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엽, 가곡
대엽조는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이익의 『성호사설』에 언급되어 있다. 이중 〈만대엽〉, 〈중대엽〉은 악보가 전해지나 연주가 되지 않아 음악의 실제를 명확히 알 수 없고, 〈삭대엽〉만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연주되며 가곡의 모체가 되었다.
대엽조는 이익의 『성호사설』 권13 「국조악장(國朝樂章)」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다. 이는 고려가요 〈정과정〉의 후반부 ‘대엽’ 이하 부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익은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 등 오늘날 가곡의 원형에 해당하는 악곡을 포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해당 용어를 사용하였다.
○ 역사 변천 과정
대엽조에 대해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엽(葉)’의 개념부터 파악해야 한다. ‘엽’은 일부 고려가요의 악곡 후반부에서 후렴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반복구로 일종의 확대형식에 해당한다. ‘엽’은 악곡의 규모와 기능에 따라 ‘대엽(大葉)’, ‘소엽(小葉)’, ‘중엽(中葉)’, ‘부엽(附葉)’ 등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는 대표 악곡인 〈정과정〉을 보면 대엽-부엽-대여음(大餘音)-이엽(二葉)-중여음(中餘音)-삼엽(三葉)-소여음(小餘音)-사엽(四葉)-부엽-오엽(五葉)-대여음 등 다양한 ‘엽’의 조합으로 후반부가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엽’이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최초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곡의 길이가 긴 ‘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엽’은 〈한림별곡〉, 〈정읍〉, 〈처용가〉, 〈봉황음〉 등에도 나타난다.
한편 오늘날의 가곡은 앞에서 설명한 〈정과정〉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양금신보』(1610) 서문을 보면 ‘時用大葉慢中數 皆出於瓜亭三機曲中’, 즉 ‘오늘날의 대엽 만ㆍ중ㆍ삭은 모두 〈과정(정과정)〉 삼기곡 중에서 나왔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삼기곡은 '만기(慢機)'ㆍ'중기(中機)'ㆍ'급기(急機)', 즉 만ㆍ중ㆍ삭의 세틀형식에 해당한다. 이는 세 종류의 빠르기로 〈정과정〉을 노래하는 『대악후보』(1759) 권5 소재 〈진작〉을 통해 음악적 특징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정과정〉의 대엽 이하가 다섯 개의 엽, 즉 부엽, 이엽, 삼엽, 사엽, 오엽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은 가곡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대엽조’라는 용어는 이익의 『성호사설』 권13 「국조악장(國朝樂章)」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다. 기록을 보면, ‘동속가사(東俗歌詞)’, 즉 우리나라의 속악 가사 중에는 대엽조가 있는데, 길고 짧음의 구분이 없고 만(慢)ㆍ중(中)ㆍ삭(數)의 세 가지 가락(조)이 있다고 하면서, 이는 본래 심방곡(心方曲)이라 부르던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느린 것은 극히 느려 사람들이 싫어한 지 오래고, 중간 것은 조금 빠르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적고, 오늘날 통용되는 것은 대엽의 빠른 것이다.’ 라고 하며 느린 것(만), 중간 것(중), 빠른 것(삭)을 포괄적으로 대엽이라 지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東俗歌詞有大葉調, 四方同然㮣無長短之別. 其中又有慢中數三調, 此本號心方曲. 慢者極緩 人厭廢久, 中者差促 亦鮮好者, 今之所通用 即大葉數調也.)
대엽조는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으로 구성된다. 먼저, 〈만대엽〉은 『금합자보』(1572)에 관ㆍ현ㆍ타악기 반주에 노랫말이 포함된 악보가 최초로 전하나 이후 기악화되었다. 총 17종 고악보에 33종의 선율로 수록되어 있는 〈만대엽〉은 17세기에 이르러 하향의 추세를 보이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고조(古調)’의 개념으로 18세기 이후 일부 고악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중대엽〉은 『양금신보』(1610)와 『현금동문유기』(1620)에 처음 전해지는데, 이후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반 무렵까지 매우 성행하여 18세기 초중반의 고악보와 가집을 통해 분화가 완성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중대엽〉은 19세기 초반 무렵부터 거의 불리지 않게 되었고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삭대엽〉은 『양금신보』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으며, 『현금동문유기』에 악보가 처음 전한다. 이후 18세기부터 양반 및 중인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파생곡으로 분화되고 현재까지 전승되는 가곡 한바탕의 모체가 되었다.
