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8년(세종 30), 내불당(內佛堂)에서 거행된 불교 의식 경찬회(慶讚會)와 세종이 친제한 불교 음악 내용을 기록한 불교 문헌
세종조의 왕실 불사에 대한 기록으로 세종이 친제한 불교 음악 곡명과 불교 의식에서 연행된 악장, 연주와 춤 등의 주악, 연주자 명단, 불교의식집인 「삼불예참문(三佛禮懺文)」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인 김수온(金守溫)의 문집 『식우집(拭疣集)』과 금속활자인 초주(初鑄) 갑인자(甲寅字)로 간행된 두 종류의 판본으로 전한다.
1448년(세종 30)에 세종의 명으로 내불당이 완공되고, 이를 기념하여 봉행된 경찬회(慶讚會)에서 사리(舍利)가 분신하고 빛을 발한 이적(異蹟)이 있었던 전말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문의 저자는 김수온이고, 간행 시기는 집필자 김수온의 직명이 ‘병조정랑’으로 명시된 점을 근거로, 1449년과 145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사리영응기』는 두 가지 판본으로 전한다. 집필자의 문집인 『식우집』에 주석 없이 2,235자로 기록된 것과, 주석을 붙여 금속활자본으로 간행된 『사리영응기』이다.
○ 체제
단행본 『사리영응기』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〇 표지: 당초문양의 바탕에 황갈색표지
〇 외제: 舍利靈應記 單.
〇 크기: 세로 30.4cm × 가로 19.8cm.
〇 면수: 24면.
〇 편집: 매면 9행 15자, 쌍행주(雙行註).
〇 활자: 초주 갑인자(初鑄甲寅字)
〇 소장: 동국대학교 도서관 귀중본(貴 21809-김57ㅅ),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육당본 문고
○ 『사리영응기』 두 판본의 차이점
단행본 『사리영응기』에는 불사의 전반적인 개요와 불당의 구체적인 규모, 불교의식집인 「삼불예참문(三佛禮懺文)」, 세종 친제 악곡명과 악장(樂章) 전문, 경찬회에 사용된 악기의 명칭과 수량, 참여자의 명단 등이 부기되어 있다. 『식우집』과 갑인자 본 『사리영응기』 수록 내용 및 두 판본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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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갑인자 본 『사리영응기』 | 『식우집』 소재 |
「사리영응기」 | |||
1 | 불사의 배경 | 1) 선조의 명복을 빌기 위한 | 생략 |
불당이 문소전 옆에 건립됨. | |||
2) 태조가 계획하였던 황금불상을 완성함 | |||
2 | 삼불예찬문 | 대자암 주지 신미(信眉)와 김수온에게 | 생략 |
삼불예참문을 짓도록 명함 | |||
①초입도량정념작관(初入道場正念作觀), ②여시작관이거불(如是作觀己擧佛), ③예불요묘(禮佛要妙), ④일체공경(一切恭敬), ⑤작관이동발시언(作觀已同發是言), ⑥‘공양이귀명례삼보(‘供養已歸命禮三寶)’, ⑦제불찬(諸佛讚), ⑧삼보찬(三寶讚), ⑨참회(懺悔), ⑩오참(五懺), ⑪아제자등지심참회(我弟子至心懺悔), ⑫아제자등지심권청(我弟子至心勸請), ⑬아제자등지심수희(我弟子至心隨喜), ⑭아제자등지심회향(我弟子至心廻向), ⑮아제자등지심발원(我弟子至心發願), ⑯삼자귀의(三自歸依) | |||
