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방제보(敎坊諸譜), 교방가보(敎坊歌譜)
경상도 진주목 교방에서 연행되던 악ㆍ가ㆍ무(樂歌舞)를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이 채집, 기록하여 1872년에 편찬한 책
박원(璞園) 정현석이 편찬한 『교방가요』에는 19세기 중ㆍ후반 경상도 진주목 교방에서 기녀(妓女)들이 학습하고 연행했던 악ㆍ가ㆍ무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 판소리, 잡가(雜歌), 등 여러 형식의 가요를 책의 앞부분과 마지막에 나누어 정리 기록하였다. 또 정재(呈才) 및 무극(舞劇) 형식의 춤[舞]과 악곡(樂曲) 및 악기(樂器)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현석이 김해부사(金海府使)로 부임한 후, 1872년(고종 9) 2월[仲春]에 김해부 관사 건물 중 하나인 미금당(美錦堂)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현석은 자서(自敍)에 민간에서 널리 연행되고 있던 속악(俗樂)의 본 의미는 살리되, 기록으로 남길 만한 것을 채택하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뜻을 전하고자 편찬했다고 하였다.
『교방가요』는 정현석이 51세(1867년)부터 53세(1869년)까지 진주목사(晉州牧使)로 부임해 있는 동안, 관내 교방에서 연행되고 있던 악ㆍ가ㆍ무를 채집하고, 이를 김해부사로 옮긴 후 1872년 음력 2월에 정리ㆍ편찬한 책이다.
『교방가요』는 『교방제보』 또는 『교방가보』라는 표지 제목의 필사본들이 전하고 있다. 그 내용과 체제는 대체로 같지만, 오자나 결자 등의 출입, 단면에 줄을 당겨 쓰기, 그리고 글씨체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1973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병욱(鄭炳昱, 1922~1982) 교수의 연구에 의해 『교방가보』 일명 『교방가요』 소재 〈의암별제(義庵別祭)〉 복원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되었다. 1975년에는 아세아문화사에서 국립본을 저본으로 영인하여 『악학궤범ㆍ악장가사ㆍ교방가요 합본』이 출간되어 그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써 시조와 가곡 등 옛 가요에 관심 있는 국문학자와 음악학자에 의해 관심이 모아졌고, 관련 연구물이 세간에 발표되기 시작했다.
한편, 진주권번의 춤 맥을 계승한 〈진주검무〉의 제2대 보유자 성계옥(成季玉, 1927~2009)은 이 기록을 단국대학교 김동욱(金東旭, 1922~1990) 교수의 소개로 1975년에 처음 접하였다. 당시 전승교육사였던 성계옥은 『교방가요』를 직접 연구하기 위해 고려대학교 대학원 한문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한 성계옥은 다른 한편으로는 진주권번 출신의 생존 기생의 증언으로써 진주교방의 조선 후기 춤을 다각적으로 연구하였다. 그 결과 1987년, 『진주의암별제지(晋州義巖別祭誌): 논개추모가무제(論介追慕歌舞祭)』를 출간했다. 1991년에는 〈진주포구락무〉를 재현하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일조했으며, 1992년에는 논개의 넋을 위로하는 〈의암별제〉를 복원하였다.
