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타수(吹打手), 취고색(吹鼓色)
조선 후기 군영에서 취타악기로 지휘ㆍ통신을 하고 취타악을 연주한 군영악대
중국에서는 송대(宋代)부터 대악(大樂)과 세악(細樂) 제도가 있었고, 대악은 취고수, 세악은 세악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취고수는 임진왜란(1592~1598)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취고수는 처음부터 그 제도가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18세기 후반 그 제도가 완성된 후 19세기에 법제화 되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 중 일부는 고대로부터 전승 되어온 우리나라 악기와, 임진왜란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악기가 섞인 것이며, 악기 구성과 음악적인 측면에서 중국 명나라 취고수와 다른 독자적 체계를 갖추었다. 취고수 제도는 1894년(고종 31)에 폐지되었다.
취고수는 지휘ㆍ통신에 사용하는 형명(形名)으로 구성된 악기를 연주하는 군영악대이며, 중앙의 오군영과 지방 군영에 소속되어 세악수와 짝을 이루어 활동했다. 취고수 제도는 명나라로부터 도입했으며, 척계광(戚繼光, 1473~1544)이 저술한 『기효신서』와 『연병실기』를 참고하여 수용했다. 취고수는 취타악기 연주자를 바롯한 여러 종류의 군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표하군 소속 집단이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는 대각(大角)ㆍ나각(螺角)ㆍ나발(喇叭)ㆍ발라(바라, 哱囉)ㆍ호적(號笛/胡笛)ㆍ솔발(摔鈸)ㆍ자바라(啫哱囉)ㆍ점자(點子)ㆍ금(金)ㆍ정(鉦)ㆍ나(鑼)ㆍ고(鼓)의 12종류였다. 취고수의 악기편성에 사용되는 악기가 12종류였지만, 편성의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취고수는 행렬의 성격에 따라 악대명칭이 달라지기도 했고, 악기편성도 달라졌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의 본래적 기능은 신호, 지휘ㆍ통신에 있었지만, 훈련ㆍ연향ㆍ행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도 사용되었다. 취고수는 왕의 거둥 행렬, 관찰사의 행렬, 군영의 행렬, 사신행렬 등에서 행악을 연주했다. 행행(行幸)시에 고취가 성내(城內)에서만 연주하는데 비해 취고수는 성외(城外)에서만 연주했다.
취고수는 일반적으로 전립, 흑삼승갑협수(黑三升 甲挾袖), 목면 황호의(木棉 黃號衣), 흑수화자(黑水靴子)를 착용하였으나, 사신행렬에서는 취고수 중 관악기 연주자는 홍삼승 단협수(紅三升 單挾袖), 홍삼승 단쾌자(紅三升單掛子), 홍면주 전대(紅綿紬戰帶), 홍전립(紅戰笠), 흑수화자(黑水靴子)를 착용했다.
취고수가 연주한 취타악은 현재 궁중전승 음악ㆍ민간전승 음악ㆍ불교전승 음악으로 세 계통이 전승되고 있다. 궁중으로 전승된 취고수 음악은 〈대취타(무령지곡)〉 한 곡이다. 민간으로 전승된 취고수 음악은 지영희를 중심으로 그 전승계보를 이어가는데, 그 악곡은 〈대취타〉ㆍ〈취타염불〉ㆍ〈취타굿거리〉ㆍ〈능게〉ㆍ〈능게굿거리〉ㆍ〈능게휘모리〉ㆍ〈메나리〉ㆍ〈잦모리〉ㆍ〈헡은바라〉ㆍ〈천수바라〉ㆍ〈중보〉 등이며, 불교 《영산재》 등 의식에서 연주하는 취고수 연주 악곡은 〈취타가락〉ㆍ〈능게가락〉ㆍ〈내림게가락〉ㆍ〈염불가락〉ㆍ〈천수바라가락〉ㆍ〈요잡가락(막바라 반주)〉 등이다. 이와 같은 악곡은 각각 전승계보가 다르지만 상호 교섭현상이 보이고, 모두 행악으로 사용한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취고수 음악은 호적 중심의 음악인 점에서 당피리가 중심인 고취악과 구분된다.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의 형성과 전개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3.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