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음, 사설(辭說), 새살, 주슴, 습(拾)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이동희, 『고악보에 수록된 낙 계열 가곡의 변천』, 민속원, 2023. 김화복, 「가곡 편(編)계통 악곡의 ‘각(刻)’선율 연구」, 『국악원논문집』 41, 국립국악원, 2020. 송안나, 「18세기 중후반 가집의 특징과 변모양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이동희, 「20세기 초반 가곡의 고착화 과정 검토」, 『한국음악연구』 64, 한국국악학회, 2023.
○ 역사 변천 과정
19세기 가곡계의 구도는 가곡 가창자 및 향유층의 확산과 활동의 다양화, 〈삭대엽〉 중심 연창 구도의 형성, 〈농〉, 〈낙〉, 편 계열 파생곡의 증가라는 세 가지의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편의 출현은 새로운 연창 구조의 형성에서 명확한 감정의 대조를 통한 음악적 표현력 확장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편은 19세기 초반부터 출현한 가곡의 새로운 유형으로, 『유예지』에서 최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에 〈농〉, 〈낙〉, 편의 소가곡 중 가장 늦게 고악보에 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김천택 편 『청구영언』 소재 〈만횡청류〉에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 편은 음악적으로 형식을 갖추지 않아 가곡에 편입하기 어려운 형태였으나 강조(腔調)와 반주를 갖추게 되면서 〈편삭대엽〉의 명칭으로 등장하며 가곡 연창 구조에 편입되었다. 이후 〈편삭대엽〉은 편, 〈계편〉, 〈편대엽〉, 〈편삭음〉 등의 명칭으로 『소영집성』, 『삼죽금보』, 『금보(소창본)』, 『우헌금보』, 『금가』, 『희유』, 『아양금보』, 『아금고보』, 『양금보(일사금보)』, 『서금가곡』, 『역양아운』 등의 고악보에 출현한다.
『소영집성』(1822)에는 〈낙〉 계열 가곡과 결합한 〈편락〉이 최초로 등장하며 편과 〈낙〉의 결합 양상을 보인다. 최초의 〈편락〉은 독자적인 1장 선율에 〈우락〉 2장과 〈편삭대엽〉 3장 이하를 더하여 만들어졌으므로, 〈낙〉 계열 가곡보다는 편 계열 가곡의 음악적 특징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우락〉 2장의 선율도 편장단인 10박으로 변형해서 활용하였다. 단, 이 당시 〈편락〉의 노랫말은 장형시조가 아닌 단형시조를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편락〉은 장형시조를 노랫말로 하며 〈편락〉, 〈우조언편락〉, 〈펠낙〉, 〈편락대엽〉 등의 명칭으로 『삼죽금보』, 『금보(소창본)』, 『우헌금보』, 『금가』, 『희유』, 『아양금보』, 『아금고보』, 『양금보(일사금보)』, 『서금가곡』, 『역양아운』 등의 고악보에 출현한다. 한편, 〈편삭대엽〉에서 초장을 〈삼삭대엽〉의 방식으로 높게 변주한 〈언편〉은 『희유』에서부터 등장하는데, 『현금오음통론』(1886) 이전까지는 간헐적으로 수록되어 있어 가곡 연창 구조에 온전히 편입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금오음통론』 이후 〈편삭대엽〉과 〈편락〉에서 변주 선율이 증가하게 된다. 『현금오음통론』에는 〈편삭대엽〉 변주 선율 2종, 〈편락〉 변주 선율 6종이 수록되어 있으며, 『방산한씨금보』에는 〈편락〉 변주 선율 3종, 『학포금보』에는 〈편삭대엽〉 변주 선율 4종, 〈편락〉 변주 선율 2종이 수록되어 있는 등 다양한 변주 양상을 보인다. 그 이유로는 남창 가곡 한바탕과 여창 가곡 한바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편락〉과 〈편삭대엽〉이 각각 활성화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편의 또다른 레퍼토리인 〈우편〉은 이 과정에서 형성되어 『방산한씨금보』와 『학포금보』에서 최초로 등장하였다.
한편 편 계열의 가곡은 각(刻)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각선율이란 가곡에 사설시조를 노랫말로 사용하게 되면서 늘어난 노랫말을 소화하기 위해 덧붙이는 추가적인 선율을 의미하는데, 가곡의 구조 상 노랫말이 늘어나는 3장과 5장에서 나타난다. 『삼죽금보』에서 최초로 등장한 편 계열의 각선율은 이후 『금보(소창본)』, 『우헌금보』, 『현금오음통론』, 『학포금보』, 『방산한씨금보』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 음악적 특징
편은 ‘엮는다’는 의미를 한자의 뜻과 같이 본가곡 계열인 〈초삭대엽〉, 〈이삭대엽〉, 〈삼삭대엽〉과 달리 노랫말을 촘촘하게 엮어서 10박으로 표현하는 음악으로, 같은 소가곡 계열 중 16박으로 연행하는 〈농〉, 〈낙〉과 구분된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장과 4장 사이에 중여음, 5장 뒤에 대여음이 존재한다. 중여음은 전주의 역할, 대여음은 후주의 역할을 하는데, 여러 곡을 이어서 연주할 경우 대여음이 뒷곡의 전주 역할이 될 수 있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 세피리, 해금, 장구가 각 1대씩 편성되는 줄풍류의 편성으로 반주하되, 단소, 양금을 추가할 수 있다. 장단은 10점 10박이며, 〈농〉과 〈낙〉이 단형시조 또는 장형시조를 노랫말로 취하는 것과 비교하여 편은 장형시조만을 노랫말로 사용한다.