이 과정에 학계에서는 『교방가요』의 학술적 중요성에 관심이 확산되었고, 마침내 성무경(成武慶)이 역주한 『교방가요』가 2002년 보고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상세한 역주서를 통해 진주 교방의 악ㆍ가ㆍ무에 관한 연구자들의 한문 해독 어려움이 해소되었으며, 관련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소장처와 체재 및 규격 『교방가요』 일명 『교방제보』ㆍ『교방가보』는 대략 3종의 이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이본을 개인 혹은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음이 근래 밝혀졌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하 고려대본)의 표제는 『敎坊歌謠 全(교방가요 전)』이다. 장서각 소장본(이하 장서각본)의 표제는 『敎坊諸譜 單(교방제보 단)』이다. 이 두 책에는 “聞韶閣較正 / 敎坊諸譜 / 美錦堂識(문소각 교정 / 교방제보 / 미금당이 적다)”라는 속표지 면이 있다. 문소각은 강원도 춘천에 있던 관아의 한 전각이다. 1646년(인조 24)에 봉의산(鳳儀山)과 소양강ㆍ장양강의 경치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수춘주(壽春州: 춘천의 옛 이름) 부사(府使) 엄황(嚴愰, 1580~1653)이 지었다. 문소각은 1890년(고종 27)에 이궁(離宮)으로도 사용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미금당은 정현석의 김해부사 시절 당호(堂號)이므로 곧 정현석이 이 책을 썼고, 문소각에서 비교하여 바로잡아[較正] 판각으로 출간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판각된 책은 현재 전하지 않고, 필사본들만 전하고 있다. 『교방제보』란 교방에서 연행되던 악ㆍ가ㆍ무를 종합적으로 기록한 총보(總譜)라는 의미이다. 다만, 현재 전하고 있는 고려대본이나 장서각본은 후대에 원본을 보고 베껴 쓴 필사본들이다. 장서각본의 경우 표지에 “南涯 題簽(남애가 표제를 두다)”라고 쓰여 있다. 황색표지에 쓰인 『교방제보』라는 제목은 소장자가 제첨(題簽: 다른 종이 쪽지에 제목을 써서 앞표지에 붙인 것)한 것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교방가요』나 『교방가보』도 제첨한 것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이하 국립본)된 『교방가요』는 책의 마지막 84면(앞표지 포함)에 “原本 宋申用 藏 / 昭和十六年八月謄寫(원본은 송신용이 소장함 / 소화 16년(1941) 8월에 베꼈음)”라고 했다. 이와 같은 등사 형식의 필사본이 널리 생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개인 소장자 임미선의 『교방제보』는 정현석의 자필 원고본이라고 한다. 그 외 것들은 대체로 원본을 두고 등사한 필사본이므로, 그 내용의 차이는 거의 없으나, 필사자에 따라서 글자의 출입과 줄 칸 당기기 혹은 늘리기로 기록하는 등의 차이점이 각 이본에서 드러난다. 차후 여러 이본을 병렬 비교하는 서지적 연구가 필요하다.
성무경의 역주서인 『교방가요』는 국립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책의 본문 그림은 고려대본의 채색도를 붙였으며, 뒤쪽의 원본 자료는 국립본의 책색도를 영인 첨부하였다. 지금까지 파악된 소장처와 서지 사항은 아래와 같다.
책 제목 | 소장처 | 체제 및 특징 | 규격 | 비고(서지 정보 보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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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坊歌謠 | 국립중앙도서관 | 1책 84면, 홍색 표지 | 28.0cm×20.3cm |
원본은 송신용(宋申用)의 장서임. 1941년 8월에 등사함 ※ 뒤표지 없음 |
敎坊歌謠 全 | 고려대학교 도서관 | 1책 106면, 황색 표지 | 25.8cm×17.5cm |
글의 단면 수록의 줄칸 체제가 여유 있어서 국립본과 다름. 표제 및 서두는 장서각본과 유사함. |
敎坊歌譜 | 통문관 | 1책 |
『교방가보』는 고 정병욱교수의 글에서 확인되지만, 서지사항은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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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坊諸譜 |
장서각 소장 (구 정신문화연구원) |
1책 90면 황색표지 | 26.3cm×17.4cm |
글의 단면 수록 체제는 국립본과 유사함 국립본과 유사함 남애(南涯) 제첨(題簽) |
교방제보 | 임미선(개인소장) | 1책 푸른색 계열 표지 | ※ 정현석의 자필 고본 주장 | |
교방가요 | 연낙재(성기숙 관장) | 1책 황색 표지 |
『춤』지 발간인 고 조동화(趙東華, 1922~2014)의 매개로
안동선비에게서 구매 내용‧체제 확인 못 함 |
『교방가요』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순서를 따라서 서두(序頭)와 가부(歌部), 잡부(雜部), 무부(舞部), 기타(其他)로 나눌 수 있다. 국립본 『교방가요』 목차에 따른 내용과 종합적인 구성에 대해 파악할 수 있도록 각 원문 면수와 함께 표로써 제시한다.