○ 음악적 특징
대엽조를 구성하는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은 세틀[三機]을 이루었던 가곡의 원형 중 하나로, 총 5장(5지)과 여음(餘音)으로 구성된다. 빠르기는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의 순으로 점점 빨라지는데, 이는 『대악후보』(1759) 권5 소재 〈진작1〉, 〈진작2〉, 〈진작3〉, 〈진작4〉와 『성호사설』 권13에 수록된 이익의 서술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악조는 〈만대엽〉의 경우 평조(平調) 한 가지, 〈중대엽〉과 〈삭대엽〉의 경우 평조(平調)ㆍ평조계면조(平調界面調)ㆍ우조(羽調)ㆍ우조계면조(羽調界面調)의 네 가지를 사용했는데, 오늘날에는 이중 〈삭대엽〉만이 전하며 황종 평조인 우조와 황종 계면조인 우조계면조의 두 가지 조만 남아 있다. 단, 19세기를 기점으로 우조계면조는 2음이 생략되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장단은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모두 동일한 16박 장단으로 보이는데, 〈삭대엽〉에서 파생된 〈편〉의 경우 예외적으로 16박을 변형한 10박 장단을 사용한다.
악기 편성의 경우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만대엽〉은 『금합자보』에 노랫말이 전하다가 『양금신보』 이후 노랫말이 탈락하면서 각 장의 길이가 확대되며 거문고로 연주하는 기악 독주로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대엽〉은 주로 거문고 하나에 노래를 얹는 금가(琴歌)의 형태였는데, 『삼죽금보』 소재 〈우조초중대엽〉의 기록을 통해 1841년 이전에 이미 〈중대엽〉 가창의 전승이 끊어졌고 거문고 선율만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삭대엽〉 또한 〈중대엽〉과 마찬가지로 금가의 형태로 연행되다가 거문고 외에도 양금, 가야금, 금, 단소 등 다양한 악기로 반주하는 모습을 고악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20세기 이후 관현 반주를 갖춘 형태로 연주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오늘날 연행되는 〈삭대엽〉의 파생곡은 각 악곡에 나타나는 음악적 특징을 악곡명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거〉, 〈평거〉, 〈두거〉는 〈이삭대엽〉에서 파생된 곡으로, 〈중거〉는 중간부터 음을 높이 든다는 의미이고, 〈평거〉는 평평하게 시작한다는 의미이며, 〈두거〉는 머리[頭], 즉 처음부터 높게 부른다는 의미이다. 〈삼삭대엽〉에서 파생된 〈소용〉은 곡이 시끄럽고 음역이 높다는 의미이다. ‘농(弄)’은 흥청거린다는 의미로 선율의 굴곡이 심한 것을 말하고, ‘낙(樂)’은 농보다는 담담한 느낌을 주는 것을 의미하며, ‘편(編)’은 가사를 촘촘하게 엮어 빠르게 가창한다는 의미이다. ‘언(言)’은 초장을 높게 질러 내면서 본가곡의 스타일로 장중하게 부르다가 2장 이하부터는 소가곡의 스타일로 창법을 달리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대엽조의 노랫말은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만대엽〉의 노랫말은 『금합자보』에는 수록되어 있으나, 『양금신보』에서부터는 탈락되었다. 『금합자보』에 수록된 노랫말은 ‘오ᄂᆞ리’로 심방곡(心方曲)의 기능을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지(1장): 오ᄂᆞ리 오ᄂᆞ리나
이지(2장): ᄆᆡ일에 오ᄂᆞ리나
삼지(3장): 졈므디도 새디도 오ᄂᆞ리
사지(4장): 새리나
오지(5장): ᄆᆡ일댱샹의 오ᄂᆞ리 오쇼셔
이 노랫말은 『양금신보』에서부터 〈중대엽〉의 노랫말로 나타나는데, 이는 심방곡의 기능이 〈만대엽〉에서 〈중대엽〉으로 옮겨졌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외에도 〈중대엽〉의 사설은 『낭옹신보』, 『고금가곡』, 『청구영언』, 『연대소장금보』, 『가곡원류』 등이 전하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시조시가 있다.
