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군영과 민간에서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활동을 했던 군영악대
중국에서는 송대(宋代)부터 대악(大樂)과 세악(細樂)의 제도가 있었고, 대악은 취고수, 세악은 세악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취고수와 세악수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계기로 도입되었다. 다만 취고수와 세악수의 성립 시기는 각각 달랐고, 세악수의 성립 시기는 1682년 이후, 1711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악수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군영에서의 세악수의 필요성 대두와 그를 충족할 사회적 조건의 성숙 등을 들 수 있다. 세악수 제도는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었으나, 악기편성, 악곡 등은 중국과 다르다.
세악수는 조선 후기 삼현육각 편성으로 취고수와 짝을 이루어 연주활동을 한 군영악대이다. 세악수는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점 등에서 군인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군영악대이지만, 도가(都家)를 중심으로 민간에서도 활동을 한 반군반민(半軍半民)의 이중적 성격의 악대이다. 세악수는 피리 2, 대금1, 해금1, 장구 1, 북 1로 구성된 삼현육각 여섯 명이 한 단위[牌]를 이루었다.
군인으로서의 세악수의 연주 활동은 왕의 거둥, 관찰사의 행렬, 군영의 행렬, 사신 행렬 등에서의 연주와 군영과 관아의 연향 등에서의 연주가 있었고, 민간에서는 풍류 모임에서의 연주가 있었다.
세악수가 연주한 음악은 행악과 연향악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행악에는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이 있다. 연향악은 무용 반주곡, 성악 반주곡, 기악감상곡으로 분류할 수 있다. 궁중에서 삼현육각으로 무용 반주음악을 연주한 예는 1923년 순종오순기념잔치를 예로 들 수 있으나 구체적 악곡은 전하지 않는다. 민간에서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무용 반주음악에는 〈긴염불〉, 〈반염불〉, 〈굿거리〉, 〈자진굿거리〉, 〈길타령〉, 〈느린허튼타령〉, 〈허튼타령〉, 〈자진허튼타령〉, 〈당악(휘모리)〉, 〈시나위〉가 있다. 삼현육각으로 연주한 성악 반주음악은 가곡의 반주 음악이다. 삼현육각으로 연주한 기악감상곡에는 《영산회상》, 〈여민락〉, 〈사관풍류(자진한잎)〉 등이다.
세악수는 군복, 붉은색 연주복, 청철릭, 평상복 등을 착용했다.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ㆍ세악수ㆍ내취-』, 태학사, 2007.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