구분 | 수록 내용 | 원문 수록 면 (총84-1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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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 교방가요 서 | 3면 | ||
총목 | 1면 | |||
가부 | 가곡(歌曲) | |||
계면(界面): 초창 2, 중대엽 2, 이대엽 2, 삼대엽 2, 평롱(平弄) 2, 언롱(言弄) 2, 우락(羽樂) 2, 언락(言樂) 2, 계락(界樂) 2, 편(編) 2 | ※歌一編(노래 1편)의 순서: 우조 6편+계면 11편 | 6면 | ||
시조(時調) |
우조 시조 계면 시조 농(弄) 우락 계락 편 |
17편(34~50편) 25편(51~75편) 12편(76~87편) 3편 (88~90편) 3편 (91~93편) 4편 (94~97편) |
20면+빈면2 | |
가사(歌詞) | 권주가(勸酒歌) 신조(新調)/구조(舊調), 춘면곡(春眠曲), 처사가(處士歌), 양양가(襄陽歌), 상사별곡(相思別曲), 매화타령(梅花打令), 행군악(行軍樂) | 10곡 (※ 양양가와 관동별곡은 가사 없음) |
5면 | |
관동별곡(關東別曲) | ||||
잡부: 악곡 무곡 사곡(詞曲) 등 |
철사금(鐵絲琴) | 영산(靈山) 5장, 중령산(中靈山) 4장, 세령산(細靈山) 5장, 가락다지(加樂多旨, 가락더리) 3장, 선악(宣樂), 상현도드리(上絃道드리), 세현도드리(細絃道드리), 하현도드리(下絃道드리), 염불(念佛), 타령 [이하는 기록하지 않음] |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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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타(吹打) | ||||
악기(樂器)와 무곡(舞曲), 악사(樂詞) 목록‧정재의 시작 연주곡목‧정재창사목록, 가품(歌品), 가절(歌節), 가곡 5장에 대한 노랫말 배분 형식‧가곡의 실연도(實演圖)‧연창(演唱)의 순서 등 | 6면+빈면2 | |||
무부 |
1. 무(舞) 14편의 연행 절차 설명 14편: 〈육화대(六花隊)〉, 〈학무를 덧붙인 연화대(蓮花臺 附鶴舞)〉, 〈헌반도(獻蟠桃), 일명 〈헌선도(獻仙桃)〉, 〈고무(鼓舞)〉, 〈포구락(抛毬樂)〉, 〈인무(釼舞)〉 인무(釼舞)는 칼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칼 인(釼)과 춤[舞]을 연결한 단어이다. 따라서 고무(鼓舞)도 북 고(鼓)와 춤이 결합된 북춤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선악(船樂)〉, 〈항장무(項莊舞)〉, 〈의암가무(義庵歌舞)〉, 〈아박무(牙拍舞)〉, 〈향발무(響鈸舞)〉, 〈황창무(黃昌舞)〉, 〈처용무(處容舞)〉 〈승무(僧舞)〉 . 2. 7언 절구(絶句) 한문 논시(論詩)를 각각 붙임 3. 기녀의 출연 인원수 4. 무도(舞圖) 및 무구(舞具) 그림 |
28면 | ||
기타 | 판소리[唱歌]‧잡희(雜戲)‧잡요(雜徭)‧단가(短歌) 제목 나열 | 2면 | ||
박원 정현석 소개, 원본 소장자와 등사일 | 2면 |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되는 국립본 『교방가요』는 앞표지를 포함하여 총 84면의 책 한 권이다. 서두 4면에 이어서 바로 ‘교방가요’ 항목에 가곡ㆍ시조 등 가부(歌部)가 있어 38면(빈면 2면 포함)을 차지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타에 판소리 등 노래 제목이 제시된 2면이 더 있어서 가요와 관련된 지면은 총 40면이다. 조선 후기 진주 일대 교방에서 연행되던 각종 형식의 노래들이 망라되어 게재되어 있다. 가부의 첫머리에 기재된 가곡은 총 97수인데, 이 중 58수에는 악부시체(樂府詩體)의 한문시를 우선 기록하고 그 끝에 한글 노랫말을 작은 글씨로 기록하였다. 고려대본은 한글 노래의 표기가 국립본과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교방가요』의 가곡은 남ㆍ녀간 연창의 순서를 세밀히 기록하였으나, 저자 정현석은 가곡 전체를 여창을 위한 매우 잘 짜여진 교본으로 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
잡부(雜部)에는 철사금, 즉 양금으로 연주하는 영산회상 악곡들과 악기, 『악학궤범』의 무곡(舞曲) 및 가사(歌詞) 등이 잡다하게 7면에 정리되었다. 2쪽의 빈면을 포함하여 총 9면이 쓰였다. 38면에 쓰인 가부에 비하면 면을 차지한 비중이 적다. 하지만, 19세기 국악 실기 측면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이다.
