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1905년부터 1908년 중반까지 황실의 악을 담당한 기관
장악과는 대한제국기 교방사를 이어 1905년부터 1908년까지 존속한 궁내부 소속 장악기관이다. 장악과는 황실의 주요 공식 행사에서 장악원으로부터 이어온 악(樂)을 맡아 연행하고 악인들을 교육하여 이를 전승했다. 1907년 일본이 강제로 군대를 해산시켰는데, 군대가 해산되면서 신식 군악대도 폐지되어 군악대의 일부 대원들이 장악과에 흡수되었으며, 이때 장악부의 직제에서는 이전의 행정 관리자들이 빠지고 악인(樂人)들만 남았다. 이후 1908년 장악과는 장악부로 개칭되었는데, 전통 군영악대인 내취(內吹)의 경우에는 소속 관청인 선전관청이 1895년 궁내부 산하 시종원(侍從院)으로 바뀌어 있다가 1900년부터는 시어청(侍御廳)의 관리 중 우시어(右侍御)의 관할 아래 있었고, 1908년에 장악부로 이속되었다.
갑오개혁으로 1894년 왕실 업무 관련 기관을 총괄하는 궁내부가 설치되면서, 예조 소속이었던 장악원의 역할을 궁내부 장례원 소속 협률과가 담당하다가, 대한제국이 되면서 교방사로 바뀌었다. 1905년 3월 장례원이 예식원으로 변경되면서 교방사도 장악과로 변경되었다. 장악과의 이름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장악기관인 장악원에서 유래하였다.
○ 설립 목적
장악과는 대한제국기 근대화 과정에서 황실의 악을 담당한 교방사에 이어 설립되었다.
○ 조직의 체계와 구성원
궁내부의 포달(布達) 제59호에 의하면, 장악과는 장악제조(掌樂提調) 2명, 주사(主事) 3명, 악사장 1명, 악사 2명 이하로 구성되었다. 장악제조는 고위 관료인 칙임관으로 장례원 경이 겸임했다. 장악제조와 주사는 행정직 관리이고, 악사장과 악사는 악공(樂工)과 악생(樂生) 출신 관리자로, 행정직 관리들과 구분되었다. 악사장과 악사는 궁중 의례를 진행하고 악공과 악생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이 장악과의 직제는 1906년 8월 상위기관인 예식원이 다시 이전의 장례원으로 변경되었을 때도 전체적으로 지속되었고 주사만 3명에서 3명 이하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1907년 군대가 해산되고 이와 함께 군악대도 폐지되자 양악 군악대원이 장악과에 흡수되어 장악과에서는 대대로 내려온 전통 악을 국악이라 하여, 이전의 악사장과 악사를 국악사장과 국악사라고 불렀고, 양악 군악대원 중에 관리직을 악사장과 악사로 칭했다. 관보에 따르면 장악과의 관리직은 국악사장 1명, 국악사 2명, 악사장 1명, 악사 2명으로 재편되었고, 장악제조, 주사 등 행정직 관리는 없어졌다. 악인의 경우, 『조선아악요람』에 1907년 장악(掌樂) 8명, 전악(典樂) 15명, 악공(樂工) 172명, 악생(樂生) 104명, 사동(使童) 1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역사적 변천
장악과는 1908년 8월 24일 장악부로 개칭되었는데, 국악사장, 국악사, 악사장, 악사는 1907년과 동일하게 각각 1명, 2명, 1명, 2명이었다. 『조선아악요람』에 장악은 8명이었고, 전악, 악공, 악생은 각각 10명, 130명, 70명으로 줄었다. 대신 전에 없던 취타악기를 연주하는 취타내취(吹打內吹) 24명, 삼현육각을 연주하는 세악내취(細樂內吹) 24명이 새로 생겼다. 이는 선전관청 소속 내취가 1895년 궁내부 산하 시종원(侍從院), 1900년부터는 시어청(侍御廳)의 관리 중 우시어(右侍御)의 관할 아래 있다가 1908년에 장악부로 이속되었기 때문이다.
○ 활동
장악과는 예식원(이후 장례원)에 소속되어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로 인한 순종 황제의 즉위 행사 등 황실의 주요 공식 행사에서 악을 담당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악인의 교육도 이루어졌다. 한편, 대한제국기 궁궐 안에서 각종 명분으로 열린 서양식 연회인 원유회(園遊會)에 일부 장악과의 전악과 악공이 차출되어 공연하기도 했다.
장악과는 국가와 황실의 주요 공식 행사에서 장악원으로부터 이어온 악을 담당하고 악인들의 교육을 통해 이를 전승하는 역할을 했다. 장악원에서 악인들과 함께 국가 악의 정책과 실행을 담당하던 행정 관리직이 1907년 11월 장악과의 직제에서 빠지고 실무 악인들만으로 구성되어 국가의 악을 총괄 추진하는 장악기관으로서의 위상이 내려갔다고 평가된다. 또한 1907년부터 신식 군악대의 양악 연주자도 수용하는 등 장악과는 조선의 근대화 과정 중에 궁중 문화예술의 지속과 변화양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장악과라는 명칭은 현재 국립국악원의 공연 부서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조선아악요람』(국립국악원 소장) 『조선왕조실록』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세악수·내취』, 태학사, 2007.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5. 이정희,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행차와 악대」, 『한국음악사학보』 53, 2014. 이정희, 「대한제국기 군악대 고찰」, 『한국음악연구』 44, 2008. 이정희, 「대한제국기 장악기관의 체제」, 『공연문화연구』 17, 2008.
서인화(徐仁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