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곡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행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가곡의 원형 중 하나
중대엽은 〈만대엽(慢大葉)〉 및 〈삭대엽(數大葉)〉과 더불어 세틀[三機]을 이루었던 가곡의 원형 중 하나로,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양반들을 중심으로 유행했으리라 짐작되는 악곡이다. 〈삭대엽〉을 중심으로 하는 가곡과 마찬가지로 5개의 장(章)과 여음(餘音)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네 가지의 악조로 연행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 역사 변천 과정
중대엽은 『양금신보』(1610)에 최초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보다 고형(古形)의 중대엽은 『현금동문유기』(1620)에 〈중엽〉, 〈평조중엽〉의 명칭으로 두 종이 수록되어 있다. 『양금신보』에는 평조(平調)ㆍ평조계면조(平調界面調)ㆍ우조(羽調)ㆍ우조계면조(羽調界面調)의 네 가지 악조로 중대엽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중 평조 중대엽은 제2선율인 <又>가 수록되어 있으므로 다섯 종의 중대엽이 『양금신보』에 전한다. 그 후 이 네 가지 악조의 중대엽은 다시 발달하여 제1ㆍ제2ㆍ제3 등으로 분화가 시작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연대소장금보』를 보면 제1ㆍ제2ㆍ제3의 중대엽에 얹어서 노래를 부르는 9편의 가사가 전하는데, 이를 통해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반 무렵에는 중대엽이 매우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초중반의 고악보와 가집에는 분화가 완성된 중대엽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을 보면, ‘당시에 이미 사람들은 너무 느린 〈만대엽〉을 싫어하여 폐지한지 오래이고, 중대엽은 조금 빠르지만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다’라는 언급이 되어 있어, 18세기 중후반에 이미 중대엽의 유행이 하향세였음을 알 수 있다. 중대엽은 19세기 초반 무렵부터 거의 불리지 않게 되었는데, 이는 『현학금보』(1852)의 중대엽이 당대 연행되던 〈삭대엽〉과 악곡의 명칭, 수파형 악보의 유무, 장단형의 유무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삼죽금보』(1841) 소재 〈청성삭대엽〉을 보면, ‘우조중대엽에서 편삭대엽까지가 가곡의 한바탕[一闋]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중대엽이 〈삭대엽〉 계열 가곡의 앞에 편성되는 한바탕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대엽을 수록하고 있는 고악보는 『양금신보』와 『현금동문유기』 외에도 『현금신증가령』(1680), 『증보고금보』, 『연대소장금보』, 『운몽금보』, 『백운암금보』, 『금보고』, 『신작금보』, 『한금신보』(1724), 『낭옹신보』(1728), 『어은보』(1779), 『고대금보A』(1791), 『유예지』, 『삼죽금보』(1841), 『현학금보』(1852), 『오희상금보』(1852), 『인수금보』, 『송씨이수삼산재본금보』, 『학포금보』(1919추정) 등이 있다.
