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영조 35)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관찬악보의 하나
『대악후보』는 1759년(영조 35) 서명응이 영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악보집으로, 『대악전보(大樂前譜)』와 쌍을 이룬다. 『대악후보』는 전체 7권으로 구성된다. 권1은 〈원구악(圓丘樂)〉 관련 제례악을 담았고, 권2는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 권3은 〈치화평(致和平)〉과 〈취풍형(醉豊亨)〉, 권4는 〈봉황음(鳳凰吟)〉, 권5~7은 〈진작(眞勺)〉, 〈만대엽(慢大葉)〉, 〈보허자(步虛子)〉, 〈영산회상(靈山會上)〉, 〈정읍(井邑)〉, 〈자하동(紫霞洞)〉 등의 향악을 수록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세조 때의 음악을 실었다고 하나, 조선 초기 및 세종조 음악도 담고 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의 《보태평》과 《정대업》, 그리고 『세종실록(世宗實錄)』의 〈치화평〉, 〈취풍형〉, 〈봉황음〉 등과 비교하여 음악적으로 큰 변화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단, 《정대업》의 편명 해설에 악장 내용과 어긋나는 오류가 있으며, 〈영산회상〉 제2선율은 출처가 불분명하다. 판형은 한 행이 4~7줄로 나뉘며, 〈영산회상〉을 제외한 전 악곡이 3ㆍ2ㆍ3ㆍ3ㆍ2ㆍ3 6대강 16정간보에 기보되었고, 〈영산회상〉만이 4ㆍ2ㆍ4ㆍ4ㆍ2ㆍ4 6대강 20정간보에 기보되었다.
1759년(영조 35), 서명응이 왕명을 받들어 편찬하였다. 『증보문헌비고』 권94 「악고(樂考)」5 역대악제(歷代樂制)3에 관련 내용이 전한다. 세종 때의 음악과 세조 때의 음악을 전보(前譜)와 후보(後譜)의 두 체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대악전보』는 세종 때의 음악을 담은 악보집이고, 『대악후보』는 세조 때의 음악을 담은 악보집이며, 모두 16권을 한 질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1998년에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었다.
○ 체재
7권 7책 판본. 총 353장(706면)
○ 규격
한후지(漢厚紙) 44.5cm×31.4cm
○ 소장처
국립국악원
○ 편찬연대 및 편저자
1759년(영조 35)에 영조의 명으로 서명응이 편찬하였다.
1979년 『대악후보』의 영인본이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집』으로 국립국악원에서 발간되었다.
○ 구성 및 기보 체계
전체 7권 중 권1ㆍ2는 제례악을 중심으로 담았고, 권3~7은 향악을 담았다. 『증보문헌비고』 「악고」에 따르면 『대악후보』가 세조 때 음악을 담았다고 했지만, 실제 수록곡은 이와 다른 점이 있다. 권2의 〈유황곡〉과 〈정동방곡〉, 권3의 〈치화평〉과 〈취풍형〉, 권4의 〈봉황음〉은 조선 초기 또는 세종 때의 신악이고, 권5~7에 수록된 악곡도 고려 또는 조선 초기의 악곡들이다.
정간보 기보 체계는 권1의 〈창수곡〉에서부터 권7의 마지막 곡 〈자하동〉까지 모두 3ㆍ2ㆍ3ㆍ3ㆍ2ㆍ3의 6대강 16정간보에 기보되었다. 단, 권6의 〈영산회상〉만이 4ㆍ2ㆍ4ㆍ4ㆍ2ㆍ4의 6대강 20정간보에 기보되었다. 판형은 필요에 따라 4줄ㆍ5줄ㆍ6줄ㆍ7줄 판형을 사용했고, 기보 구성요소는 ‘선율, 장구, 박, 소금(小金)/대금(大金), 가사, 노래선율’이다. 이들이 모두 기재된 것은 아니고, 악곡에 따라 구성이 다르다. 선율은 대부분 오음약보(五音略譜)로 기보했는데, 예외적으로 권2의 《보태평》과 《정대업》, 〈유황곡〉과 〈정동방곡〉만이 율명을 병기하여 제1줄에 율명을 적고, 제2줄에 오음약보를 적었다.
