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악가사(상)(俗樂歌詞 上)』, 『아속가사(雅俗歌詞)』
궁중 의례 중 제례와 연향에서 가창된 악장들의 가사 모음집
15세기 세종 때에 전승 악장을 모으기 위해 사대부 개인들이 소장한 악장집을 널리 구한 일이 있다. 16세기 이황(李滉, 1501~1570)은 박준(朴浚)이 아속(雅俗) 가사를 모아 간행한 책이 있다고 하면서, 그 안에 수록된 〈어부가(漁父歌)〉ㆍ〈쌍화점(雙花店)〉을 언급했는데 이 작품들은 본디 악장집에 수록되어 전해지는 노래들이다. 이런 사실들은 악장들이 각양 형태로 부분 혹은 전체가 전승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오늘날까지 전승된 악장들의 세 편명 즉 「아악가사」 ㆍ「속악가사」ㆍ「가사」는 음악의 종류가 다르고, 이를 불렀던 악인들도 다르며, 각 편들의 판각 상태도 다르다. 이로 보아 여러 형태의 악장집이 전승되다가 대략 17세기 말에 현전 악장집 형태로 합철,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 서지 및 편찬 정보
『악장가사』는 3종 이본이 전해진다. 이본들은 『악장가사』(장서각본), 『아속가사』(윤씨본), 『속악가사(상)』(하합본)으로 서명이 다르다. 이들을 동일 책으로 보는 이유는 모두 「아악가사」ㆍ「속악가사」ㆍ「가사」의 편명으로 구성되었고, 편명별로 동일 판각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록 작품은 거의 같고, 다만 후대 창작된 악장들이 필사 형태로 추가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 이본 모두 서문, 발문이 없기에 후대에 추가된 악장의 창작 시기로 간행연대를 추정한다.
하합본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에 파견된 일본 동양협회전문학교(東洋協会専門学校)의 경성분교(京城分校) 교사 겸 간사였던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 1873~1918)에 의해 수집된 도서로 그의 이름을 따서 하합본 혹은 가와이본으로 지칭된다. 하합본들은 교토대가 문고 전체를 사들여 부속도서관 가와이문고에 수장했다. 하합본의 표제는 『속악가사(상)』이다. 하합본은 후대 추가된 작품이 없다. 수록 작품 중 「속악가사」의 《정대업(定大業)》 10장에 〈중광(重光)〉이 배치된 때가 가장 늦은 시기인데, 이를 기준으로 볼 때 1695년 이후 간행되었다.
윤씨본은 표제가 『아속가사』인데,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종택에 전해오던 것이기에 윤씨본이라 한다. 현재는 고산유물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합본과 내용은 같으나, 〈문선왕(文宣王)〉 악장이 7편에서 10편으로 늘어났고, 이 부분을 필사로 추가했다. 이는 숙종 대 문묘(文廟) 악장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 그 시기는 대략 1695~1720년 사이로 추정된다.
장서각본은 표제가 『악장가사』인데, 「아악가사」ㆍ「속악가사」에서 후대에 제작된 여러 악장들이 추가로 필사되었다. 이 중 가장 후대의 것은 순조 대에 만들어진 「아악가사」의 〈대보단악장(大報壇樂章)〉과 「속악가사」의 〈비궁속악(閟宮俗樂)〉 악장이다. 따라서 순조 대 이후에 간행되었다. 이 외에도 장서각본에는 후대의 여러 메모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구성과 체재
세 이본은 모두 동일 목활자본이다. 그러나 책을 구성하는 「아악가사」ㆍ「속악가사」ㆍ「가사」 각편들 간에는 판각의 행수(行數), 자수(字數), 표기 문자, 글자 크기 등이 제각기 다르다. 즉 세 편은 각각 판각, 인쇄된 후에 하나의 책으로 합철된 것이다. 이에 합철 과정에서 세 편의 순서와 표제도 달라졌다.
하합본은 「속악가사」ㆍ「가사」ㆍ「아악가사」의 순으로 편철되었다. 『속악가사(상)』은 첫 편명을 표제로 삼은 것이다. 윤씨본은 「아악가사」ㆍ「속악가사」ㆍ「가사」의 순으로 편철되었다. 『아속가사』는 전반부에 배치한 아악과 속악 악장을 한꺼번에 아울러 표제로 삼은 것이다. 장서각본은 「속악가사」ㆍ「아악가사」ㆍ「가사」의 순으로 편철되었다. 『악장가사』는 전반부 속악 악장, 아악 악장과 그 뒤의 「가사」를 동시에 일컫는 이름이다.
