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집(歌詞集)』, 『가곡원류』(국악원본)
1872년 박효관, 안민영이 편찬한 남창ㆍ여창과 연음표(連音標)를 갖춘 가곡집
『가곡원류』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후원으로 가객 박효관(朴孝寬, 1800~1880)ㆍ안민영(安玟英, 1816~1885이후)이 편찬한 가곡창 가집이다. 경복궁을 증축할 때, 대원군이 제공한 필운대 인근의 만리장성집에서 1872년 박효관의 발문까지 갖춰 완성했다. 총 856수의 작품을 남창ㆍ여창 구분 아래 악곡별 체재로 구성했으며, 이 중 총 726수는 연음표 성악보를 그렸다.
전승되던 가곡과 동시대 작품들을 수집, 정리하고 악보집까지 만드는데 적어도 5년 이상 걸렸다. 이 기간에 여러 초기본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육당본ㆍ프랑스본이다. 박효관 원고본(原稿本)은 그의 문생 하순일(河順一, ?~1913이후) 소장, 하순일의 사촌 하규일(河圭一, 1867~1937) 소장, 국립국악원 초대 원장 이주환(李珠煥, 1909~1972) 소장을 거쳐 국악원에 기증되었는데, 이것이 『가곡원류』(국악원본)이다. 국악원본의 첫 속지와 마지막 작품 끝에는 각각 이주환의 도장이 찍혀 있다.
○ 서지 및 편찬 정보
제책 형태는 1책 총 142면이고, 크기는 가로21cm×세로30cm이다. 종이는 저지이고, 제본은 5곳을 뚫어 끈으로 묶는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을 사용했다.
이 가집은 표제와 필사 앞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원래 표제는 『가사집』이었다고 전한다. 현재의 표제 『가곡원류』는 낙장 부분에 남겨진 중국 송(宋)나라 오증(吳曾)의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에 실린 글에서 비롯되었다. 『가곡원류』 이본들은 모두 오증의 「가곡원류(歌曲源流)」ㆍ「논곡지음(論曲之音)」을 나란히 싣고 있는데, 이 중 첫 글인 「가곡원류」를 따서 표제로 삼게 된 것이다. 현재 20개가 넘는 이본들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표제가 『가곡원류』로 되어 있다. 이본 중에는 독자적 표제를 가진 『화원악보(花源樂譜)』, 『협률대성(協律大成)』, 『해동악장(海東樂章)』 등도 있다.
총 856수는 국한문 혼용체이고, 매우 유려한 필체이다. 이 중 726수에 성악 부호인 연음표가 붉은색으로 정교하게 기입되었다. 박효관 발문까지 갖춘 박효관 원고본이자 최선본(最善本)이다.
○ 구성 체제
전체 구성 체제는 다음과 같다.
① 「논곡지음(論曲之音)」의 마지막 4행
② 성휘(聲彙), 평조(平調)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
③ 가지풍도형용십오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
④ 매화점장단(梅花點長短), 장고장단점수배포(長鼓長短點數排布)
⑤ 남창(男唱) 30곡, 여창(女唱) 20곡
⑥ 발문(跋文)
⑦ 어부사(漁父詞)
①~④는 가곡 관련 음악정보들이다. 이 가집의 초기본부터 이본들에 공히 등장하는 것들이다. ①은 송나라 오증의 『능개재만록』 중 「가곡원류」ㆍ「논곡지음」 두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훼손되어 「논곡지음」의 일부만 남아 있다. ②성휘는 평성ㆍ거성ㆍ상성ㆍ입성에 대한 간략 설명이다. 평조ㆍ우조ㆍ계면조는 각 조(調)의 느낌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③은 15개 악곡의 음악적 특징을 4언 2구의 한문구로 표현한 것이다. ④는 가곡 장단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매화점장단은 노래 부르는 가자(歌者) 스스로 편하게 치는 약식 장단이고, 장고장단은 장구를 치는 연행자가 노래와 관현 반주에 맞추는 장단이다.
⑤는 작품 본문에 해당한다. 총 856수를 남창과 여창으로 분류하고, 다시 각각을 악곡별로 나누어 작품을 수록했다.
⑥은 박효관의 발문이다. 연대 표기가 없으나, 첫 소장자였던 하순일 편집본 『가곡원류』(단국대 소장)에 따르면 1872년 발문이다.
⑦은 십이가사 중 하나인 〈어부사(漁父詞)〉이다. 전래되던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9장 〈어부사〉를 『가곡원류』 편찬자들이 8장으로 고친 것이다. 8장 〈어부사〉는 『가곡원류』계 이본들에서만 나타나다가 현행에 이르렀다.
