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구(尹用求: 1853∼1939)가 1885년에 편찬한 칠현금의 악보이다.
칠현금을 위한 기악보이며, 1885년에 윤용구(尹用求)에 의해 편찬되었다. 『칠현금보(七絃琴譜)』와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는 모두 칠현금을 위한 악보인데, 『칠현금보(七絃琴譜)』는 기악보인 반면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는 가곡을 수록한 성악보이다.
○ 체재 및 규격
1책 44장(張), 세로27cm, 가로20cm, 선장(線裝), 매면(每面) 20행(敍: 10행, 調絃法: 14행)
○ 소장처: 연세대학교 도서관
○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칠현금보(七絃琴譜)』 칠현금보서(七絃琴譜敍”의 말미에는 “광서십일년(光緖十一年) 을유동십월(乙酉冬十月) 역수헌(亦睡軒) 윤용구서(尹用求書)”의 기록이 있으므로 편찬년대와 저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광서십일년(光緖十一年)은 1885년에 해당된다. 칠현금보서(七絃琴譜敍)에는 “여추하강마수월(與秋河講劘數月)”의 기록과 “역수헌(亦睡軒) 윤용구서(尹用求書)”의 서명을 종합하여 볼 때 윤용구(尹用求)와 윤현구(尹顯求)가 함께 편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구성 및 내용
『칠현금보(七絃琴譜)』의 수록 내용을 보면 《영산회상》, 〈본환입〉, 〈세환입〉, 〈여민락취타〉, 〈조음〉 등이 있다. 악보는 정간보의 형식으로 1행의 악보를 다시 3개의 소행(小行)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제1소행(小行)은 현명(絃名)을 위에 적고, 아래는 한자로 율명을 적었다. 제2소행(小行)은 한글로 음의 육보를 적었으며, 제3소행(小行)은 왼손가락을 누르는 휘(徽)의 번호를 한자로 적었다.
[악보 차례]
〈本靈山(본령산)〉(1-5장)
〈中靈山(중령산)〉(1-4장)
〈細靈山(세령산)〉(1-5장)
〈加樂還入(가락환입)〉(1-4장) 變長短(변장단)
〈上絃還入(상현환입)〉, 一名三絃還入(일명삼현환입)
〈下絃還入(하현환입)〉
〈念佛(염불)〉
〈打令(타령)〉
〈軍樂(군악)〉
〈界面加樂調(계면가락조)〉
〈兩淸還入(양청환입)〉
〈羽調加樂調(우조가락조)〉
〈本還入(본환입)〉(1-7장)
〈細還入(세환입)〉(1-7장)
〈還出下絃調(환출하현조)〉
〈與民樂(여민락)〉(1-7장)
〈吹打(취타)〉
〈羽調調音(우조조음)〉
〈界面調音(계면조음)〉
한국에는 칠현금의 연주 선율을 악보로 기록한 경우가 매우 적으며, 특히 정간보의 형식으로 기록한 경우는 더욱 드물다. 『칠현금보(七絃琴譜)』에는 오른손이 칠현금의 어느 현에서 연주해야 하는지, 음고가 무엇인지, 왼손이 어느 휘의 위치에서 있어야 하는지 등이 악보에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이는 조선말기의 사람들이 칠현금을 연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중국의 칠현금을 이용하여 조선의 전통 기악곡을 수록한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19세기 말 칠현금의 연주 상황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6집: 우의산수, 아양금보, 칠현금보, 연대소장금보, 졸옹가야금보, 신작금보, 백운암금보, 학포금보, 여창가요록』, 국립국악원, 1984. 최선아, 「조선후기 금론(琴論)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박은옥(朴恩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