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악기와 당악기가 혼합 편성된 연주 형태 또는 조선 후기의 정재 반주 악곡
조선 전기에는 향악기와 당악기를 혼합 편성하여 연주하는 형태를 지칭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정재 반주 음악 중의 한 악곡을 지칭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대부터 향악기와 당악기가 합주하는 양상이 기록되기 시작하였고 신악 창제 이후에 출현한 대부분의 악대는 향당교주의 편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부터는 정재 반주에 사용되는 악곡명을 의미하였으며 현재 〈처용무〉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된다.
조선 전기에 향악과 당악, 두 음악 갈래가 혼재되면서 향악기와 당악기가 합주하는 형태가 나타났다. 세종대에 문소전(文昭殿)과 광효전(廣孝殿) 등 원묘(原廟) 제례의 종헌(終獻)에 ‘향악과 당악을 겸용(兼用)하여 〈정동방곡(正東方曲)〉을 연주한다’는 기록이 있다. 『악학궤범』에서 문소전 등 원묘의 종헌을 연주하는 전정악은 향당교주 편성을 갖추었다.
세종 신악(新樂) 창제 후 궁중의례에 속악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전정헌가(殿庭軒架), 전정고취(殿庭鼓吹) 등 새로운 향당교주 편성의 악대가 출현하였다.
1464년 이후 신악 《보태평》, 《정대업》이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되면서 종묘영녕전등가 및 헌가도 향당교주 편성으로 나타났다.
조선 후기에 향당교주는 여러 의궤와 홀기에 연주 형태가 아닌 악곡명으로 표기되었다. 현재 향당교주는 〈처용무〉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선율에 차이가 있을 뿐 《관악영산회상》 〈상령산〉과 매우 유사하다.
향당교주를 통해 조선 초기에 두 음악 갈래가 융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정재 음악의 변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다.
『세종실록』 『(신축)진연의궤』 『악학궤범』
서한범, 「鄕唐交奏考」,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5. 서한범, 「鄕唐交奏와 三絃靈山會相의 上靈山과의 比較」, 『한국음악연구』 6ㆍ7, 한국국악학회, 1977. 이혜구, 「經國大典 取才項目 中의 唐樂과 鄕樂」, 『한국음악연구』 21, 한국국악학회, 1993. 임영선, 「조선 초기 〈정동방곡〉과 향ㆍ당악의 혼재」, 『국악원논문집』 42, 국립국악원, 2020. 임영선, 「조선 초기 향당교주의 중심음에 관한 연구: 『악학궤범』의 향·당악기 산형과 연주 악곡을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44, 국립국악원, 2021. 황준연, 「鄕唐交奏 硏究」, 『국악원논문집』 8, 국립국악원, 1996.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