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詞)는 당나라 때에 단지 소령(小令, 즉, 令)의 형식만 존재했는데 오대(五代)를 거치면서 간단하고 길이가 짧은 소령(小令)은 감정을 자유스럽게 표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사를 연장시키고 악곡의 악절을 증가시켜 근(近)의 형식을 만들었다. 또한 북송 후기 인종(仁宗: 1023~1063) 때의 유영(柳永, 990 추정~1050)은 만사(慢詞)를 많이 창작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만사(慢詞)라는 사(詞)의 형식도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사(詞)의 분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송나라 강기(姜夔: 1155 추정~1221 추정)의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과 장염(張炎)의 『사원(詞源)』에서 볼 수 있고, 강기(姜夔)는 사(詞)를 영(令)과 만(慢)으로 분류하고 있는 반면에 장염(張炎)은 사(詞)를 영(令)ㆍ근(近)ㆍ만(慢)과 소사(小詞)ㆍ대사(大詞)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명나라 고종경(顧從敬)의 『초당시여(草堂詩餘)』에는 글자 수에 따라 사(詞)를 소령(小令)ㆍ중조(中調)ㆍ장조(長調)로 분류하기도 한다. 『고려사』 「악지」 당악 중의 사악(詞樂)에는 근(近)에 대한 기록이 없고, 영(令)과 만(慢) 두 가지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고려사』 「악지」의 분류 방법은 강기(姜夔)의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에 보이는 초기의 분류 방법과 같다. 장염(張炎)의 『사원(詞源)』에서 말한 근곡(近曲)의 육균박(六均拍)은 바로 가사가 미전사와 미후사로 구분되어 있으며, 미전사와 미후사는 각각 여섯 마디로 구성되어 각각 6박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려사』 「악지」의 사악에는 근(近)의 기록은 없으나, 영(令)에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방식은 송나라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의 분류 방법과 일맥상통하다.
『고려사』 박은옥, 『고려사 악지의 당악연구』, 민속원, 2006. 박은옥, 『고려당악』, 문사철, 2010. 강기(姜夔),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 서긍(徐兢), 『고려도경』. 소철(苏辙), 『난성집(栾城集)』. 이도(李燾),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鑒長編)』. 장염(張炎), 『사원(詞源)』.
박은옥(朴恩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