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악의 한 갈래로 전승되어 온 중국 전래의 고전음악. 또는 아정(雅正)한 음악의 범칭
아악은 중국 고대에 형성된 음악 생각의 하나로 중정(中正)을 구비한 아정한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주(周) 시대에 군주의 통치에 걸맞는 유교식 음악 연주 제도가 정립되었으며,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 진선진미(盡善盡美)’한 대악(大樂)으로 정의되었다. 주 시대 이후 아악은 군주의 바른 통치와 교화를 드러내는 궁중 의례음악으로 전승되었으며, 이러한 음악생각은 인접 국가에도 전파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ㆍ대만ㆍ베트남에서도 아악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1116년 북송으로부터 대성아악(大晟雅樂)이 수용된 이래 조선으로 전승되었고 세종 때에는 아악의 이론과 악기 제작, 악보 선별 등 아악의 연주에 필요한 연구가 포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다른 나라의 아악과 차별화된 조선의 신제 아악(新制雅樂)의 전통이 수립되었다. 『세종실록』 「악보」에 제례 및 연례에 사용될 아악이 구비된 이래 필요에 따라 국가 의례에 사용되었다. 아악의 연주와 춤은 20세기 이후로 문묘제례악으로서 전승되었고 현재는 재현된 사직제례에서도 연주되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궁중음악을 ‘아악’이라 일컬었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통칭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현재는 특정 음악 양식과 그 전통을 한정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 아악의 율려와 조
아악은 악곡의 형식과 연주 형태가 특정된 고유한 음악 양식을 갖추고 있다. 아악에는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으로 산출한 고정 진동수를 가진 12율이 있고, 12율은 양률(陽律)인 황종(黃鍾)ㆍ태주(太蔟)ㆍ고선(姑洗)ㆍ유빈(蕤賓)ㆍ이칙(夷則)ㆍ무역(無射)과 음려(陰呂)인 대려(大呂)ㆍ협종(夾鍾)ㆍ중려(仲呂)ㆍ임종(林鍾)ㆍ남려(南呂)ㆍ응종(應鍾)으로 구분된다. 양률과 음려는 아악을 연주할 때 열두 달을 양과 음으로 구분하여 수월용률(隨月用律)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고, 등가(登歌)와 헌가(軒架) 악대에 각각 음려와 양률을 적용하는 원칙으로도 사용되었다. 즉, 양률은 헌가악에, 음려는 등가악에 각각 기음(起音), 즉 시작하고 종지하는 음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아악을 연주할 때는 해당 악곡의 ‘조(調)’가 지정되어 있어 용도에 따라 조의 운용이 결정된다. 예를 들면 군왕의 악조, 왕세자의 악조가 달리 적용되고, 제사에서는 대상에 따라 천ㆍ지ㆍ인(天ㆍ地ㆍ人)의 악조가 구별되며, 신을 맞이할 때(迎神)의 음악, 보낼 때(送神)의 음악도 조가 다르다. 또, ‘기조필곡(起調畢曲)’이라는 원칙에 따라 악곡은 반드시 시작한 음으로 끝내는 원칙이 있다.
○ 구성과 연행
아악은 보통 가사가 있는 노래와 악기연주, 춤을 동반한 악무 형태로 연행된다. 노랫말은 한문시 4언 1구, 4구 1장, 또는 8구 1장으로 된 정형시로서 글자마다 음이 한 개씩 붙는 일자일음(一字一音) 식의 단순한 형태의 선율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속도는 완만하다. 아악의 악기연주는 특별하게 편성된 두 개의 악대, 당상악(등가)과 당하악(헌가/궁가)으로 구성된다.
○ 악기편성
아악의 악대 편성(악현)은 악기의 소리가 여덟 가지 자연 재료를 구비해야 한다는 조건이 중요하다. 여덟 가지 자연 재료란 고대로부터 ‘팔음’으로 규정되어 온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 등 각각의 재료로 만든 악기들이 있으며, 이 악기들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단수, 혹은 복수로 편성된다. 조선 전기 아악 연주에 사용된 팔음 악기는 금부에 특종(特鐘)ㆍ편종(編鐘)ㆍ순(錞)ㆍ탁(鐲)ㆍ요(鐃)ㆍ탁(鐸), 석부에 특경(特磬)ㆍ편경(編磬), 사부에 금(琴)ㆍ슬(瑟), 죽부에 소(簫)ㆍ약(籥)ㆍ관(管)ㆍ적(篴)ㆍ지(篪)ㆍ독(牘), 포부에 생(笙)ㆍ우(竽)ㆍ화(和)ㆍ토부에 훈(塤)ㆍ부(缶), 혁부에 뇌고(雷鼓)ㆍ영고(靈鼓)ㆍ노고(路鼓)ㆍ뇌도(雷鼗)ㆍ영도(靈鼗)ㆍ노도(路鼗)ㆍ진고(晋鼓)ㆍ절고(節鼓)ㆍ건고(建鼓)ㆍ응고(應鼓)ㆍ삭고(朔鼓)ㆍ아(雅)ㆍ상(相), 목부에 축(柷)ㆍ어(敔)ㆍ응(應)이 편성되어 있었다. 이후 아악 연주에 편성된 악기의 종류와 수는 시대마다 변화를 겼었다.