○ 작품 수록 양상과 세부 내용
세 이본은 동일 목판본이기에 수록 작품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후대에 각 편별로 추가된 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 이본 중 하합본은 추가된 악장 없이, 원 목판본 그대로이다. 이에 하합본의 각 편명별로 수록된 작품과 나머지 윤씨본, 장서각본의 추가된 작품을 비교하면 각 본의 세부 내용을 알 수 있다.
「속악가사」
하합본 「속악가사」는 〈종묘영녕전(宗廟永寧殿)〉 악장 28편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악장은 종묘제례의 각 절차에서 불렀던 악장이다. 각 악장은 한문과 국문을 병기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영신(迎神), 전폐(奠幣), 진찬(進饌), 초헌(初獻) 11편, 아헌(亞獻) 12편, 철변두(撤籩豆), 송신(送神)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초헌 11편은 《보태평(保太平)》으로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악장이고, 아헌 12편은 〈중광〉을 제외한 11편이 《정대업(定大業)》으로 조종의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악장이다. 《보태평》과 《정대업》은 세종이 회례악으로 만든 곡들인데, 세조 때 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개사(改詞)된 악장이다. 〈중광〉은 인조(仁祖) 3년(1625)에 임진왜란을 이겨낸 선조(宣祖)를 기리기 위해 창작된 악장인데, 숙종(肅宗) 때에 아헌의 11번째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윤씨본 「속악가사」의 내용은 하합본과 동일하다.
장서각본 「속악가사」는 〈종묘영녕전〉 악장 28편, 〈비궁속악〉 악장 11편, 〈무안왕묘악가(武安王廟樂歌)〉 3편으로 총 42편이다. 〈비궁속악〉과 〈무안왕묘악가〉가 추가되었는데, 이들 악장은 한문으로만 표기하고 국문 병기가 없다. 〈비궁속악〉은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 사당에 올리는 〈경모궁악장(景慕宮樂章)〉이다. 정조 7년(1783) 이휘지(李徽之, 1715~1785)가 다양한 한시 형식의 악장들을 처음 제작했고, 이후 순조 9년(1809)에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이 모든 악장을 4언 4구로 개찬한 것을 장서각본에 실었다. 〈무안왕묘악가〉는 〈관왕묘(關王廟)〉 악장인데, 정조의 어제 악장으로 정조 10년(1786) 이전에 창작되었다.
「가사」
하합본 「가사」는 총 24편 가요인데,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여민락(與民樂)〉, 〈보허자(步虛子)〉, 〈감군은(感君恩)〉, 〈정석가(鄭石歌)〉, 〈청산별곡(靑山別曲)〉, 〈서경별곡(西京別曲)〉, 〈사모곡(思母曲)〉, 〈능엄찬(楞嚴讚)〉, 〈영산회상(靈山會相)〉,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가시리〉, 〈유림가(儒林歌)〉, 〈신도가(新都歌)〉, 〈풍입송(風入松)〉, 〈야심사(夜深詞)〉, 〈한림별곡(翰林別曲)〉, 〈처용가(處容歌)〉, 〈어부가(漁父歌)〉,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화산별곡(華山別曲)〉, 〈오륜가(五倫歌)〉, 〈연형제곡(宴兄弟曲)〉, 〈상대별곡(霜臺別曲)〉. 이들 가요는 궁중 연향용 가요들이다. 연향 중 여러 노래를 부르는 절차는 외연(外宴)에만 있었다. 이들 가요에는 고려가요와 조선 초 가요가 섞여 있다. 고려에서 전승된 것은 〈정석가〉ㆍ〈청산별곡〉ㆍ〈서경별곡〉ㆍ〈쌍화점〉ㆍ〈이상곡〉ㆍ〈가시리〉ㆍ〈풍입송〉ㆍ〈야심사〉ㆍ〈한림별곡〉ㆍ〈처용가〉ㆍ〈만전춘별사〉이고, 조선 초에 제작된 것은 〈여민락〉ㆍ〈감군은〉ㆍ〈유림가〉ㆍ〈신도가〉ㆍ〈화산별곡〉ㆍ〈오륜가〉ㆍ〈연형제곡〉ㆍ〈상대별곡〉이다.