특이하게 〈감군은〉과 〈서경별곡〉은 권5와 권6에 두 번 수록했는데, 동일 곡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 목록
권1 | 〈원구악(圓丘樂)〉, 〈창수곡(創守曲)〉, 〈경근곡(敬勤曲)〉 |
권2 | 《시용보태평보(時用保太平譜)》 〈영신희문(迎神熙文)〉, 〈전폐희문(奠幣熙文)〉, 〈진찬풍안지악(進饌豐安之樂)〉, 〈초헌희문(初獻熙文)〉, 〈기명(基命)〉, 〈귀인(歸仁)〉, 〈형가(亨嘉)〉, 〈집녕(輯寧)〉, 〈융화(融化)〉, 〈현미(顯美)〉, 〈용광정명(龍光貞明)〉, 〈중광(重光)〉, 〈대유(大猶)〉, 〈역성인출(繹成引出)〉. |
《시용정대업보(時用定大業譜)》 〈아헌소무인입(亞獻昭武引入)〉, 〈독경(篤敬)〉,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분웅(奮雄)〉, 〈순응(順應)〉, 〈총유(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영관인출(永觀引出)〉, 〈철변두옹안지악(撤邊豆雍安之樂)〉, 〈송신흥안지악(送神興安之樂)〉. | |
〈유황곡(維皇曲)〉, 〈정동방곡(靖東方曲)〉 | |
권3 |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치화평(致和平)〉, 〈취풍형(醉豊亨)〉 |
권4 | 《시용향악보》 〈봉황음(鳳凰吟)〉 |
권5 | 《시용향악보》 〈진작(眞勺)〉, 〈이상곡(履霜曲)〉, 〈만전춘(滿殿春)〉, 〈납씨가(納氏歌)〉, 〈횡살문(橫殺門)〉, 〈감군은(感君恩)〉, 〈서경별곡(西京別曲)〉 |
권6 | 《시용향악보》 〈만대엽(慢大葉)〉, 〈감군은(感君恩)〉, 〈한림별곡(翰林別曲)〉, 〈서경별곡(西京別曲)〉, 〈쌍화점(雙花店)〉, 〈보허자(步虛子)〉, 〈영산회상(靈山會相)〉 |
권7 | 《시용향악보》 〈북전(北殿)〉, 〈동동(動動)〉, 〈정읍(井邑)〉, 〈자하동(紫霞洞)〉 |
○ 수록 내용 및 음악
권1은 제례악 관련 내용과 음악을 담았다.
①세조조 속악보서(俗樂譜序)를 제시한 후, ②세조조 속악보 〈원구악〉을 음악 없이 한문 가사만 실었다. ③등가지도(登歌之圖)와 헌가지도(軒架之圖)의 악기 편성도를 제시했고, ④종묘와 원구의 춤을 정해 놓은 이무무고정(二舞舞考定)을 실었다. ⑤부(附)신제아악보(新制雅樂譜)의 〈원구악〉은 한문 가사 옆에 율명과 공척보를 제시했다. 『세조실록』의 신제아악보(新制雅樂譜)와 같다. ⑥용문무무절차(用文武舞節次)를 실었다. ⑦〈창수곡〉부터 정간보가 등장한다. 3ㆍ2ㆍ3ㆍ3ㆍ2ㆍ3의 6대강 16정간보이다. 4줄판형으로, 제1줄부터 차례로 선율(오음약보), 장구, 박, 한문 가사를 적었다. ⑧〈경근곡〉도 4줄판형에 차례로 선율(오음약보), 장구, 박, 가사를 적었다. 〈경근곡〉은 정간보 위 여백에 이기(二其)부터 구기(九其)까지 형식을 표기했다.
권2는 《보태평》과 《정대업》, 그리고 〈유황곡〉과 〈정동방곡〉을 담았다.
