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풍아(海東風雅)』
가객 김수장(金壽長, 1690~1769 이후)이 18세기 중반부터 네 차례 이상 수정, 증보해 편찬한 가곡집.
가객 김수장은 66세이던 1755년 『해동가요』(박씨본)을 편찬한 이후 80세까지 4권 이상의 가집을 계속 개찬해 나갔다. 첫 가집은 그의 처소 관덕재(觀德齋), 이후 가집들은 그의 풍류방 노가재(老歌齋)에서 편찬했다. 편찬 목적은 가곡이 민멸되지 않고 널리 전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18세기 중반 김천택(金天澤)과 김수장은 명창으로 함께 거론되던 가객들이었다. 김수장은 병조(兵曹) 서리였는데, 나이 육십이 넘어서 가집 편찬을 위해 고금(古今)의 작품들을 수집했다. 작품을 편집할 때는 선배 가객인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1728)을 상당 부분 참조했다. 편제 구성, 서발문, 수집 작품 등에서 뚜렷하게 『청구영언』을 계승했음이 확인된다. 이를 토대로 새로 수집한 작품들을 추가해 가며, 자신만의 편집 체제를 보완해 편찬했다.
○ 서지 및 편찬 정보
김수장의 『해동가요』는 현재 4권이 전한다. 이본들은 각각 박씨본(박영돈 소장본), UC본(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본), 주씨본(주시경본), 일석본(이희승본) 등으로 불린다.
박씨본은 박영돈(朴永弴) 소장에서 계명대 도서관으로 소장처가 바뀌었다. 이 가집의 표제는 떨어져 나갔지만, 내지 첫 부분이 「해동가요서(海東歌謠序)」로 시작된다. 이 가집은 1754년 김수장 서문과 1755년 장복소(張福紹)ㆍ김수장 발문이 실려 있다. 이는 이본들 중 가장 이른 시기이다. 가집 중간에는 『해동가요』와 무관한 대구 지역에서 작성된 1762년 한유신(韓維信, 약 1690~1765)의 「영언선서(永言選序)」를 비롯하여 1765ㆍ1766ㆍ1767년의 『영언선』 발문들이 있다. 박씨본은 1755년 1차본을 저본으로 하여 1760년대 말 이후에 편찬된 가집이다.
주씨본은 소장자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이 잘못된 곳을 교정하여 만든 사본을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교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한 가집인데, 이를 오늘날 주씨본이라 한다. 당시 해제에 의하면, 주씨본은 건(乾)편이고, 곤(坤)편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건편인 주씨본은 유명씨(有名氏) 작품들만 수록됐다. 또한 주씨본에는 부록으로 김수장 주변 여항인들의 작품집인 『청구가요(靑邱歌謠)』가 붙어 있었다는데, 경성제대 활자본에는 빠져 있다. 그런데 김삼불(金三不, 1920~?)이 편찬한 주씨본과 일석본을 교합한 『해동가요』(정음사, 1950) 말미에는 『청구가요』가 실려 있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주씨본에는 서두에 김수장의 1763년 서문과 1767년의 ‘각가체용이별부동지격(各歌體容異別不同之格)’이 있다. 『청구가요』에 수록된 여항인 작품들에 김수장이 쓴 발문들의 간기는 1763ㆍ1764ㆍ1766ㆍ1769년이다. 따라서 박씨본 이후 1763년 2차본이 만들어졌고, 이후 지속적인 증보가 대략 1769년까지 계속되어 3차본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전사한 것이 주씨본이다.
UC본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아사미문고에 소장된 것을 정재호(鄭在皓, 1981~2000)가 발굴 소개했다. 이 가집은 권두의 첫 장이 없어져, 제목 없이 작가명 나열로 시작된다. 서발문은 없으나, 권두부에 김수장이 쓴 ‘각가체용(各歌體容)’의 글 말미에 1767년 간기가 나타난다. 작품은 주씨본과 동일하게 유명씨만 수록되는 등 두 본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3차본의 전사본으로 보인다.
일석본은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1896~1989) 소장본이다. 원본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현재 이재수(李在秀, 1912~1974) 전사본이 남아 있다. 표제는 ‘해동풍아(海東風雅)’라 기재되어 있으며, 작품 시작 부분에 ‘해동가요’라 쓰여 있다. 권두 1장이 낙장이고, 중간에 작품의 미비, 결락된 곳이 많다. 이 가집은 서발문도, 김수장 작품도 없다. 악곡에서 〈편락〉, 〈편소용〉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본들 중 가장 늦은 18세기 말 이후 『해동풍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 구성 체제와 세부 내용
『해동가요』는 대체로 권두부에 서문, 음악 관련 기록, 작가 명단 등을 싣고 있다. 본문 작품은 악곡별 분류이고, 악곡 중 이삭대엽 작품들은 작가를 신분별, 시대순으로 배열했다. 말미에는 발문을 갖춘 것도 있다. 각 이본의 구성 체제를 알아보기 위해, 전체 악곡 편제와 작품 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늦은 후대에 끼워 넣은 극히 일부 작품은 제외한다.