○ 음악적 특징
중대엽은 총 5장(5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장과 4장 사이에 중여음, 5장 뒤에 대여음이 존재한다. 평조(平調)ㆍ평조계면조(平調界面調)ㆍ우조(羽調)ㆍ우조계면조(羽調界面調)의 네 가지 조를 사용하는데, 평조는 임(㑣)ㆍ남(㑲)ㆍ황(黃)ㆍ태(太)ㆍ고(姑)의 5음 음계, 평조계면조는 임(㑣)ㆍ무(㒇)ㆍ황(黃)ㆍ태(太)ㆍ중(仲)의 5음 음계, 우조는 황(黃)ㆍ태(太)ㆍ중(仲)ㆍ임(林)ㆍ남(南)의 5음 음계, 우조계면조는 황(黃)ㆍ협(夾)ㆍ중(仲)ㆍ임(林)ㆍ무(無)의 5음 음계이나 계면조는 19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2음이 생략되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중대엽의 가창 방식은 중대엽을 한바탕으로 엮어 부르는 방식과 중대엽과 〈삭대엽〉을 대가(臺歌)의 형태로 짝지어 부르는 두 가지가 있었다. 18세기 고악보에는 악조별로 중대엽 제1ㆍ제2ㆍ제3이 연달아 수록되어 있어 당시 중대엽이 〈삭대엽〉과 마찬가지로 연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세기 고악보 또는 가집인 『현학금보』, 『오희상금보』, 『지음』, 『가조별람』 등을 보면 중대엽과 〈삭대엽〉이 짝을 지어 수록된 모습이 보인다. 중대엽의 연행은 주로 거문고 하나에 노래를 얹는 금가(琴歌)의 형태였는데, 『삼죽금보』 소재 〈우조초중대엽〉의 기록을 통해 1841년 이전에 이미 중대엽 가창의 전승이 끊어졌고 거문고 선율만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대엽 제1ㆍ제2ㆍ제3의 선율을 살펴보면, 초두 시작선율이 각 선법의 음계에 따라 한 음씩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평조중대엽〉 제1의 초두 선율은 그 음계의 제2음에서 제1음으로 하행하고 있으며, 〈평조중대엽〉 제2는 제3음에서 제2음으로, 〈평조중대엽〉 제3은 제4음에서 제3음으로 하행한다. 중대엽의 장단은 현행 〈삭대엽〉 계열 가곡과 동일한 10점 16박이며, 한배는 『성호사설』의 기록을 통해 〈만대엽〉보다는 빠르고 〈삭대엽〉보다는 느렸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중대엽과 〈삭대엽〉이 동일한 용강법(用綱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단지 곡의 길이에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중대엽은 노래로 전승되지 않고 거문고 선율로만 전승되는 과정에서 장단과 한배가 변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대엽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한다. 다만 중대엽의 사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노랫말은 시조시가 아니라 『양금신보』 〈평조 중대엽〉에 수록된 속칭심방곡(俗稱心方曲) ‘오ᄂᆞ리’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오ᄂᆞ리 오ᄂᆞ리쇼셔 2장: ᄆᆡ일에 오ᄂᆞ리쇼셔 3장: 졈그디도 새디도 ᄆᆞ라시고 4장: 새라난 5장: ᄆᆡ양양식에 오ᄂᆞ리쇼셔 이후 중대엽의 사설은 『낭옹신보』, 『고금가곡』, 『청구영언』, 『연대소장금보』, 『가곡원류』 등에 시조시로 전하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양금신보』 소재 〈평조 중대엽〉 又 일지(1장): 이 몸이 주거주거 이지(2장): 일백번 고텨 주거 삼지(3장): 백골(白骨)이 진토(塵土)ㅣ 되어 넉이라도 잇고 업고 사지(4장): 님 향ᄒᆞᆫ 오지(5장):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주리 이시랴 『연대소장금보』 소재 〈우조 제3 중대엽〉 일지(1장): 백세(百歲)살 인생(人生)이 이지(2장): 술로ᄒᆞ야 팔십(八十)사니 삼지(3장): ᄂᆞᆷ이 닐오ᄃᆡ 덜 살다 ᄒᆞ간마ᄂᆞᆫ 사지(4장): 주부도(酒不到) 오지(5장): 유령분상토(劉蛉墳上土)니 아니 먹고 어이리
중대엽은 현전하지는 않으나,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를 구분할 수 있는 준거가 된다. 또한 고악보에 수록된 선율 분석과 문헌 기록 분석을 통해 악조, 형식, 선율 변화, 장단, 한배, 연행 방식 등 음악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가곡사의 흐름 일면을 살필 수 있다. 중대엽의 분석을 통해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풍류방에서 문인들이 행했던 음악의 실체를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유산(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남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5) 가곡(여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2006)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0)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이동희, 『고악보에 수록된 ‘낙(樂)’ 계열 가곡의 변천』, 민속원, 2023. 김승은, 「〈중대엽〉의 가창 방식과 시기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21. 성기련, 「〈중대엽〉과 〈삭대엽〉의 향유 양상 비교 연구」, 『국악원논문집』 44, 국립국악원, 2021. 신혜선, 「17세기 중대엽의 분화 양상」, 『한국음악연구』 58, 한국국악학회, 2015.
이동희(李東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