《시용보태평보》의 ①〈영신희문〉 곡명 아래 황종청궁(黃鍾淸宮) 구성(九成)이라고 적었다. 7줄판형으로, 제1줄에 선율 율명, 제2줄에 선율 오음약보, 제3줄에 장구, 제5줄에 박, 제7줄에 가사를 적고, 제4줄과 제6줄은 비워두었다. ②〈전폐희문〉도 〈영신희문〉과 같은 구성으로 7줄판형에 기보했다. ③〈진찬풍안지악〉은 5줄판형에 차례로 율명, 오음약보, 장구, 박, 가사를 적었다. ④〈초헌희문〉은 곡명 아래 헌관(獻官) 인입(引入)을 기재했고, 7줄판형이다. 〈전폐희문〉부터 〈초헌희문〉까지 곡명 아래 조율(調律)이 같다고 적었다. 〈기명〉부터 〈대유〉까지 곡명 아래 변(變)/편(篇)을 적고, 편명 해설을 붙였다. 이는 『세조실록』과 다른 점으로 『세조실록』의 종묘제례악보에는 변(變)의 기재와 편명 해설이 없다. ⑤〈기명〉, ⑥〈귀인〉, ⑦〈형가〉, ⑧〈집녕〉, ⑨〈융화〉는 5줄판형이고, ⑩〈현미〉는 7줄 판형이다. ⑪〈용광정명〉과 ⑫〈중광〉은 5줄판형이고, ⑬〈대유〉는 7줄판형, ⑭〈역성〉 인출(引出)은 5줄판형이다. 기보 구성은 〈희문〉과 같다.
《시용정대업보》의 ①〈아헌소무〉 곡명 아래 “종헌(終獻)과 같고, 인입이며, 황종청궁의 계면조”라고 적었다. 7줄판형으로, 제1~3줄에 율명, 오음약보, 장구를 적고, 제4줄에 소금(小金), 제5줄에 대금(大金)과 박, 제7줄에 가사를 적었다. ②〈독경〉, ③〈탁정〉, ④〈선위〉, ⑤〈신정〉, ⑥〈분웅〉, ⑦〈순응〉, ⑧〈총유〉, ⑨〈정세〉, ⑩〈혁정〉의 곡명 아래 변/편을 적고, 편명 해설을 붙였다. 〈독경〉부터 ⑪〈영관〉 인출까지 모두 7줄판형이고, 기보 구성은 〈소무〉와 같다. ⑫〈철변두옹안지악〉과 ⑬〈송신흥안지악〉은 5줄판형으로, 기보 구성은 〈진찬풍안지악〉과 같다.
《정대업》 편명 해설에 오류가 있다. 세조조 《정대업》은 세종조 《정대업》 6변 13편을 9변 각 1편으로 정비하고, 악장도 내용에 맞게 개편한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편명 해설이 있지만 『세조실록』에는 변과 편명 해설이 없는데, 『대악후보』에 변과 편명 해설이 나타난다. 그러나 내용이 논리에 어긋난다. 9곡 모두 1편이지만, 〈선위〉를 ‘제3변 범3편’이라 적고, 〈신정〉을 ‘제4변 범3편’, 〈순응〉을 ‘제6변 범2편’이라고 오기(誤記)했다. 편명 해설도 9곡이 전부 이치에 어긋난다. 유교 제례악에서 아들이 아버지에 앞서고, 내용도 서로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다. 〈독경〉을 예로 들면, 『세조실록』 〈독경〉은 목조(穆祖)의 이야기인데, 『대악후보』 〈독경〉의 편명 해설에는 목조의 아들인 익조(翼祖)가 목조 앞에 등장한다. 『대악후보』 〈독경〉의 익조 부분은 『세종실록』 《발상(發祥)》의 익조 악장인 〈순우(純佑)〉의 해설을 옮겨 놓고, 그 위에 『세종실록』의 〈독경〉 해설을 짜깁기 한 것이다. 즉, 『대악후보』 《정대업》의 편명 해설은 『세종실록』 《정대업》과 《발상》의 변/편을 악장 내용에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덧붙임으로써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1
1) 이종숙ㆍ남상숙, 「『대악후보』 권2 시용정대업 편명(篇名) 해설 고찰」, 『문화재』 49/4, 2016.
