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歌者), 선가자(善歌者), 가기(歌妓)
주로 선비들이 향유했던 가곡, 가사, 시조 등의 성악곡을 노래하던 전문음악인으로 조선 후기에 많은 활동을 하였다.
조선 후기에 풍류가 발전함에 따라 노래를 전문적으로 부르는 음악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노래뿐 아니라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였으며 노랫말을 짓거나 가집(歌集)을 남기기도 하였다. 가객 중에는 김수장, 김천택 등과 같이 가단(歌壇)을 조직하거나 가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김수장(金壽長)ㆍ김천택(金天澤)ㆍ박효관(朴孝寬)ㆍ안민영(安玟英) 등과 같은 가객은 가집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 신분 및 위상
조선 후기 이름난 가객은 중인 출신이 많았으나, 신분이 다양했다. 18세기중반 『해동가요』(1769) 말미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 목록에 오른 가객 명단에는 대다수가 중인가객이지만, 사대부(이정섭), 평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객이 대부분은 남성이었지만, 여성가객도 있었다.
○ 역할 및 활동
조선 후기 이름난 가객으로 김천택ㆍ김수장ㆍ이세춘ㆍ박효관ㆍ안민영 등이 있다. 이들은 전문음악인으로 주로 가곡을 많이 불렀다. 18세기에 활동한 김수장은 노가재(老歌齋)가단을, 김천택은 아양지계(峨洋之契) 조직해서 활동했다. 김수장의 『해동가요』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에는 이세춘을 비롯한 이름난 가객 56인의 명단이 있어 당시에 많은 가객들이 활동하였음을 알려준다.
가단에는 가객뿐 아니라 악기 연주자들로 소속되어 있었고, 이들은 선비들의 풍류 모임에 참여하였다. 김천택은 거문고 대가 김성기(金聖基)와 함께 활동하였다. 19기에 박효관은 당시의 가객들이 모인 노인계(老人稧)나 승평계(昇平稧)의 중심인물이었다. 박효관의 제자인 안민영은 전국을 유람하며 풍류 활동을 했고, 판소리 명창들과의 교유도 있었다. 『가곡원류』의 편찬자인 박효관과 안민영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박효관은 당시의 가객들이 모인 노인계(老人稧)나 승평계(昇平稧)의 중심인물이었다.
가객은 율회나 풍류방을 다니며 노래하였으나, 19세기 전반 가곡이 궁중악으로 이입되면서 궁중 연향에서 악장을 부르기도 하였다.
가객은 가곡을 불렀지만, 본인이 시조를 짓기도 하였다. 김천택의 시조 작품이 그가 편찬한 『청구영언』에 30수, 김수장의 『해동가요』에 57수가 실려있다. 김수장은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 많은 시조를 지었는데, 그가 편찬한 『해동가요』에 전한다. 박효관과 안민영은 시조를 정리한 『가곡원류』를 편찬하였다. 『청구영언』, 『해동가요』와 더불어 3대 가집(歌集)으로 꼽힌다. 박효관의 시조 13수는 『가곡원류』에, 안민영의 시조는 『가곡원류』에도 다수 있지만 그가 저술한 『금옥총부』에 180여수가 전한다. 박효관의 가곡은 안민영을 거쳐, 하준권ㆍ최수보ㆍ명완벽ㆍ하규일ㆍ이병성ㆍ이주환을 거쳐 전승되고 있다.
가객들은 시조를 노랫말로 삼은 가곡, 가사, 시조 등의 노래를 가창한 전문음악인이면서, 시조를 창작하고 가집을 편찬하는 등의 업적도 남겼다. 남성가객과 여성가객의 활동이 오늘날의 남창가곡, 여창가곡, 남녀창 전통을 일구어냈다.
『가곡원류』 『금옥총부』 『청구영언』 『해동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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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