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弄), 농가(弄歌), 만횡(蔓橫), 농엽(弄葉)
○ 역사 변천 과정
19세기 가곡계의 구도는 가곡 가창자 및 향유층의 확산과 활동의 다양화, 〈삭대엽〉 중심 연창 구도의 형성, 농, 〈낙〉, 〈편〉 계열 파생곡의 증가라는 세 가지의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농의 출현은 새로운 연창 구조의 형성에서 자연스러운 악조 배열, 명확한 감정의 대조를 통한 음악적 표현력 확장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농은 19세기 초반부터 출현한 가곡의 새로운 유형으로, 『강외금보』, 『유예지』 등에서 최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김천택 편 『청구영언』 소재 〈만횡청류〉에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농은 음악적으로 형식을 갖추지 않아 가곡에 편입하기 어려운 형태였으나, 『어은보』 소재 〈우조낙시조〉의 영향을 받아 강조(腔調)와 반주를 갖추게 되면서 『강외금보』에서 〈계면조농가〉로, 『유예지』에서 계면조의 〈농락〉과 〈농엽〉으로 처음 수록되었다.
이후 농은 『유예지』 소재 〈엇계락〉으로부터 비롯된 〈언롱〉과 우조의 농 계열 레퍼토리를 새롭게 만들고자 〈우락〉의 영향을 받아 반우반계의 기능을 겸해 파생된 〈우롱(율당삭대엽)〉으로 분화된다. 이 두 곡은 『소영집성』(1822)에서 처음 출현하는데, 해당 악보에서는 새로운 레퍼토리로서의 농 뿐만 아니라 농 계열 변형선율과 각(刻)선율이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삼죽금보』(1841)에 이르러 농은 가장 두드러진 양적 팽창의 모습을 보이는데, 변형선율은 악곡의 분화 측면, 각선율은 장헝시조의 사설 도입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헌금보』(1861)와 『금가』에서부터는 가곡 한바탕 구조의 확립에 따라 반우반계인 〈반엽〉의 역할이 강화된다. 『소영집성』부터 『금보(소창본)』까지는 〈우롱(율당삭대엽)〉의 대표성이 〈우롱〉과 〈반엽〉 중에서 〈우롱〉에 있었다면, 『우헌금보』부터는 〈반엽〉으로 대표성이 옮겨지고 〈우롱〉의 역할은 가곡 한바탕에서 미미하게 되었다. 이후 〈우롱〉이 가곡 한바탕에서 위치를 찾게됨에 따라 『현금오음통론』에서부터 〈우롱〉과 〈반엽〉의 레퍼토리가 각각 분화되어 수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금오음통론』을 기점으로 〈평롱〉에서 변주 선율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현금오음통론』에 수록된 ‘농’ 계열 가곡의 변주 선율에는 총 13종이 있는데, 이중 11종이 〈평롱〉에 해당한다. 그 이유로는 〈평롱〉이 남창 가곡 한바탕과 여창 가곡 한바탕의 확립 과정에서 계면조의 〈삭대엽〉 계열 본가곡과 〈낙〉 계열 가곡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되며 활성화되었다는 점과 〈평롱〉이 농 계열 가곡의 대표성을 가진 악곡이라는 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 음악적 특징
농은 ‘흥청거린다’는 의미를 한자의 뜻과 같이 본가곡 계열인 〈초삭대엽〉, 〈이삭대엽〉, 〈삼삭대엽〉보다 표현력이 확장된 음악으로, 같은 소가곡 계열 중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연행하는 〈낙〉, 한배가 매우 빠르고 노랫말을 촘촘하게 엮어서 부르는 〈편〉과 음악적으로 구분된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장과 4장 사이에 중여음, 5장 뒤에 대여음이 존재한다. 중여음은 전주의 역할, 대여음은 후주의 역할을 하는데, 여러 곡을 이어서 연주할 경우 대여음이 뒷곡의 전주 역할이 될 수 있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 세피리, 해금, 장구가 각 1대씩 편성되는 줄풍류의 편성으로 반주하되, 단소, 양금을 추가할 수 있다. 장단은 10점 16박이며, 단형시조와 장형시조를 모두 노랫말로 사용하는데, 〈낙〉에 비해서는 장형시조를 많이 사용한다.
