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궁 밖에서 행차할 때 왕의 앞쪽 행렬에 배치되어 음악을 연주하던 악대
전부고취는 노부(鹵簿)에 포함된 악대로 왕의 모든 예행(禮行)에서 왕이 탑승한 연(輦)의 앞쪽에 배치되어 행악(行樂)을 연주하였으며 후부고취(後部鼓吹)와 짝을 이룬다. 왕비의 행차에서도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명나라에서 보낸 물품을 인도할 때도 행렬에 배치되어 음악을 연주하였다.
왕의 행차에 음악을 연주하는 고취 악대는 고대로부터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예악 정비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종류의 고취가 용도와 편성을 달리하여 정립되었으며, 전부고취는 왕의 행차 시 앞쪽에서 행악을 연주하던 악대로 자리매김하였다.
전부고취의 용도는 『세종실록』 「오례」에서 처음 보이고 『국조오례의』에서 정립되었다. 『국조오례서례』 권2 노부 항목을 보면, 대가노부(大駕鹵簿)ㆍ법가노부(法駕鹵簿)ㆍ소가노부(小駕鹵簿)ㆍ왕비의장(王妃儀仗)ㆍ황의장(黃儀仗)ㆍ홍의장(紅儀仗) 등이 있다. 영조서(迎調書)나 대사(大祀), 중사(中祀)의 친향(親享)을 위한 거가출궁(車駕出宮)에 사용된 대가노부와 법가노부에는 전부고취가 후부고취와 함께 구성되었고, 배능(拜陵), 관사(觀射) 등에 사용된 소가노부와 왕비를 위한 왕비의장에는 전부고취만 구성되었다. 대명의례(對明儀禮)에 설치되는 황의장과 홍의장에도 전부고취가 포함되어 명나라에서 보낸 물건을 인도하며 음악을 연주하였다.
전부고취의 편성은 『세종실록』 「오례」 ‘가례서례’에 전정에 설치하는 고취와 같다고 하였으나,이 편성에 대쟁ㆍ아쟁ㆍ현금ㆍ가야금 등 이동하면서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가 편성되어 있어 행악을 연주하는 전부고취에 적합하지 않다. 『국조오례의』에서도 전부고취의 편성이 분명하지 않다가, 『악학궤범』에 이르면 당비파ㆍ당적ㆍ피리ㆍ대금ㆍ장고ㆍ교방고ㆍ방향 등의 행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편성으로 나타난다.
궁 밖으로 나가는 왕의 거동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데 전부고취는 이를 음악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조오례의』 『세종실록』 「오례」 『악학궤범』
신대철, 「朝鮮朝의 鼓吹와 鼓吹樂」,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5. 임영선, 「조선 초기 고악(鼓樂)과 고취(鼓吹): 대명의례(對明儀禮)를 중심으로」, 『동양음악』 51,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22.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