, 『역대 국립음악기관 연구』, 2001 임영선, 「고려시대 교방에 대한 재고찰」, 『국악원논문집』 39, 2019.
서인화(徐仁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