『양금신보』 소재 평조 〈중대엽〉 又
일지(1장): 이 몸이 주거주거
이지(2장): 일백번 고텨 주거
삼지(3장): 백골(白骨)이 진토(塵土)ㅣ 되어 넉이라도 잇고 업고
사지(4장): 님 향ᄒᆞᆫ
오지(5장):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주리 이시랴
『연대소장금보』 소재 우조 제3 〈중대엽〉
일지(1장): 백세(百歲)살 인생(人生)이
이지(2장): 술로ᄒᆞ야 팔십(八十)사니
삼지(3장): ᄂᆞᆷ이 닐오ᄃᆡ 덜 살다 ᄒᆞ간마ᄂᆞᆫ
사지(4장): 주부도(酒不到)
오지(5장): 유령분상토(劉蛉墳上土)니 아니 먹고 어이리
〈삭대엽〉은 주로 시조시를 노랫말로 한다. 가장 많은 종류의 〈삭대엽〉 악보를 수록하고 있는 『하규일 가곡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각각의 레퍼토리마다 적게는 1종, 많게는 16종의 시조시를 노랫말로 취하고 있는데, 이를 초장 첫 어절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조초삭대엽(남창)〉: 남훈전, 천황씨, 동창이, 남팔아, 동지달
〈우조이삭대엽(남창)〉: 강호에, 주공도
〈우조이삭대엽(여창)〉: 버들은, 간밤에, 동짓달, 창오산, 왕상에, 인생이
〈우조중거(남창)〉: 인심은, 창랑에
〈우조중거(여창)〉: 청조야, 청계상, 사랑뫼여, 간밤에, 창힐이
〈우조평거(남창)〉: 경성출, 샛별지자
〈우조평거(여창)〉: 일소백미생이, 이몸싀여저셔, ᄭᅮᆷ에단이는길이, ᄭᅮᆷ에왓든임이, 일정백년을
〈우조두거(남창)〉: 구름이, 녹수청산
〈우조두거(여창)〉: 일각이, 한숨은, 적무인, 해지면, 식불감
〈우조삼삭대엽(남창)〉: 도화이화, 추강에, 굴원충혼, 적토마, 가마귀
〈우조소용(남창)〉: 불아니, 아마도, 어제밤, 저건너
〈우조반엽/우롱(남창)〉: 삼월삼일, 흐리나
〈반엽(여창)〉: 남하여, 담안에
〈계면초삭대엽(남창)〉: 청석령, 압못세, 창밧게
〈계면이삭대엽(남창)〉: 잘새는, 전원에
〈계면이삭대엽(여창)〉: 언약이, 황산곡, 창오산, 황하원상, 금노에
〈계면중거(남창)〉: 청풍북창하에, 잇스럼, 청산이
〈계면중거(여창)〉: 산촌에, 서산에, 이화에, 은하에, 요지에
〈계면평거(남창)〉: 반나머, 말이놀래거늘
〈계면평거(여창)〉: 울며잡은소매, 누구나자는창밧게, 초강어부들아, 녹초청강상에, 뉘뉘이르기를, 춘수만사택허니
〈계면두거(남창)〉: 악양루에, 석조는
〈계면두거(여창)〉: 임술지, 뒷뫼헤, 천지는, 백천이, 설월이
〈계면삼삭대엽(남창)〉: 석양에, 이런들, 박랑사중, 백년을, 삭풍은
〈계면소용(남창)〉: 어흐마
〈계면언롱(남창)〉: 십재를, 이태백의, 기럭이, 팔만대장, 어촌에
〈계면평롱(남창)〉: 남훈전, 물우희사공, 만리장성엔, ᄲᅮᆯ희깁흔남근
〈계면평롱(여창)〉: 북두칠성, 초당뒤에, 옥도치, 아자아자, 각설이
〈계락(남창)〉: 철총마, 솔아래, 남산에, 주국태왕이, 화란요지, 옥전요궁
〈계락(여창)〉: 청산리, 청산도절노절노, 노세노세, 바람도, 병풍에
〈언락(남창)〉: 벽사창이, 백구는, 일월성신, 아흔아홉, 푸흔산중, 신라성대
〈우락(남창)〉: 조다가, 임으란, 이선이
〈우락(여창)〉: 군불견, 바람은, 만경창파지수에, 압논에, 유자는, 제갈량은, 물아래
〈환계락(여창)〉: 압내나, 사랑을
〈편락(남창)〉: 나무도, 솔아래, 총을치, 봉황대상, 석인이승
〈우편(남창)〉: 산하천리국에, 봉황대상
〈언편(남창)〉: 한송정, 저건너
〈편삭대엽(남창)〉: 진국명산, 낙양성리, 천금준마, 천하명산, 남아의, 남산송백, 문독춘추, 화과산, 어져만재이여
〈편삭대엽(여창)〉: 목단은, 대인란, 모시를, 오날도, 월일편, 옥갓흔, 붉은새
〈태평가(남창)〉: 태평성대
〈태평가(여창)〉: 태평성대
대엽조는 고려가요 〈정과정〉에서 유래하여 형성된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따라서 특정 장르가 고려 시대부터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출발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고, 고악보에 수록된 대엽조 악곡의 선율 분석과 문헌 기록 분석을 통해 악조, 형식, 선율 변화, 장단, 한배, 연행 방식 등 음악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대엽조 악곡을 통해 가곡사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의 통시적 분석을 통해 16세기부터 풍류방의 문인들이 어떤 형태로 음악을 연행했는지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으며, 현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도 살필 수 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유산(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남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5) 가곡(여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2006)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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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李東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