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신악(大晟新樂), 대성아악(大晟雅樂)
고려 때에 중국 북송으로부터 수용된 궁중 의례 음악
대성악은 1114(예종 9)년과 1116(고려 예종 11)년, 두 차례에 걸쳐 북송의 휘종이 고려 예종에게 ‘사악(賜樂)’하는 방식으로 조서와 함께 전래되었다. 제1차에는 대성신악의 악기와 곡보(曲譜), 사용법을 기록한 지결도(指訣圖)를 포함하여 궁중 연향을 위한 속악이 들어왔고, 제2차에는 등가와 헌가 악기 및 문ㆍ무무(文武舞)용 의물, 연주와 춤을 위한 복식, 곡보, 지결도를 갖춘 아악이 들어왔다. 고려에서는 제1차 대성악(속악)을 받은 이후 사신과 음악인을 북송에 파견하여 1차 사악에 대한 감사를 표한 뒤 아악 수용 의지를 밝혔고, 휘종은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여 송에 온 음악인들에게 아악 학습 기회를 부여하고, 이들이 귀국하는 편에 또 한차례 대성악(아악)을 보내 주었다. 고려에서는 북송에서 온 대성신악(속악)과 대성아악을 국가의 주요 연향과 의례에 사용하게 되는데, 특히 의례에서의 아악 연주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전통을 형성하는 한편, 두 단계의 변천을 겪으며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 대성신악의 수용
1114년에 수용된 대성악은 대성부에서 제정한 ‘신악’으로 철방향ㆍ석방향ㆍ비파ㆍ오현금ㆍ쌍현금ㆍ공후ㆍ피리ㆍ적ㆍ지ㆍ소ㆍ포생ㆍ훈ㆍ박판으로 구성된 악대와 곡보, 지결도로 구성되었다. 『고려사』 「악지」에는 이때 들어온 악기 명칭만 기록되었는데 악기의 종류는 『고려사』 「악지」의 당악과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1114년에 전래된 대성신악의 지속적인 사용 여부는 상세히 알기 어렵다.
1114년 수용 대성악 |
『고려사』 「악지」 - 당악기 - |
|
유율타악기 | 철방향 | 철방향 |
석방향 | - | |
관악기 | 퉁소 | - |
적 | 적 | |
지 | - | |
소 | - | |
- | 포생 | |
- | 훈 | |
피리 | 피리 | |
현악기 | 비파 | 비파 |
오현금 | - | |
쌍현금 | - | |
공후 | - | |
- | 아쟁 | |
- | 대쟁 | |
타악기 | - | 장고 |
- | 교방고 | |
박판 | 박 |
○ 대성아악의 수용과 특징
한편, 1116년에 수용된 대성악은 팔음 악기를 갖춘 등가와 헌가 악대에 문무와 무무를 추며, 악장을 노래하는 아악 양식으로 이전에 수용된 궁중음악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리고 아악의 구성도 중국 북송대 이전의 아악과 다른 특성을 띠고 있었다. 첫째, 기본율의 음고(音高)를 두 종류로 구분한 정성(正聲)과 중성(中聲) 제도를 두어 아악이 연주되는 달의 음양(陰陽)이 고려되었다. 이에 따라 등가와 헌가의 악기 중 고유 음고를 지닌 유율 타악기와 관악기는 ‘정성용’과 ‘중성용’으로 구분되어 수용되었다. 둘째, 현악기 중 금은 칠현금 한 종류가 아니라, 1ㆍ3ㆍ5ㆍ7ㆍ9 현금으로 세분되어 있었다. 한편, 춤에 수반되는 기물은 문무와 무무원 36명을 위한 무구(舞具)와 무원들이 춤을 출 때 동원되는 8종의 타악기로 이뤄져 있었다. 1116년에 고려에 수용된 대성아악의 악기 및 의물 구성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 형태 | 명칭 | 정성/중성 | 용도 |
악기 | 유율타악기 | 편종 | 정성 16매 | 등가/헌가 |
중성 12매 | 등가/헌가 | |||
편경 | 정성 16매 | 등가/헌가 | ||
중성 12매 | 등가/헌가 | |||
관악기 | 지 | 정성 | 등가/헌가 | |
중성 | 등가/헌가 | |||
적 | 정성 | 등가/헌가 | ||
중성 | 등가/헌가 | |||
소 | 정성 | 등가/헌가 | ||
중성 | 등가/헌가 | |||
소생 | 정성 | 등가/헌가 | ||
중성 | 등가/헌가 | |||
화생 | 정성 | 등가 | ||
중성 | 등가 | |||
우생 | 정성 | 헌가 | ||
중성 | 헌가 | |||
훈 | 정성 | 등가/헌가 | ||
중성 | 등가/헌가 | |||
현악기 | 일현금 | 등가 | ||
삼현금 | 등가 | |||
오현금 | 등가 | |||
칠현금 | 등가 | |||
구현금 | 등가 | |||
슬 | 등가 | |||
타악기 | 박부 | 등가 | ||
축 | 등가/헌가 | |||
어 | 등가/헌가 | |||
진고 | 헌가 | |||
입고 | 헌가 | |||
비고 | 헌가 | |||
기타 | 휘번 | 헌가 | ||
의물 | 독 | |||
휘번 | ||||
도고 | ||||
요령 | ||||
쌍두탁 | ||||
상고 | ||||
금정 | ||||
아고 | ||||
약 | 문무 | |||
적 | 문무 | |||
간 | 무무 | |||
과 | 무무 |
고려에의 대성악 수용은 기본적으로 북송에서 새로 제정한 음고를 적용한 악기와 곡보 및 지결도를 갖춘 형태였다. 특히 대성아악의 경우, 습악인을 북송에 파견하여 배울 기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악기ㆍ곡보ㆍ지결도 및 연행자의 복식 등이 종합적으로 갖추어져 고려에 전래되었으며, 수용 이후 국가의 유교 의례에 적용되면서 한국음악사에 새로운 갈래를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송사(宋史)』 『고려사』 『동문선』
송혜진, 「고려시대 아악의 변천과 지속」,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1986. 송혜진, 「이혜구 박사의 ‘고려 대성악 변천’ 재검토-대성아악 수용과 변천의 두 단계-」 , 『한국음악연구』 68, 2020. 이혜구, 「고려 대성악의 변천」, 『사학회지』, 10, 1965. 최민아, 「중국 대성아악 편종과 고려 유입 및 활용에 대한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사학위논문, 2024.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