3 | 친제 신성 7곡 | <양홍자지곡(仰鴻慈之曲)>ㆍ<발대원지곡(發大願之曲>ㆍ<융선도지곡(隆善道之曲)>ㆍ<묘인연지곡(妙因緣之曲)>ㆍ <포법운지곡(布法雲之曲)>ㆍ<연감로지곡( 演甘露之曲)>ㆍ<의정례지곡(依定慧之曲)> | |
악장 9곡 | <귀삼보(歸三寶)>ㆍ<찬법신(贊法身)>ㆍ<찬보신(贊報身)>ㆍ<찬화신(贊化身)>ㆍ<찬약사(贊藥師)>ㆍ<찬미타(贊彌陀)>ㆍ<찬삼승(贊三乘)>ㆍ<찬팔부(贊八部)>ㆍ<희명자(希冥資)> | 악장 명칭만 기록하고 내용은 생략됨. | |
4 | 의례주악 신제 | 신보에 의한 악무의 | 주악인원과 편성내용은 생략됨. |
구성과 역할분담 | |||
5 | 불교의례 | 점안의례의 업무 분담 및 진행 과정 | 생략됨. |
안의례를 위한 점안소(點眼疏) | |||
낙성의례를 위한 낙성소(落成疏) | 생략됨. | ||
정근: 낙성식 후 261명이 감응을 기원하는 정근 | 생략됨. | ||
6 | 사리영응 | 사리 분신의 이적. | |
사리 영응에 대한 찬사와 시 | |||
7 | 정근입장인명 | 261명의 신분과 소속, 직위 및 이름 | 생략됨. |
○ 『사리영응기』에 수록된 세종조 불교 의례 음악의 구성와 주악인의 역할
『사리영응기』에 기술된 세종 친제 불교 음악은 정동발(1)ㆍ소동경(2)ㆍ철박판(1)ㆍ특종(1)ㆍ편종(1)ㆍ 방향(1)ㆍ소편종(1)ㆍ특경(1)ㆍ편경(1)ㆍ현금(1)ㆍ가야금(1)ㆍ당비파(2)ㆍ월금(2)ㆍ 비파(2)ㆍ알쟁(1)ㆍ해금(2)ㆍ대적(2)ㆍ필률(4)ㆍ중적(2)ㆍ소적(2)ㆍ퉁소(2)ㆍ우(1)ㆍ생(1)ㆍ화(1)ㆍ훈(1)ㆍ대고(1)ㆍ소고(1)ㆍ장고(4)ㆍ대박판(1) 등 45인으로 구성된 악대와 죽간자 2인, 꽃을 든 집화동자 10인, 가자 10인에 의해 연행되었다.
박연(朴堧)ㆍ임동(林童)ㆍ김윤산(金允山)ㆍ황귀존(黃貴存)ㆍ안충언(安忠彥)이 악공들을, 수양대군이 신보를 가지고 통솔하였으며, 궁중악대와 승려들의 범패 및 법구 주악이 궁 밖으로부터 불상을 궁 안으로 모셔올 때, 내불당에서 불교 의례가 진행될 때, 참여자들이 모두 정근할 때 정황에 맞게 연주되었다.
조선 전기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정책 기조 속에서 이뤄진 세종의 불교 음악 친제 및 세종이 주도한 왕실 불사의 면면을 살필 수 있는 기문으로서 중요하다. 『사리영응기』에 기록된 세종의 친제 신성은 ‘중국의 명칭 가곡에서 빌려온 곡 제목’과 ‘김수온이 새로 지은 5언시 가사’, ‘세종이 제정한 곡조’로 완성되었다. 이 곡의 연행은 궁중 정재 중 ‘꽃을 주제로 한 당악정재의 양식’을 응용하고, ‘아악기ㆍ당악기ㆍ향악기’와 불교의 법구로 구성된 악대를 활용하여 가자들의 노래와 무동들이 춤을 추는 궁중악무를 불교 의례 진행에 따라 하였을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식우집(拭疣集)』
이종찬 역주, 『사리영응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3. 권오성, 「세종조 불교음악관계 문헌의 연구」, 『세종학연구』 2, 1987, 김기종, 「『사리영응기』 소재 세종의 “친제신성(親制新聲)” 연구」, 『반교어문연구』 37, 2014. 김우진, 「『사리영응기』 소재 악공 연구”, 『한국음악연구』 45, 2009. 박범훈, 「세종대왕이 창제한 불교음악 연구 - 『사리영응기』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23, 1999. 송혜진, 「조선 전기 왕실 불사(佛事)의 전승과 음악문화 연구」, 『한국음악연구』 56, 2014. 송혜진, 「『사리영응기』 소재 「삼불예참문」과 세종친제 불교음악」, 『동양예술』 30, 2016.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