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새, 도섭, 도습(道習)
예로부터 판소리 명창들은 소리를 더욱 다채롭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음악적 기교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주로 성음, 악조, 리듬의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붙임새는 이중 리듬 기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장단의 리듬구조에 사설을 배열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진양조ㆍ중모리ㆍ중중모리ㆍ자진모리ㆍ휘모리 등의 장단은 저마다 고유한 리듬구조를 가진다. 붙임새란 장단 본래의 틀에 사설을 배열하거나, 그 틀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음악적 변화를 꾀하는 기교이다. 바꾸어 말하면 장단의 리듬구조가 가진 구속력을 벗어나도록 사설을 붙임으로써 악곡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가창 기법이 붙임새인 것이다.
“대마디대장단으로 소리하면 맛이 없으니 변화를 주기 위하여 붙임새를 한다”는 김연수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판소리 명창들은 붙임새를 음악적 변화를 위한 장치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창자나 유파에 따라 선호되는 정도가 달랐다. 근대 5명창 중에서 정정렬은 붙임새를 적극적으로 적용한 반면, 송만갑과 이동백은 붙임새를 드물게 사용했다고 하고, 서편제의 붙임새가 정교하고 화려하다면, 동편제는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붙임새에 대한 비평적 기준도 존재한다. 일부 명창들은 자연스러운 부침새를 ‘자연부침’이라하고, 이에 반하는 것을 ‘생짜부침’, ‘억지부침’이라 한다.
붙임새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로는 대마디대장단, 엇붙임, 잉어걸이, 완자걸이, 밀붙임과 당겨붙임, 주서붙임과 뻗음, 교대죽, 도섭 등이 있다. 먼저, 대마디대장단은 한 장단에 독립된 의미 단락의 사설을 붙이는 형태를 뜻한다. 아래 〈악보 1〉은‘운담풍경/근오천//소거에/술을싣고’와 같이 각각의 장단에 독립된 의미 단락을 붙인 예이다. 이 밖에도 대마디대장단은 장단의 박자가 가진 고유한 리듬형에 부합하도록 사설을 붙이는 형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래 〈악보 2〉는 진양조의 3소박 6박자의 박자 구조에 일치하도록 사설을 붙였다.
운담 | 풍 | 경 | 근 | 오 | 천 | ||||||
소 | 거 | 에 | 술을 | 싣 | 고 |
적 | 성 | 의 | |||||||||||||||
아 | 침 | 날 | 은 | ||||||||||||||
느 | 진 | 안 | 개 | ||||||||||||||
띠 | 어 | 있 | 고 |
엇붙임은 대마디대장단에서 벗어난 형태로서 역시나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엇붙임이란 한 장단에서 서로 다른 의미 단락이 섞이는 형태를 말한다. 아래 〈악보 3〉은 한 장단에 ‘방화수류/과전천’과‘십리사정/나려가니’의 일부인 ‘십리사정’을 붙어 서로 다른 의미단락이 섞인 예이다. 둘째로 엇붙임은 박자가 가진 고유한 리듬형에 어긋나도록 사설을 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엇붙임은 잉어걸이, 완자걸이, 교대죽, 밀붙임ㆍ당겨붙임 등과 같은 붙임새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 된다.
방 | 화 | 수류 | 과 | 전 | 천 | 십 | 리 | 사정 | |||
나 | 려 | 가니 | 넘 | 노 | 나니 | 황 | 봉 | 백 | 접 |
잉어걸이는 사설의 주박을 매우 작은 시가의 휴지로 밟고 나와서 낚아채는 느낌을 주는 일종의 싱코페이션 현상을 의미한다. 아래 <악보 4>는 대부분 단어의 첫 음절을 첫 소박에 붙였지만, 유일하게 ‘떠’는 제 1소박 휴지 후 제 2소박에 붙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잉어걸이는 강약에 변화를 준다.
둥 | 덩 | 둥 | 덩 | ||||||||||||||
떠 | 나 | 간 | 다 |
완자걸이는 본래 3소박형 리듬이었던 것을 2소박형으로 바꾸는 것으로서 일종의 헤미올라 현상을 의미하며, 주로 중중모리ㆍ자진모리와 같은 빠른 장단에서 사용된다. 아래 〈악보 5〉는 중중모리의 본래 구조인 3소박 단위대로 사설을 붙이지 않고 2소박 단위로 사설을 붙인 예다.