한편, 아악 편성의 주요 악기인 편종과 편경은 연주 계기와 대상에 따른 등급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천자의 예에는 편종과 편경을 악대의 네 방향에 각각 세 틀씩 배치하고, 제후의 예에는 세 방향에 각각 세 틀씩 배치하는 식이다. 또 타악기 중 일부는 제례의 대상에 따라 북면의 수와 색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천신 제례에는 북통에 검은색을 칠하고 북면이 여섯인 뇌고와 뇌도를, 지기를 위한 제례에서는 북통에 노란색을 칠하고 북면이 여덟인 영고와 영도를, 인귀를 위한 제례에서는 북통에 붉은색을 칠하고 북면이 넷이 노고와 노도를 친다. 이러한 연주규범은 악기의 소리가 천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매개이며, 차등을 통한 예의 질서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 춤
아악의 주요 구성요소인 춤은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두 가지로,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줄을 맞춰 춤을 추게 되는데 이를 일무(佾舞)라고 한다. 문무와 무무는 규격에 맞는 고유한 복식과 의물이 있었으며, 춤추는 인원도 계기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천자의 예에는 여덟 줄로 추는 춤(팔일무)을, 제후의 예에는 여섯 줄로 추는 춤(육일무)를 추는 원칙이다. 이와 같은 아악의 주악 원칙은 대부분 주대에 완성되어 전승된 것이며 조선에서는 육일무를 대한제국에서는 팔일무를 추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다시 육일무를 췄다. 현재는 팔일무를 춘다. 문무를 출 때는 무원이 머리에 개책관을 쓰고, 왼손에는 ‘약(籥)’, 오른손에는 ‘적(翟)’을 들고, 무무를 출 때는 무원이 머리에 피변을 쓰고 왼손에는 간(干), 오른손에는 도끼(戚)를 들고 춘다.
○ 악곡과 악보
『세종실록』 「악보」에는 1430년(세종 12)년에 정인지(鄭麟趾)가 세종의 명으로 지은 ‘아악보서’(雅樂譜序)와 제례에 사용할 아악 144곡과 연향에 사용할 아악 322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아악 정비 작업에 참고한 원대의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에 실린 석전악(釋奠樂)과 원나라 임우(林宇)의 『대성악보(大成樂譜)』를 참고하여 정한 제례악과, 주자(朱子)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 실린 풍아십이시보(風雅十二詩譜)를 참고하여 정한 의례 및 연향을 위한 아악곡이다. 세종조에는 참고한 원전의 악곡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악론 연구를 바탕으로 『율려신서(律呂新書)』의 이론체계에 따라 조선식으로 변용(變容)하였고 이 악보의 실린 악곡들이 그러한 결과다. 이렇게 제정된 조선의 신제 아악은 새로운 수요가 발생했을 때 언제든 새로운 가사와 결합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면 조회와 회례연, 양로연에서 〈융안지악(隆安之樂)〉ㆍ〈서안지악(舒安之樂)〉ㆍ〈휴안지악(休安之樂)〉ㆍ〈문명지곡(文明之曲)〉ㆍ〈무열지곡(武烈之曲)〉ㆍ〈수보록지악(受寶籙之樂)〉ㆍ〈근천정지악(覲天庭之樂)〉ㆍ〈하황은지악(荷皇恩之樂)〉ㆍ〈수명명지악(受明命之樂)〉의 가사에 아악 선율을 적용할 때 주악 계기에 따라 「신제아악보」의 선율을 선별해서 사용했다.
『악학궤범』에는 성종조의 아부 제악 열다섯 곡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12율을 기조로 하는 열두 곡과 영신 및 천ㆍ지ㆍ인 제사 대상에 따라 선별하는 〈송신 협종궁〉, 〈송신 임종궁〉, 〈송신 황종궁〉 세 곡을 합한 것이다.
○ 용도
아악 정비 이후 아악은 국가의 대사ㆍ중사의 제례 및 조회 및 연향에서 연주되다가 1464년(세조 10) 이후로는 종묘를 제외한 풍운뇌우ㆍ사직ㆍ문묘ㆍ선농ㆍ선잠 제사에 주로 쓰였고, 조회 및 연향에서는 아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1704년(숙종 30)부터 새로 시행된 황단제(皇壇祭)에, 그리고 대한제국기에 황제국을 표방하면서 회복된 원구제(圜丘祭)에 아악이 연주되었고, 연향에서는 1743년(영조 19)과 1765년(영조 41)에 세종 때 정비된 아악이 사용된 예가 있다.
아악은 중국 주대에 연원을 둔 고대 음악 양식으로 유교의 통치 질서에 걸맞은 주악제도와 규범을 갖추고 전해온 고전음악이다. 음악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아정한 음악이자, 예와 악의 질서를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유교 국가의 궁중 의례음악 전통으로서 고대인의 음악 생각이 구현된 연주 양식을 보유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인문적 가치가 높다. 12세기 초반에 아악을 수용한 이후, 조선 세종 때 혁신적으로 정비한 ‘신제아악’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이 잇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악 전통은 인접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고려사』 「예지」, 「악지」 『세종실록』 「악보」 『악학궤범』 『사직서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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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