『대악후보』의 《보태평》ㆍ《정대업》은 『세조실록』의 《보태평》ㆍ《정대업》과 음악과 가사가 거의 변함 없이 그대로 유지되어 제례악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세조실록』에 없던 변과 편명 해설이 『대악후보』에 나타났고, 그 내용이 명백하게 오기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끝으로, 〈유황곡〉과 〈정동방곡〉은 조선 초기 신제 악장이나, 권2에 수록되었다. 두 곡 모두 5줄판형으로, 차례로 율명, 오음약보, 장구, 박을 적었다. 가사는 싣지 않고 제5줄을 비워두었다.
권3은 〈치화평〉 삼기곡과 〈취풍형〉을 담았다. 모두 4줄판형에 기보했다. 〈치화평〉1ㆍ2는 제1줄에 선율(오음약보)만 적고, 장단ㆍ박ㆍ가사는 싣지 않았다. 〈치화평〉3은 제1~3줄에 차례로 선율, 장구, 국한문 가사를 적었다. 〈치화평〉3은 정간보 위 여백에 해동장(海東章) 이하 15장을 표기했다. 〈취풍형〉은 4줄을 모두 채워 넣어, 차례로 선율, 장구, 박, 국한문 가사를 적었다.
권4는 〈봉황음〉 삼기곡을 담았다. 〈봉황음〉1ㆍ2는 6줄판형으로, 제1~3줄에 차례로 현악, 관악, 장구 장단을 적고, 제5줄 또는 제6줄에 가사를 적었다. 박과 노래선율은 싣지 않았다. 〈봉황음〉1의 정간보 위 여백에 ‘2, 3, 부엽(附葉), 대여음(大餘音), 중엽(中葉), 이부(二附), 소엽(小葉), 일부엽환입(一附葉還入)’의 형식을 표기했고, 〈봉황음〉2에는 ‘반여음(半餘音), 2, 3, 부엽, 대여음, 중엽, 반여음, 이부’의 형식을 표기했다. 〈봉황음〉3은 4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를 적고, 제4줄에 가사를 적었다. 정간보 위 여백에 ‘반여음, 2, 3, 부(附), 대여음, 중엽, 이부, 이대여음(二大餘音)’의 형식을 표기했다.
권5는 향악 일곱 곡을 담았다. ①〈진작〉1ㆍ2는 6줄판형으로, 제5줄까지 차례로 현악, 관악, 장구, 박, 가사를 적고, 제6줄은 비워두었다. 〈진작〉3ㆍ4는 4줄판형이다. 〈진작〉3은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 제4줄에 가사를 적었고, 〈진작〉4는 제1ㆍ2줄에 선율과 장단만 적고 가사는 적지 않았다. 〈진작〉1ㆍ2ㆍ3ㆍ4 각 곡 모두 정간보 위 여백에 ‘2, 3, 부(附), 대여음, 대엽, 이부’의 형식을 표기했다. ②〈이상곡〉은 4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 제4줄에 가사를 적었다. 정간보 위 여백에 여음을 한 차례 표기했다. ③〈만전춘〉도 4줄판형으로, 제3줄까지 차례로 선율, 장구, 박을 적고, 가사는 싣지 않았다. 정간보 위 여백에 ‘여음, 2, 여음, 3, 여음, 4, 여음, 5, 여음, 6’의 형식을 표기했다. ④〈납씨가〉도 4줄판형으로, 차례로 선율, 장구, 박, 가사를 적었다. ⑤〈횡살문〉은 6줄판형으로, 모든 줄을 채워 차례로 현악, 관악, 장구, 박, 가사, 노래선율을 적었다. 『대악후보』 전체에서 노래선율을 실은 곡은 〈횡살문〉이 유일하다. ⑥〈감군은〉은 4줄판형으로, 제1줄에 선율, 제3줄에 가사를 적고, 장단과 박은 싣지 않았다. ⑦〈서경별곡〉은 4줄판형으로, 차례로 오음약보, 장구, 박, 가사를 적었다.