『가곡원류』(1872) 권두에 기록된 ‘가지풍도형용십오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의 〈농가〉를 보면 ‘완사청천 축량번복(浣紗淸川 逐浪翻覆)’, 즉 ‘맑은 냇물에 비단을 띄운 듯 넘실넘실 일렁이니’라고 표현하고 있어 노래하는 사람이 농을 어떠한 느낌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만 〈언롱〉의 경우 〈만횡(얼롱)〉의 항목을 따로 두어 ‘설전군유 변태풍운(舌戰群儒 變態風雲)’, 즉 ‘여러 선비들이 말다툼 하는 모습이 바람이나 구름처럼 변화무궁하니’라고 설명하고 있어, 초장을 무게 있게 높이 지르다가 2장부터 흥청거리는 방식으로 부르는 변화무쌍한 느낌의 음악임을 파악할 수 있다.
농에는 〈평롱〉, 〈언롱〉, 〈우롱〉의 3종이 있으나, 넓게는 〈우롱〉에서 파생된 〈반엽〉까지 총 4종이 있다. 이중 남성 가창자가 부르는 남창(男唱)은 〈평롱〉, 〈언롱〉, 〈우롱〉, 〈반엽〉의 4종, 여성 가창자가 부르는 여창(女唱)은 〈평롱〉, 〈반엽〉의 3종이 있다. 〈평롱〉은 본래 〈계롱〉으로 황종 계면조의 농을 의미하고, 〈언롱〉은 ‘엇(旕, 言)의 농’이라는 의미로 〈평롱〉에서 초장을 〈삼삭대엽〉의 방식으로 높게 변주한 악곡을 지칭한다. 〈계롱〉이 〈평롱〉으로 지칭된 것은 〈언롱〉에 비해 초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롱〉을 ‘낮은 농’이라는 의미로 〈평롱〉이라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롱〉은 우조, 즉 황종 평조의 농을 의미하고, 〈반엽〉은 반우반계(半羽半界)의 〈삭대엽〉이라는 뜻으로 본래 〈우롱〉과 동일한 황종 평조의 선율이나 3장 중간에서 계면조로 변화하여 우조 본가곡과 계면조 본가곡 레퍼토리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반엽〉은 문헌에 〈밤엿〉, 〈율당〉, 〈율당삭대엽〉, 〈반엽대엽〉, 〈율당대엽〉, 〈밤엿자진ᄒᆞᆫ닙〉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출현한다.
농을 포함한 가곡은 주로 시조시를 노랫말로 한다. 가장 많은 종류의 농 계열 가곡 악보를 수록하고 있는 『하규일 가곡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각각의 레퍼토리마다 적게는 2종, 많게는 9종의 시조시를 노랫말로 취하고 있는데, 이를 초장 첫 어절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면언롱(남창)〉: 십재를, 이태백의, 기럭이, 팔만대장, 어촌에
〈계면평롱(남창)〉: 남훈전, 물우희사공, 만리장성엔, ᄲᅮᆯ희깁흔남근
〈계면평롱(여창)〉: 북두칠성, 초당뒤에, 옥도치, 아자아자, 각설이
〈우조반엽/우롱(남창)〉: 삼월삼일, 흐리나
〈반엽(여창)〉: 남하여, 담안에
농은 『가곡금보』와 『이왕직아악부악보』가 편찬되기 직전인 1920년대에 레퍼토리가 고착화될 때까지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가곡사에 중요한 변화를 남겼고, 그 과정은 19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농 계열 가곡의 출현과 발전은 〈삭대엽〉 중심으로 재편된 19세기의 새로운 연창 구조 형성에서 악조를 자연스럽게 배열할 수 있도록 하였고, 〈삭대엽〉과 〈낙〉 사이에서 명확한 감정의 대조를 통해 음악적 표현력을 확장시켰다. 따라서 농은 폐쇄적이었던 19세기의 사회구조에서 나타났던 계층 간의 문화 단절을 음악적 다변화를 통해 극복한 사례이자, 시조를 필두로 대중성을 지향했던 19세기 풍류방 음악의 일면에 대비되는 가곡의 고급화 지향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유산(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남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5) 가곡(여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2006)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0)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이동희, 『고악보에 수록된 낙 계열 가곡의 변천』, 민속원, 2023. 신혜선, 「『삼죽금보』 각을 통해 본 가곡 농ㆍ낙의 특징」,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이동희, 「19세기 농 계열 가곡의 변천」, 『한국문학과예술』 47,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23.
이동희(李東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