박씨본은 권두에 서문 3편, 음악 관련 정보 3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악곡별 작품 배열인데, 다음과 같다. 〈초중대엽〉(1수)-〈이중대엽〉(1수)-〈삼중대엽〉(1수)-〈북전〉(1수)-〈이북전〉(1수)-〈초삭대엽〉(1수)-[이삭대엽](305수)-〈영언선〉(11수)-[무명씨](38수)-〈접소용삭대엽가합자초집(接騷聳數大葉可合者抄集)〉(11수)-〈낙시조〉(27수)-〈만삭〉(32수)-[무명씨](95수). 이 중 [ ] 부분은 항목명이 없어, 가집의 일반적인 편제에 맞추어 명칭을 넣었다. 〈이삭대엽〉 305수는 열성어제(列聖御製), 여말(麗末), 본조(本朝), 명기(名妓) 8인, 연대결고(年代欠考), 김천택, 김수장 순으로 배치된 유명씨 작품들이다. 유명씨가 끝나면 〈이삭대엽〉 [무명씨]와 〈소용〉, 〈낙시조〉, 〈만삭〉 등이 이어진다. 그런데 김수장 발문은 〈이삭대엽〉 [유명씨] 작품이 끝나는 부분에 장복소의 발문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즉 김수장이 만든 것은 유명씨까지의 가집이었다. 이하 나머지는 후대에 가곡 전체 악곡을 채우기 위해 추록한 것들이다.
주씨본은 권두에 서문 1편, 음악 관련 정보 3편, 작가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악곡별 작품 배열인데, 다음과 같다. 〈초중대엽〉(1수)-〈이중대엽〉(1수)-〈삼중대엽〉(1수)-〈북전〉(1수)-〈이북전〉(1수)-〈초삭대엽〉(1수)-〈이삭대엽〉(561수). 〈이삭대엽〉 561수는 열성어제, 여말, 본조 순으로 배치된 유명씨 작품들이다. 마지막 작가는 김수장으로 끝난다. 작품 본문이 끝난 부분에는 장복소 발문이 있다. 즉 주씨본은 유명씨 작품들로만 구성된 가집이다. 가집 말미에는 고금의 유명 가객 명단인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가 있다. 이 명단엔 가객 56인의 이름이 자호(字號)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명단 배열은 나이 순이다.
UC본은 권두에 작가 명단, 한시 1편, 음악 관련 정보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악곡별 작품 배열인데, 다음과 같다. 〈초중대엽〉(1수)-〈이중대엽〉(1수)-〈삼중대엽〉(1수)-〈북전〉(1수)-〈이북전〉(1수)-〈초삭대엽〉(1수)-〈이삭대엽〉(469수). 〈이삭대엽〉 469수는 열성어제, 여말, 본조의 순으로 배치된 유명씨 작품들이다. 마지막 작가는 김수장으로 끝난다. 즉 UC본은 유명씨 작품들로만 구성된 가집이다.
일석본은 권두에 음악 관련 정보 2편, 작가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악곡별 작품 배열인데, 다음과 같다. 〈초중대엽〉(1수)-〈이중대엽〉(1수)-〈삼중대엽〉(1수)-〈북전〉(1수)-〈이북전〉(1수)-〈초삭대엽〉(1수)-〈이삭대엽〉(473수)-〈삼삭대엽〉(34수)-〈낙시조〉(56수)-〈편락시조〉(6수)-〈소용〉(4수)-〈편소용〉(1수)-〈만삭대엽〉(58수). 가장 많은 473수의 〈이삭대엽〉은 유명씨 315수와 무명씨 158수로 이루어져 있다. 유명씨 315수는 열성어제, 여말, 본조, 명기 9인, 본조, 여항인, 본조로 배치되어 있다. 일석본은 김천택ㆍ김수장 작품이 수록되지 않았다. 또 이본들 중에서 악곡 수도 제일 많다. 총 13개 악곡으로 구성되었고, 소가곡 중 가장 늦게 나온 편 계열까지 갖추고 있다. 이로 보아 김수장이 편찬한 『해동가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가집임을 알 수 있다.
김수장의 『해동가요』는 현존 4개 이본 중 박씨본, 주씨본, UC본의 3개 이본이 유명씨 작품에서 끝난다. 유명씨 작품은 모두 〈이삭대엽〉에 배치되는데, 이는 김천택의 『청구영언』에서부터 나타나는 편집 방식이다. 이처럼 김수장의 관심이 유명씨 작품에 집중되다 보니, 악곡별 분류이기는 하나 삭대엽에서 〈초삭대엽〉, 〈이삭대엽〉은 있지만 〈삼삭대엽〉은 없다. 〈삼삭대엽〉은 무명씨 작품들이 주로 배치되는 악곡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삭대엽〉 유명씨로 마무리된 상태에서 유통, 전승됨으로써 무명씨 이하의 악곡들에 대한 후대 향유자들의 욕구가 박씨본과 일석본의 다수 악곡을 추가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일석본은 유명씨로의 마무리 흔적인 발문도 없을 만큼 『해동가요』에서 가장 먼 후대에 만들어진 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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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愼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