하합본, 윤씨본, 장서각본의 「가사」는 모두 동일하다.
「아악가사」
하합본 「아악가사」는 〈풍운뢰우(風雲雷雨)〉악장 5편, 〈사직(社稷)〉악장 4편, 〈선농(先農)〉악장 4편, 〈선잠(先蠶)〉악장 3편, 〈우사(雩祀)〉악장 8편, 〈문선왕〉악장 7편,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의 총 33편이다. 〈풍운뢰우〉는 풍운뢰우ㆍ산천ㆍ성황신, 〈사직〉은 토지와 곡식신, 〈선농〉은 농사의 신 신농씨(神農氏), 〈선잠〉은 양잠의 신 서릉씨(西陵氏), 〈우사〉는 기우제의 신 구망(勾芒)ㆍ축융(祝融)ㆍ후토(后土)ㆍ욕수(蓐收)ㆍ현명(玄冥)ㆍ후직(后稷), 〈문선왕〉은 공자(孔子), 〈납씨가〉와 〈정동방곡〉은 둑제(纛祭)에서 둑(纛) 즉 군령권(軍令權)의 상징인 군기(軍旗) 제사에서 불렀던 악장이다. 아악 제례 악장은 4언 한문 악장이고, 우리말 독음(讀音) 병기도 없다. 이 중 둑제 악장인 〈납씨가〉ㆍ〈정동방곡〉은 현토 악장으로 속악으로 불렀다. 〈납씨가〉는 현토 표기이고, 〈정동방곡〉은 한문 표기이나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현토를 사용했다. 아악이지만 둑제에서 속악 제례 악장이 사용되기도 했음이 확인된다.
윤씨본 「아악가사」는 하합본과 같으나, 〈문선왕〉악장이 7편에서 10편으로 늘어났다. 추가 악장은 영신, 아헌종헌, 송신의 셋이다. 이들 악장은 제례 절차에 맞는 악장을 보완 것으로, 추가 악장은 숙종 때 이루어졌다.
장서각본 「아악가사」는 하합본의 악장에다가 〈대보단악장〉 5편을 추가했다. 〈대보단악장〉은 전폐, 초헌 3편, 철변두로 구성된 4언 한시 악장으로 우리말 독음 표기는 없다. 대보단은 숙종 30년(1704)에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한 명(明)나라 신종(神宗)의 은의(恩意)를 추모하기 위해 창덕궁 후원에 만든 제단으로 황단(皇壇)이라고도 한다. 이후 영조 때 명 태조와 마지막 황제 의종을 함께 제향하면서 대보단을 증축하고 악장을 추가한 것이 장서각본 〈대보단악장〉이다. 〈문선왕〉악장은 하합본과 동일한 7편으로 윤씨본에서 추가된 3편 악장이 없다. 이는 장서각본이 원 목판본에다가 〈대보단악장〉만을 추가로 넣었기 때문이다.
『악장가사』는 궁중 제례와 연향의 절차에서 가창되었던 악장의 모음집이다. 「아악가사」ㆍ「속악가사」ㆍ「가사」의 셋은 장악원에서 이들 의례를 담당하는 악인들을 위해 제각각 목판으로 제작한 것이고, 이를 모아서 합철한 것이 하합본ㆍ윤씨본ㆍ장서각본의 세 이본이다. 한번 간행한 이후에도 원 목판본은 그대로 유지된 채, 추가로 만들어진 악장만을 필사로 추가해 계속 합철해 나갔다. 추가 악장은 제례악장인 「아악가사」 「속악가사」에서만 나타났고, 연향용 가요악장인 「가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차이는 의례 특성과 관련된다. 제례는 필요에 의해 새로운 제례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빈번하게 개최되는 정례적 제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추가된 악장을 신속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 비해 연향의 외연은 정례적 의례가 아닌 왕의 기념할 일이 있을 때만 열리는 매우 드문 일회성 의례이고, 기념 내용도 때마다 달라진다. 이에 외연의 가요공연은 「가사」의 가요 목록만으로도 충분하거나 창작한다 하더라도 일회성 사용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의례 특성 때문에 제례 악장은 추가 악장이 생성되면 정례 제례에서 거듭 불려졌다. 그에 비해 연향 가요는 비정례 단발성 의례이고, 연향 목적도 매번 다르기에 새로운 악장을 굳이 추가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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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愼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