무부(舞部)에는 14편의 춤이 게재되었는데, 춤의 절차를 처음 기록하고, 다음에는 그 춤에 대한 정현석의 감상 및 춤의 의미를 한문(漢文) 칠언절구의 논시(論詩)를 붙였다. 그 아래에 소기(少妓)나 동기(童妓), 또는 집사(執事)의 출연자 정보와 출연자 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새 지면에 각 춤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화보를 제시했다.
14편의 춤은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육화대〉부터 〈승무〉까지인데, 당대 진주목 교방에서 전승된 정재(呈才)의 연행양상을 살필 수 있다. 특히 〈의암별제가무〉는 진주 촉석루 아래 남강에 돌출된 바위 위에서 왜적과 함께 강으로 투신한 논개(論介, ?~1593)의 의로움을 기리는 제사에서 연행하는 춤과 노래이다. 의암별제는 정현석이 진주목사로 부임한 다음 해(1868년) 6월에 의녀(義女) 논개의 넋을 위로할 수 있도록 진주교방의 기녀들에게 촉석루에서 제사하도록 설시한 특별한 형식의 의례이다. 기녀들로만 구성되어 유교식 제사를 올리는데, 그에 해당하는 춤과 노래가 있어서 이를 성
무경은 '풍류제례(風流祭禮)'라고 하였다. 한편 성무경은 『교방가요』의 목차에 있는 인무(釼舞)를 검무(劍舞)로 임의 고쳐 표기했다. 인무는 칼 인(釼)과 춤[舞]을 연결한 단어이므로 칼춤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현석은 당시 칼춤이라고 불리던 춤을 한자로 인무라고 표기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고무(鼓舞)도 북춤을 한자 표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이 책에는 진주목에서 연행되던 속악(俗樂) 중에서 채록할 만한 가요(歌謠)를 선별하여 수집 정리하였고, 악기(樂器)는 그 제작 주재료로 구분하는 팔음(八音)에 배속된 아악기(雅樂器)ㆍ당악기(唐樂器)ㆍ향악기(鄕樂器)를 함께 나열ㆍ기록하였다. 그리고 교방에서 연행되는 가무(歌舞)의 연행 방법을 설명하며, 채색 화보로써 당시의 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교방가요』 차례 羽調(우조) 界面(계면) 雜歌(잡가) 時調(시조) 舞(무) 六花隊(육화대) 蓮花臺 附鶴舞(연화대에 학무를 덧붙임) 獻仙桃(헌선도) 鼓舞(고무) 抛毬樂(포구락) 釼舞(인무) 船樂(선악) 項莊舞(항장무) 義庵歌舞(의암가무) 牙拍舞(아박무) 響鈸舞(향발무) 黃昌舞(황창무) 處容舞(처용무) 僧舞(승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敎坊歌謠』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본 『敎坊歌謠 全』 연낙재(성기숙 관장) 소장본 『敎坊歌謠』 이민구, 『東州集』 권3, 〈聞韶閣記〉. 임미선 소장본 『敎坊諸譜』 장서각 소장본 『敎坊諸譜 單』 통문각 소장본 『敎坊歌譜』
성기숙, 『춤의 전통과 정신』 민속원, 2010. 성계옥, 『晋州義巖別祭誌: 論介追慕歌舞祭』, 진주민속예술보존회, 1987. 정현석ㆍ성무경 역주, 『교방가요』, 보고사, 2002. 강경호, 「『교방가요』 가곡부의 편찬 특징과 가곡문화사적 함의」, 『고전과 해석』 35,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021. 성기숙, 「교방가요 소재 선악(仙樂) 연구」, 『한국무용교육학회지』 21-2, 한국교육무용학회, 2010. 성무경, 「『敎坊歌謠』를 통해 본 19세기 중ㆍ후반 지방의 官邊 풍류」, 『시조학논총』 17, 한국시조학회, 2001. 신경숙, 「朝鮮後期 女唱歌曲의 硏究」,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4. 이종국, 「남애 안춘근선생의 생애와 학문」, 『출판학연구』 39, 한국출판학회, 1997. 임미선, 「『敎坊諸譜』(敎坊歌謠)에 전하는 19세기 진주기생의 연행 장르와 그 성격」, 『민족음악학보』 15, 한국민족음악학회, 2002. 정병욱, 「綜合藝術로서의 歌舞와 時調: 〈敎坊歌譜〉의 미발표 가사 〈義巖別曲〉과 時調를 중심으로」, 『문학사상』 9, 문학사상사, 1973.
이종숙(李鍾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