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는 최치원(崔致遠)이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금환(金丸),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狻猊)의 다섯 가지 향악을 보고 지은 한시이다.
최치원이 다섯 가지 향악을 보고 쓴 한시이다. 여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다섯 가지 향악은 금환, 월전, 대면, 속독, 산예인데, 이 다섯 가지를 향악으로 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라시대 향악의 개념은 연희를 포함한 종합공연의 의미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각각 금환은 농환, 즉 방울놀이, 월전은 유자들의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배우의 놀이와 음악, 대면은 구나의식, 속독은 남색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빠른 움직임, 산예는 백수희에 병연된 사자무를 묘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혜구 교수 등은 향악은 당악에 대립되는 용어로서 서역의 연희가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이미 당악의 대가 되는 향악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雜志)」에 전한다. 최치원이 언제 어디에서 이 다섯가지 향악을 관람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에 농환인(弄丸人), 유자(儒者), 방상시(方相氏), 사자(獅子), 남면(南面)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 대규모로 펼쳐졌던 다양한 향악을 보고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금환에 해당하는 백제의 농주지희(弄珠之戱), 고구려 고분벽화의 방울놀리기와 같은 연희가 있었고, 고려시대 궁중에서 광대희가 있었던 사례는 예종 11년 12월에 왕이 참관한 가운데 양대로 나누어 재주를 바치는 쟁이정기(爭而呈技)하는 광대희의 기록이 전한다. 또한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구나행〉에 의하면 화산대설치와 광대화희가 베풀어지던 군신연 및 구나의식, 그리고 1인 처용희에 관한 기록이 있어 향악잡영오수에 소개된 공연형태 중 일부와 유사하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같은 고려시대의 복합적인 풍속은 지속되었으며 더욱 다양화되어 광대희를 관람하는 관나(觀儺), 함께 군신연 및 사신연에서 화희를 베풀던 관화(觀火), 진자(侲子), 방상시와 창수(唱帥) 등의 나자(儺者)가 귀신 쫓는 행위를 하는 구나(驅儺), 그리고 1인 처용희에서 오방처용무로 발전되고 이를 주제로 만들어진 관처용(觀處容)의 의식이 있었다.
○ 구성요소 및 원리
금환: 몸을 돌리고 팔을 흔들며 방울 놀리니(廻身掉臂弄金丸),
달은 돌고 별은 떠 다녀 눈 안에 가득하네(月轉星浮滿眼看).
의료의 재주인들 이보다 나으랴(縱有宜僚那勝此),
동해 바다 파도 소리 잠잠하겠네.(定知鯨海息波瀾).
금환은 금색의 공으로 일반적으로 방울받기, 즉 농환(弄丸)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에서 궁정 농환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구체적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성현이 쓴 〈관나〉 시에 농환과 관련된 부분이 전하는데, 당시 농환을 보고 ‘매우 진짜 같아서 정교한 아름다움이 있다[眞似宜僚巧]’로 표현되고 있다.
월전: 어깨를 높이고 목을 움츠리고 머리털은 빳빳(肩高項縮髮崔嵬),
팔소매를 걷은 군유(群儒)가 술잔 다툰다.(攘臂群儒鬪酒盃),
노랫소리를 듣고서 모두 웃어 젖히며(聽得歌聲人盡笑),
밤 들어 꽂은 깃발이 새벽을 재촉하네.(夜頭旗幟曉頭催).
월전은 묘사된 바에 의해 곱사등이, 혹은 곱추 광대와 유학자들이 모여서 밤을 세며 주연을 베푸는 장면으로 해석되는데, 이와 관련된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기록을 찾기 어렵다. 단, 조선시대 광대의 재주를 군신이 모여 감상했다는 내용은 서거정의 〈후원관화입시(後苑觀火入侍)〉 이수(二首)에도 등장한다. 시에 의하면 호걸희와 함께 오색 무지개를 토해내는 잡희와 함께 신하들이 함께 춤을 추며 즐겼다고 되어 있다. 또한 조선 성종때 문신 성현이 쓴 『허백당집』의 〈관화지례(觀火之禮)〉에 의하면 밤 늦도록 군신의 주연에 가면을 쓴 광대가 등장하여 등 위에 목판을 지고 불을 댕기어 주머니가 터지고 불이 다 타도록 소리치며 춤추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성종 12년(1481) 상소문에 의하면, 성종이 인근국 사신들과 함께 즐겁게 기희(技戲)를 감상하고 베[布]를 넉넉하게 포상하는 것에 대해 제(齊)나라의 배우(俳優)ㆍ주유(侏儒)가 앞에 나아가 희롱하는 것을 보고 베어 죽이게 하였던 중국의 사례를 들어 성덕(聖德)을 일깨운 사례가 있다.
