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成俔)이 『현금합자보』를 위해 지은 서문
현악기를 위한 기보법인 합자보 창안 동기와 목적, 방법을 기술한 거문고 악보 서문으로 거문고 애호가이자 『악학궤범』의 대표 편찬자였던 성현이 지었다. 현존 최고(最古)의 거문고 악보로 알려진 『금합자보(琴合字譜)』(1572)보다 앞선 시기의 합자보 편찬 사실을 알려주는 사료로 성현의 문집 『허백당집』에 수록되어 전한다.
조선 전기에는 기보법에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전 시대의 기보 방법과 악보의 보유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우나 고려 시대에는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글자로 표기하는 육보(肉譜) 형태의 기보법과 대성아악(大晟雅樂) 수용과 함께 알게 된 중국 아악 기보법 등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조에는 아악을 연구하면서 중국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및 『대성악보(大晟樂譜)』 등의 아악 기보 방법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1430년(세종 12)에 『신제아악보(新制雅樂譜)』를 편찬할 때는 12율명을 문자로 기보하는 율자보(律字譜)와 당악 표기법인 공척보(工尺譜)를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종은 향악에 기반을 둔 신악을 기보하기 위한 새로운 기보법인 정간 기보법을 창안하고. 세조 조에는 한 줄에 32정간을 배열한 세종의 정간보를 16정간으로 줄이고, 정간을 셋, 둘씩 묶어 ‘3-2-3-3-2-3’ 구조의 대강 개념을 부여하고, 12율명 대신 향악의 5음 체계를 ‘1·2·3·4·5’의 숫자로 간략히 나타내는 한편, 악곡의 속도를 나타내기 위해 각 악곡의 시작 대강을 달리한 기보법이 정착되었다. 성종 조에는 이전까지의 기보법에 악기 연주법을 부가하는 새로운 기보법이 고안되었다. 주로 현악기 연주를 위한 정보를 문자로 표기하는 합자보(合字譜)로, 성현의 「현금합자보서」에 따르면 이 기보법은 성현에 의해 정리되었다.
성현의 문집 「현금합자보서」는 세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문단에서는 시간 예술인 음악의 특성과 전승의 어려움을 논한 다음, 음악을 기록하여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자보』를 편찬하게 된 목적과 음악 기보의 중요성에 대한 성현의 생각을 담았다. 두 번째 문단에서는 공자가 중시한 현악기의 지법이 악보로 남게 된 배경과 고려조에 북송으로부터 전래된 악보의 존재, 저자 성현이 장악원 소속 음악가 박곤(朴𦓼)ㆍ김복근(金福根)과 함께 지법과 현의 순서를 탐구하여 합자방법을 정리하였음이 기술되었다. 아울러 기본적인 합자 원리에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부기하고, 대강보를 활용하였다는 사실과, 이 기보법이 거문고 외에 가야금ㆍ향비파ㆍ당비파 기보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이로써 완성된 악보를 『합자보』라 하였음을 밝혔다. 세 번째 문단에는 합자보가 현악기를 배우는 초학자 음악 교육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장 중에 자신을 ‘신(臣)’으로 표기한 점으로 미루어 합자보의 창안과 악보 편찬이 공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금합자보서」는 『악학궤범』 편찬 과정에서 거문고 애호가이자 대표 편찬자인 성현이 장악원 소속 음악가 김복근ㆍ박곤과 함께 기존의 현악기 합자법의 체계를 참고하여 조선의 현악기 거문고 및 가야금, 향비파 및 당비파 연주법을 완성하게 된 과정과 이를 토대로 『합자보』를 편찬하게 된 과정을 알 수 있는 기록으로서 의의가 있다. 성종 조에 성현에 의해 편찬된 『합자보』는 현전하지 않으나 이 서문을 통해 『금합자보』에 언급된 ‘기존의 악보’ 실재 사실 및 현악기 교육 장려를 위해 편찬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허백당집(虛白堂集)』
송혜진, 「성현(成俔)의 실전(失傳) 「현금합자보(玄琴合字譜)」 연구」, 『음악이론포럼』 5, 1997. 송혜진, 「15세기 허백당 성현의 음악 견문기록과 의의」, 『한국음악연구』 66, 2019.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