권6은 향악 일곱 곡을 담았다. ①〈만대엽〉 평조는 4줄판형으로, 제1줄에 선율만 적었다. 오음약보 중간에 율명 浹이 한 차례 등장한다. 정간보 위 여백에 ‘2, 3, 4, 5, 여음’의 형식을 표기했다. 권6의 ②〈감군은〉은 권5의 〈감군은〉과 달리 곡명 아래 평조 지입(指入)이라 적었다. 권5 〈감군은〉은 선율과 가사만 적었지만, 권6은 특이하게 제1줄 오음약보에 작은 글자로 요(搖) 등의 시김새를 표기했고, 제2줄에 장구, 제4줄에 가사를 적었다. 선율에 시김새를 표기한 곡은 『대악후보』 전체에서 권6 〈감군은〉이 유일하다. 권5의 〈감군은〉과 선율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동일곡이다. ③〈한림별곡〉은 4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 제4줄에 가사를 적었다. 권6의 ④〈서경별곡〉은 권5의 〈서경별곡〉과 같은 곡인데, 박이 기재되지 않았다. ⑤〈쌍화점〉도 4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 제4줄에 한글 가사를 적었다. 정간보 위 여백에 ‘여음, 2, 반여음, 3’의 형식을 표기했다. ⑥〈보허자〉 지입은 4줄판형으로, 차례로 선율, 장구, 박, 한문 가사를 적었다. 미후사(尾後詞)의 둘째 구에 환입(還入)이라 표기했다. 본래 〈보허자〉 환입은 28행인데, 『대악후보』에는 23행밖에 없다. 지입의 제32~36행에 해당하는 환입 제24행 이하 5행이 보이지 않는다.
⑦〈영산회상〉은 『대악후보』 전체에서 판형과 기보 체계가 유일하게 다르며 음악 내용도 해명되지 않는 점이 있어, 다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진 곡이다. 『대악후보』에서 오직 〈영산회상〉만이 4ㆍ2ㆍ4의 6대강 20정간보에 기보되었다. 6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제1선율과 제2선율을, 마지막 제6줄에 ‘靈山會相佛菩薩’ 가사를 적었다. 이와 같이 선율, 가사 등 세 줄만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 4줄판형을 사용한 점을 고려하면 『대악후보』의 영산회상 악보는 특이한 점이 많다. 두 선율이 기록된 경우 다른 악곡에서는 제1선율이 현악, 제2선율이 관악임이 음악적으로 분명히 구별되는데, 〈영산회상〉 제2선율은 고악보의 기존 〈영산회상〉 선율과 크게 달라서 출처가 불분명하다. 또한 제1ㆍ2선율이 기입된 다른 악곡은 모두 장구 장단도 적었지만, 〈영산회상〉에는 장단 표기가 없다.
권7은 향악 네 곡을 담았다. ①〈북전〉은 4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를 적고, 박과 가사는 없다. ②〈동동〉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동동〉은 곡명 아래 여음이 〈정읍〉 여음과 같고 계면조라고 적혀있다. 두 번째 〈동동〉 지입(指入)은 무동(舞童)의 아박정재(牙拍呈才)와 여기의 아박정재가 같다고 적혀있다. 〈동동〉도 4줄판형으로, 제1ㆍ2줄에 선율과 장구 장단을 적었다. ③〈정읍〉 지입은 무고정재(舞鼓呈才)에 사용되며 계면조라고 적혀있다. 4줄판형으로, 제1~3줄에 차례로 현악, 관악, 장구 장단을 적었다. ④〈자하동〉은 1ㆍ2 두 곡이고, 모두 곡명 아래 계면조라 적었다. 4줄판형으로, 제1~3줄에 차례로 현악, 관악, 장구 장단을 적었다. 가사는 싣지 않았다.