일 | 편 | 은 | 반 | 갑 | 고 | ||||||
일 | 편 | 은 | 겁 | 을 | 내 | 어 |
밀붙임과 당겨붙임은 사설이 주박의 앞이나(당겨붙임) 뒤로(밀붙임) 비껴 붙인 형태를 의미한다. 아래 〈악보 6〉은 ‘두줄로/늘어서’에 ‘떼’를 당겨붙임한 예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형태는 아래 〈악보 7〉에서 보는 것과 같이 엇붙임과도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밀붙임과 당겨붙임은 층위가 다를 뿐 큰 틀에서 엇붙임의 하위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밀붙임과 당겨붙임은 대마디대장단으로부터 엇붙임을 만드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마디대장단에서 밀붙임과 당겨붙임을 통해 리듬의 일탈이나 신축이 생겨나고, 그 결과로 잉어걸이, 완자걸이, 교대죽 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두 | 줄 | 로 | 늘 | 어 | 서 | 떼 | |||||
기 | 러 | 기 | 소 | 리 | 허 | 고 |
방 | 화 | 수류 | 과 | 전 | 천 | 십 | 리 | 사정 | |||
나 | 려 | 가니 | 넘 | 노 | 나니 | 황 | 봉 | 백 | 접 |
교대죽은 ‘주서붙이는 교대죽’과 ‘뛰는 교대죽’으로 나뉜다. 주서붙이는 교대죽은 3소박형 장단에서 2소박형 리듬의 주박과 부박에 사설을 촘촘히 붙이는 형태이고(〈악보 8〉), 뛰는 교대죽은 사설의 의미 단위를 분절하여 장단을 넘어서 건너뛰는 형태를 뜻한다(〈악보 9〉). 한편, 교대죽과 비슷한 붙임새로는 주서붙임과 뻗음이 있다. 주서붙임은 사설을 주박과 부박 모두에 촘촘히 붙이는 형태인데, 리듬구조에 따라 3소박형과 2소박형이 있다. 이에 비해 뻗음은 의미 단위를 분절하여 일정한 길이를 뻗는 것으로, 뻗는 길이에 따라 장단 내에서 건너뛴 것과 장단을 넘어서 건너뛴 것으로 나뉜다. 주서붙임과 뻗음은 붙임새의 일 유형이라기보다는 교대죽과 같은 엇붙임을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
서 | 촉 | 지 | 척 | 이 | 요 | 동 | 해 | 창 | 망 | 하 | 다 |
축 | 융 | 봉 | 을 | 올 | 라 | 가 | 니 | 주 | 작 | 이 |
현 | 제 | 판 | 밑 | 에 | 등 | ||||||
대 | 꽃 | ||||||||||
고 | |||||||||||
어 | |||||||||||
전 | 을 | 바 | 라 | 보 | 니 |
도섭은 장단이 가진 사설 및 리듬의 구속력을 완전히 벗어난 자유리듬으로, 소리도섭과 아니리도섭의 두 종류가 있다. 소리 도섭은 자진모리장단이나 휘모리장단과 같은 빠른 장단으로 된 소리의 뒤 대목에서 자유리듬으로 소리하는 도섭이고, 아니리 도섭은 아니리를 말로 하지 않고 자유 리듬 소리로 하는 도섭으로, 이를 ‘창조(唱調)’ 또는 ‘성음(聲音)’이라고도 부른다.
이상에서 제시한 붙임새 유형들은 일견 병렬적 관계로 보이지만, 상호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기초해 붙임새의 체계가 마련된다. 이를 정리해 보면, 붙임새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째는 장단과 사설의 의미 단락이 결합하는 양상이고, 둘째는 리듬꼴의 변화 양상이다. 판소리 붙임새에서 기본형은 대마디대장단이고, 이를 벗어나 변형된 형태가 엇붙임이다. 대마디대장단은 밀붙임ㆍ당겨붙임, 주서붙임ㆍ뻗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 엇붙임으로 변화된다. 엇붙임은 다양한 하위 유형들을 포함하는데, 리듬꼴의 변화 양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은 성격에 따라 리듬 일탈형인 잉어걸이ㆍ완자걸이, 리듬 신축형인 교대죽, 자유리듬인 도섭으로 나뉜다.
붙임새는 리듬과 관련된 판소리의 음악어법이다. 판소리의 음악적 성격을 바로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판소리 작창을 위해 이해해야할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봉석, 『판소리 장단과 사설의 결합 방식 고찰』, 민속원, 2020. 송영주, 「고수론」, 『소리와 장단』 4, 1988. 이광우, 「판소리 장단의 엇붙임」, 『소리와 장단』 5, 1988. 이규호, 「판소리 붙임새 용어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이보형, 「판소리 붙임새에 나타난 리듬論」, 『장사훈박사회갑기념동양음악논총』, 1977. 천이두, 「괴대죽」, 『소리와 장단』 6, 1988. 최동현, 「판소리 장단의 〈부침새〉에 관하여」, 『판소리연구』 2, 1991.
문봉석(文奉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