○ 작품 수록 양상과 세부 내용
총 856수의 편제 순서에 따라 남창ㆍ여창, 악곡명, 작품 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부분은 항목명이 기입되어 있지 않아, 가집의 일반적인 편제에 맞추어 명칭을 넣었다.
[남창]
우조(羽調): 〈초중대엽(初中大葉)〉(3수) 〈장대엽(長大葉)〉(1수) 〈삼중대엽(三中大葉)〉(2수)
계면조(界面調): 〈초중대엽(初中大葉)〉(1수) 〈이중대엽(二中大葉)〉(1수) 〈삼중대엽(三中大葉)〉(1수) 〈후정화(後庭花)〉(1수) 대(臺)(1수)
우조(羽調): 〈초삭대엽(初數大葉)〉(13수) 〈이삭대엽(二數大葉)〉(37수) 〈중거(中擧)〉(19수) 〈평거(平擧)〉(23수) 〈두거(頭擧)〉(21수) 〈삼삭대엽(三數大葉)〉(22수) 〈소용이(搔聳伊)〉(14수) 〈율당삭대엽(栗糖數大葉)〉(5수)
계면조(界面調): 〈초삭대엽(初數大葉)〉(4수) 〈이삭대엽(二數大葉)〉(81수) 〈중거(中擧)〉(54수) 〈평거(平擧)〉(65수) 〈두거(頭擧)〉(68수) 〈삼삭대엽(三數大葉)〉(24수)
〈만횡(蔓橫)〉(25수)
〈롱가(弄歌)〉(60수)
〈계락(界樂)〉(31수)
〈우락(羽樂)〉(19수)
〈얼락(旕樂)〉(28수)
〈편락(編樂)〉(7수)
〈편삭대엽(編數大葉)〉(22수)
〈얼편(旕編)〉(12수)
[여창(女唱)]
우조(羽調): 〈중대엽(中大葉)〉(1수)
계면조(界面調): 〈이중대엽(二中大葉)〉(1수)
〈후정화(後庭花)〉(1수) 대(臺)(1수)
〈장진주(將進酒)〉(1수) 대(臺)(1수)
우조(羽調): 〈이삭대엽(二數大葉)〉(14수) 〈중거(中擧)〉(11수) 〈평거(平擧)〉(7수) 〈두거(頭擧)〉(15수)
〈율당삭대엽(栗糖數大葉)〉(2수)
계면조(界面調): 〈이삭대엽(二數大葉)〉(16수) 〈중거(中擧)〉(21수) 〈평거(平擧)〉(21수) 〈두거(頭擧)〉(13수)
〈롱가(弄歌)〉(15수)
〈우락(羽樂)〉(19수)
〈계락(界樂)〉(12수)
〈편삭대엽(編數大葉)〉(18수)
가필주대(歌畢奏臺)(1수)
작품은 남창 30곡에 665수, 여창 20곡에 191수이다. 여창 시작 부분에는 ‘여창’이라고 밝혀주었고, 남창은 따로 표기해 주지 않았다. 남ㆍ여창 전체가 끝난 마지막에는 ‘가필주대’라는 작품명 아래에 “이리ᄒᆞ여도”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 가곡 한바탕을 부른 후 마무리 곡으로 사용하는 〈태평가〉이다. 중대엽을 제외하면 현행 가곡 악곡과 거의 일치한다.
악곡명에는 붉은색 ‘ㄱ’표를 해주고, 일부 악곡명 아래에는 ‘가지풍도형용’ 혹은 ‘순우리말 악곡명’을 부기해 놓았다. 동시대인 호석균(扈錫均) 작품 2수의 상단에는 악곡명 수정 표시가 있다. 악곡명처럼 표기된 남창과 여창의 ‘대’ 그리고 마지막 ‘가필주대’는 악곡명이 아니다. 대는 대가, 대받침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원곡(原曲)인 노래와 짝을 이루는 노래를 말한다. 남창의 ‘〈후정화〉와 대’, 여창의 ‘〈후정화〉와 대’ ‘〈장진주〉와 대’, 맨 마지막의 ‘가곡 한바탕과 가필주대’가 짝이 되고 있다.
각 작품 위에는 붉은색 ‘○’표로 작품 시작을 표시해 주었다. 작품의 악곡적 분절은 가곡 오장(五章)과 각 장의 초두(初頭)ㆍ이두(二頭)의 두 가지를 붉은색 점으로 표시했다. 장 구분은 한 칸을 비운 자리 중앙에, 초두ㆍ이두는 글자 간 간격 없이 왼쪽에 치우쳐 점을 찍음으로써 둘을 구별했다.
