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의 길례, 가례, 군례에 사용한 원형으로 된 금속 타악기. 대금과 소금이 있다.
금은 군례에서는 병기(兵器) 혹은 형명(形名)으로 사용했고, 노부에서는 대가노부, 법가노부, 소가노부에 편성했으며, 제례에서는 종묘제례와 둑제에서 사용했다. 금(金)에는 대금과 소금의 두 종류가 있다. 대금은 징으로 전승되었으며, 소금은 꽹과리로 전승되었다.
금(金)은 고려 문종조(1019-1083)부터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종묘제례악》, 둑제, 노부, 군례의 사우사단의, 관사우사단의, 대열의에 사용되었다. 금은 크기에 따라 큰 것[大金]과 작은 것[小金]의 두 가지가 있다. 소금(小金)은 형태면에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가례에 사용한 소금으로 형태는 대금과 같되 크기가 작고, 다른 하나는 《종묘제례악》에 사용한 소금으로 가례용 소금과 같되 자루가 있다. 군례와 노부, 둑제에서의 대금의 연주 전통은 단절되었고, 《종묘제례악》에서의 대금의 연주 전통은 지금도 전승되고 있다. 의례에서 소금을 연주하는 연주 전통은 전승이 단절되었지만, 오늘날 꽹과리로 전승되고 있다.
금은 금속[金]으로 만든 타원형의 타악기이며,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금(大金)과 소금(小金)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금이라고 할 때에는 대금을 가리킨다. 금과 유사한 악기로는 정(鉦), 나(鑼), 쟁(錚)이 있다. 금은 정(鉦), 나(鑼)와 동일한 악기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각각 별개의 악기이고, 용도도 다르다. 군영에서 금(金)은 진퇴를 금하는 신호를 하는 악기로 사용했다. 성조의(城操儀) 등 군례에서 정(鉦)의 연주를 지시할 때 명금(鳴金)이라 하여 금과 정을 혼용한 경우가 있다. 나(鑼)는 금보다 크기가 작다. 정(鉦)과 쟁(錚)은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구분되며, 대정과 대쟁은 대금(大金)으로 통합되어 징으로 전승되고 있다. 금은 군례, 노부에서는 신호용 악기로 사용되었고, 둑제와 〈정대업〉 정재와 일무에서 무구(舞具)로 사용되었다. 군례에서는 활쏘기[射禮. 사우사단의, 관사우사단의]를 할 때, 살가림[乏] 서쪽에 금을 설치하고, 활이 맞지 않았을 때 금을 쳤다. 대열의 때는 멈추어야 할 때 금을 울렸다. 군례와 노부에서 금은 대부분 북[鼓]과 함께 짝을 이루어 사용되었다. 대가노부에는 금이 4명, 법가노부에는 금이 3명, 소가노부에는 금이 1명 배치되어 있었다. 노부에 사용하는 금은 대소가 있지만, 어떻게 구분하여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정대업〉 정재와 일무에서는 대금과 소금을 구분했다. 〈정대업〉 정재와 일무에 편성되어 있던 대금과 소금은 『종묘의궤』(1706)에는 헌가에 편입되어 있다. 1917년에는 헌가에서 소금이 없어지고 대금만 남았으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소금(小金)은 형태면에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가례에 사용한 소금으로 형태는 대금과 같되 크기가 작고, 다른 하나는 《종묘제례악》에 사용한 소금으로, 대금과 동일한 형태지만, 크기가 작고 자루가 있다.
종묘제례 일무 〈정대업지무〉에 사용한 소금은 자루가 있는 점에서 불교에서 사용하는 광쇠와 유사하다. 광쇠는 불교 재의식에 사용된 악기였으나 굿중패에 의해 민간에서도 사용되었으며, 나중에는 꽹과리로 대치되었다. 조선 후기 예인 집단 중 꽹과리를 연주한 집단은 굿중패와 걸립패인데, 굿중패는 초기에는 광쇠를 연주하다가 후대에 이를 꽹과리로 대치했으므로 악기 사용의 선후 관계로 보았을 때 꽹과리의 초기 전승은 굿중패와 관련 있다.
대금의 연주 전통은 오늘날 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종묘제례악》, 〈대취타〉, 농악, 무속음악, 불교음악 등의 연주에 사용되고 있다. 소금의 연주 전통은 오늘날 꽹과리로 이어지고 있으며, 농악, 무속음악, 불교음악 등의 연주에 사용되고 있다.
『고려사』 『국조오례의』 『세종실록』 『악학궤범』 『종묘의궤』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의 형성과 전개 연구: 취고수ㆍ세악수ㆍ내취』, 태학사, 2007. 이숙희, 「금(金)과 꽹과리의 전승 관계: 소금과 광쇠를 중심으로 금과 꽹과리」, 『음악과 문화』 30, 세계음악학회, 2014.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