편의 장단인 10점 10박 장단은 ‘편장단(編長短)’이라 한다. 장형시조인 사설시조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노래하는 편 계열 가곡에서는 한배만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단에도 변화가 생기는데, 본가곡의 10점 16박 장단에서 사잇박을 생략하고 10점 10박으로 표현한다. 이를 ‘편장단’, 즉 ‘엮는 장단’이라고 한다. 노랫말의 증가에 따라 악곡의 선율을 확대할 때에는 한 장단 단위의 각(刻) 또는 5박의 반각(半刻)을 필요한 만큼 삽입하여 악곡을 확대한다. 편장단으로 연주하는 악곡은 전체적인 빠르기도 빨라졌고 장단도 변화가 있으며 노랫말의 사설 붙임새도 달라져 악곡이 매우 경쾌하고 빠르게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가곡원류』(1872)를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가곡원류』 권두에 기록된 ‘가지풍도형용십오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의 〈편삭대엽〉을 보면 ‘대군구래 고각제명(大軍驅來 鼓角齊鳴)’, 즉 ‘많은 군사가 말을 달려오듯, 북과 나팔이 일제히 울리는 듯’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노래하는 사람이 편을 어떠한 느낌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만 〈편락〉의 경우 〈편락시조〉의 항목을 따로 두어 ‘춘추풍우 초한건곤(春秋風雨 楚漢乾坤)’, 즉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세상과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던 시대처럼‘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낙〉과 혼합된 〈편락〉은 다른 3종의 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음악임을 파악할 수 있다.
편에는 〈편삭대엽〉, 〈편락〉, 〈언편〉, 〈우편〉의 4종이 있는데, 이중 남성 가창자가 부르는 남창(男唱)에는 〈편삭대엽〉, 〈편락〉, 〈언편〉, 〈우편〉의 4종이 모두 해당하는 반면, 여성 가창자가 부르는 여창(女唱)에는 〈편삭대엽〉의 1종만 있다. 〈편삭대엽〉은 편의 원형으로 황종 계면조의 악곡이다. 편과 〈삭대엽〉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편삭대엽〉은 본래 〈계편〉이라고도 하였다. 〈편락〉은 ‘편(編)의 낙’, 즉 〈우락〉을 편과 결합하여 10박의 편장단으로 표현한 악곡을 의미하고, 〈언편〉은 ‘엇(旕, 言)의 편’이라는 의미로 〈편삭대엽〉에서 초장을 〈삼삭대엽〉의 방식으로 높게 변주한 악곡을 지칭하며, 〈우편〉은 우조, 즉 황종 평조로 표현하는 〈편삭대엽〉을 뜻한다.
한편 편의 음악적 특징은 다른 장르인 시조와 민요에서도 나타난다. 시조 중 사설시조, 민요 중 〈엮음아리랑〉, 〈엮음수심가〉, 〈사설공명가〉, 〈사설난봉가〉 등이 편과 같은 엮음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시조에서는 편을 ‘사설(辭說)’, ‘새살’, ‘주슴’, ‘습(拾)’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편을 포함한 가곡은 주로 시조시를 노랫말로 한다. 가장 많은 종류의 편 계열 가곡 악보를 수록하고 있는 『하규일 가곡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각각의 레퍼토리마다 적게는 2종, 많게는 16종의 시조시를 노랫말로 취하고 있는데, 이를 초장 첫 어절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편락(남창): 나무도, 솔아래, 총을치, 봉황대상, 석인이승 우편(남창): 산하천리국에, 봉황대상 언편(남창): 한송정, 저건너 편삭대엽(남창): 진국명산, 낙양성리, 천금준마, 천하명산, 남아의, 남산송백, 문독춘추, 화과산, 어져만재이여 편삭대엽(여창): 목단은, 대인란, 모시를, 오날도, 월일편, 옥갓흔, 붉은새
편은 『가곡금보』와 『이왕직아악부악보』가 편찬되기 직전인 1920년대에 레퍼토리가 고착화될 때까지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가곡사에 중요한 변화를 남겼고, 그 과정은 19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편 계열 가곡의 출현과 발전은 〈삭대엽〉 중심으로 재편된 19세기의 새로운 연창 구조 형성에서 빠른 한배와 노랫말의 엮음을 통해 음악적 표현력을 확장시켰으며, 각선율을 활용하여 가곡 장르의 가변적 특징을 증가시켰다. 따라서 편은 〈농〉, 〈낙〉과 더불어 폐쇄적이었던 19세기의 사회구조에서 나타났던 계층 간의 문화단절을 음악적 다변화를 통해 극복한 사례이자, 시조를 필두로 대중성을 지향했던 19세기 풍류방 음악의 일면에 대비되는 가곡의 고급화 지향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유산(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남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5) 가곡(여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2006)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0)
이동희(李東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