연음표는 726수에 붉은색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자(歌者)들의 기억을 돕기 위해 고안된 기보법이다. 음부(音符)는 8종으로, 사설 오른편에 기입했다. 연음표는 작품 전체가 아닌 특정한 위치에만 기입되는 규칙성을 보인다. 연음표가 그려진 곳은 가변선율, 연음표가 없는 곳은 고정선율 부분으로 알려져 있다.
연음표가 전혀 기입되지 않은 작품도 130수나 된다. 주로 ‘중대엽 계열 작품’과 ‘동시대인들 작품’이다. 중대엽 계열은 당시 거의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동시대인들 작품은 겸양의 뜻으로 악보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음표가 아닌데도 가창을 위해 연음표처럼 붉은색으로 변조(變調) 위치를 표시한 것들도 있다. 남창 〈율당삭대엽[반엽]〉의 “삼월삼일(三月三日) 이백(李白) 도홍(桃紅)”, “흐리나 맑으나 중에” 두 작품에는 우조에서 계면조로 변조가 시작되는 글자 옆에 “계(界)”라고 써 주었다.
856수 작품의 형성은 남창 가집 『지음(건)(知音(乾))』의 단 1수를 제외한 모든 작품을 그대로 가져오고, 여기에 동시대인들 작품과 옛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더 뽑아서 남창 사설의 목록을 만들었다. 여기에 여창 사설 목록을 곁들여 최종 작품 목록이 완성되었다. 작품 목록에 기초가 된 『지음(건)』의 전체 작품은 악조별 분류 형태인데, 이를 가곡 연창 순서에 맞추어 개편한 것이 『가곡원류』이다.
856수에는 상당수 사설이 중복 수록됐다. 중복 수록은 무작위가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보인다. 우조ㆍ계면조 간 중복, 악곡 간 중복, 남창과 여창 간 중복이 나타난다. 이는 발문에서 우려한 당대 가곡 연창에서 악조, 악곡, 남ㆍ여창 사설이 고착되어 온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했던 편찬자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필체는 일관되게 전문 필사가의 솜씨로 추정되는 단정하고 유려한 해서체이다. 몇몇 작품에서는 동일 필체로 사설의 변주를 작은 글씨로 기록한 것들이 있다. 이는 연행 현장의 관행적 사설 변주를 반영한 것이다.
가창 때 사설의 실제 발음을 반영한 표기도 곳곳에 나타난다. 소용 11수 전체는 “오오우오오우우우오”와 같은 구음(口音)을 표기했다. 작품의 한자어에는 우리말 독음(讀音)을 달지 않았는데, 한자어와 실제 우리말 발음이 다를 경우는 모두 독음을 달아주었다. 목단(牡丹)은 모란, 동로구(銅爐口)는 퉁로구, 두마(豆麻)는 두메, 발운갑(拔雲甲)이는 갑이 등과 같이 한자어 옆에 상용 우리말 발음 표기로 바로잡아 주었다.
『가곡원류』는 19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가곡 가집이다. 악곡도 현행 가곡과 거의 일치하여, 오늘날에 미친 영향은 직접적이다. 18세기 이래로 모든 가집들이 사설집으로써의 역할을 표방한데 비해 『가곡원류』는 사설집과 성악보집을 아우르는 새로운 가곡집으로 기획되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가객 박효관의 발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악곡과 사설에는 당대 연창 상황은 물론 편찬자인 박효관의 가곡관도 함께 반영되었다. 5년 이상 걸린 편찬 과정에서 생성된 초기본들은 새로운 가집 제작을 위한 편찬자들의 고심을 확인할 수 있다. 완성본 이후에도 지속적인 재필사로 불과 20~30년 사이 20개가 넘는 이본의 확산을 보였다. 또한 가객 박효관 이후 이어진 사승(師承) 관계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가곡원류』를 우리 가곡의 맥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대표 가집으로 자리잡게 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2023)
구자균, 『조선평민문학사』, 민학사, 1974. 송방송,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1984. 신경숙, 『19세기 가집의 전개』, 계명문화사, 1994. 강경호, 「가곡원류계 가집의 편찬 특성과 전개 양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류속영, 「매화점장단의 구조와 원리」, 『한국음악연구』 71, 2022. 변미혜, 「사설에 따른 가곡선율의 변형(Ⅰ)」, 『교수논총』 4, 1988. 신경숙, 「『가곡원류』 편찬 연대 재고」, 『한민족어문학』 54, 2009. 신경숙, 「19세기 서울 우대의 가곡집, 『가곡원류』」, 『고전문학연구』 35, 2009. 신현웅, 「19세기 〈어부사〉 향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국문학연구』 42, 2020. 이병기, 「서문」, 함화진 편, 『(증보)가곡원류』, 1943.
신경숙(愼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