『대악후보』의 악곡 기보 구성요소는 ‘선율, 장구, 박, 소금/대금, 가사, 노래선율’이다. 이중 소금과 대금은 《정대업》에만 출현하고, 노래선율은 〈횡살문〉에만 기보되었다. 박과 대금은 같은 줄에 기보했다. 선율은 율명이 병기된 권2를 제외하고 모두 오음약보로 기보되었다. 『대악후보』 악곡의 기보 구성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악곡명 | 율명 | 제1선율 | 제2선율 | 장구 | 小金 | 박/大金 | 가사 | 노래선율 | |
권1 | 〈창수곡〉, 〈경근곡〉 | ○ | ○ | ○ | ○ | ||||
권2 | 《보태평》 | ○ | ○ | ○ | ○ | ○ | |||
《정대업》 | ○ | ○ | ○ | ○ | ○ | ○ | |||
〈유황곡〉, 〈정동방곡〉 | ○ | ○ | ○ | ○ | |||||
권3 | 〈치화평〉1ㆍ2 | ○ | |||||||
〈치화평〉3 | ○ | ○ | ○ | ||||||
〈취풍형〉 | ○ | ○ | ○ | ○ | |||||
권4 | 〈봉황음〉1ㆍ2 | ○ | ○ | ○ | ○ | ||||
〈봉황음〉3 | ○ | ○ | ○ | ||||||
권5 | 〈진작〉1ㆍ2 | ○ | ○ | ○ | ○ | ○ | |||
〈진작〉3 | ○ | ○ | ○ | ||||||
〈진작〉4 | ○ | ○ | |||||||
〈이상곡〉 | ○ | ○ | ○ | ||||||
〈만전춘〉 | ○ | ○ | ○ | ||||||
〈납씨가〉, 〈서경별곡〉 | ○ | ○ | ○ | ○ | |||||
〈횡살문〉 | ○ | ○ | ○ | ○ | ○ | ○ | |||
〈감군은〉 | ○ | ○ | |||||||
권6 | 〈만대엽〉 | ○ | |||||||
〈감군은〉 | ○(시김새) | ○ | ○ | ||||||
〈한림별곡〉, 〈쌍화점〉, 〈서경별곡〉 | ○ | ○ | ○ | ||||||
〈보허사〉 | ○ | ○ | ○ | ○ | |||||
〈영산회상〉 | ○ | ○ | ○ | ||||||
권7 | 〈북전〉, 〈동동〉 | ○ | ○ | ||||||
〈정읍〉, 〈자하동〉1ㆍ2 | ○ | ○ | ○ |
1759년 영조의 명으로 서명응이 편찬한 『대악후보』는 전체 7권 구성으로 조선 초기의 다양한 악곡들을 수록한 관찬악보집이다. 세종대왕이 창안한 정간보와 세조가 창안한 오음약보의 우수한 기보 체계가 잘 반영되어 있으며, 균형 잡힌 구성과 내용으로 편찬된 악보집이다. 음악적으로도 대부분의 악곡이 『세조실록악보』와 『세종실록악보』에 담긴 음악 원형을 거의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악보집의 이름으로 가히 ‘대악(大樂)’이라는 명칭을 붙일 만큼 음악적 내용의 풍부함, 음악적 질서와 형식의 조화미, 그리고 기록유산으로서의 정교함에 손색없는 악보집이다.
국가유산 보물(1998)
『세종실록악보』 『세조실록악보』 『증보문헌비고』 「악고」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집: 대악후보』, 국립국악원, 1989. 박용대 외 지음, 김종수 역주,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3집: 증보문헌비고 악고 上』, 국립국악원, 1994. 남상숙, 「『대악후보』와 『속악원보』의 영산회상 연구」, 『한국전통음악학』 6, 2005. 남상숙, 「『대악후보』의 영산회상과 4ㆍ2ㆍ4ㆍ4ㆍ2ㆍ4 육대강보 고찰」, 『한국음악연구』 35, 2004. 오용록, 「『대악후보』와 『속악원보』의 영산회상」,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음악학논총』, 2000. 이종숙ㆍ남상숙, 「『대악후보』 권2 시용정대업 편명(篇名) 해설 고찰」, 『문화재』 49/4, 2016. 이혜구, 「영산회상: 『대악후보』 소재의 것과 현행의 것과의 비교」, 『백성욱박사송수기념불교학논문집』, 1957. 황준연, 「『대악후보』 영산회상의 제이(第二)선율」, 『국악원논문집』 창간호, 1989.
남상숙(南相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