대면: 황금색 가면을 썼다 바로 그 사람(黃金面色是其人),
구슬 채찍을 손에 쥐고 귀신을 부리네(手抱珠鞭役鬼神).
빨리 뛰다 천천히 걷다 한바탕 춤은(疾步徐趨呈雅舞),
너울너울 봉황새가 날아드는 듯(宛如丹鳳舞堯春).
대면은 황금면이라고 하여 황금의 가면을 썼다고 하는데, 『고려사』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에 의하면 황금빛 사목(四目: 4개의 눈)의 가면을 쓴 방상시(方相氏)와 적책(赤策: 붉은 채찍)을 든 집사자(執事者:일을 주관하는 인물)의 기록과 유사하다. 조선시대에도 『세종실록』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에 의하면 방상시(方相氏) 4인은 황금 사목(黃金四目)의 가면(假面)을 썼다고 하고, 채찍은 4편대의 진자 중 각 5인, 총 20인이 집편자을 맡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속독: 쑥대머리 파란 얼굴의 이상한 사람들이(蓬頭藍面異人間),
떼를 지어 뜰에 와서 난새춤을 추네(押隊來庭學舞鸞),
북소리는 둥둥둥 바람은 살랑살랑(打鼓冬冬風瑟瑟),
남으로 달리고 북으로 뛰며 그칠 줄을 모르네(南奔北躍也無端).
일반적으로 속독은 남색 가면을 착용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와서 난새춤을 추는 내용으로 속독지방 전래로 속특(粟特, Soghd)에서 전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중국 송말 원초 저명한 문사인 유훈(劉壎)이 지은 〈관나(觀儺)〉 시에 의하면 “밤이 깊었는데, 싹둑 자른 머리에 철골은 늘어지고(夜乂蓬頭鐵骨朶), 붉은 옷에 남색 얼굴의 이는 눈에서 불을 뿜는 구나(赭衣藍面眼迸火).”라는 구절에 의해, 앞의 '대면'에 이어 축역의 행위로서 관나시 싹둑 자른 모리에 늘어진 뼈마디로 남색 얼굴을 한 인물이 여기 저기로 춤추듯이 몰아내며 구나의식으로 축역을 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산예: 멀고 먼 사막을 건너 만리길을 오느라고(遠涉流沙萬里來),
털옷은 다 찢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썼네(毛衣破盡着塵埃).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치며 인덕을 길들이니(搖頭掉尾馴仁德),
뛰어난 그 재주가 어찌 온갖 짐승과 같으랴(雄氣寧同百獸才).
산예는 사자춤이 유사(流沙), 즉 고비사막을 거쳐왔다고 그 유래를 밝히고 있어서 서역 계통의 사자춤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은 주로 사자에만 집중되어 왔다. 그런데 시의 내용 중 마지막 구절에 의하면 사자의 움직임은 다른 짐승들의 재주, 즉 백수재(百獸才)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내용에 의해, 당시 최치원이 본 산예는 여러 백수희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자와 관련된 음악기록으로는 진흥왕이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지은 12곡 가운데 여덟 번째 곡에 사자기(獅子伎)가 있으며, 사자무와 함께 백수희가 언급된 최초의 내용은 고려시대 말 이색(李穡, 1328~1396)이 쓴 시 〈구나행〉에도 등장한다. 〈구나행〉에 의하면 구나의(축역의식) 절차에 이어서 연출되었던 각종 나희가 묘사되어 있는데, 오방귀무(五方鬼舞), 사자무(獅子舞, (백택용(白澤踊)), 토화(吐火, 불토하기)와 탄도(呑刀, 칼삼키기), 서역(西域)의 호인희(胡人戱), 처용희(處容戱), 백수희(百獸戱)가 그것이다. 기타 나희의 하나로서 사자와 관련된 내용은 조선 성종 19년 사신으로 조선에 온 동월(董越, 1430~1502)이 지은 『조선부(朝鮮賦)』에 소개된 도상나례와 관련된 내용 중 “사자와 코끼리를 장식한 것은 벗긴 말가죽을 뒤집어쓴 것이고”, 인조 4년(1626) 편찬된 『나례청등록』에 의하면 사자(獅子) 담지군으로 36명이 편성되었다는 기록에도 보인다.
최치원이 쓴 향악잡영오수의 내용에 의하면, 당시 향악의 의미는 첫째, 음악이 종합공연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둘째 ‘당악’의 외래종에 대가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지배층의 의식음악이 아닌 ‘민간’, 혹은 ‘토속’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따라서 신라시대 대표적인 유자이자 고위 관리였던 최치원이 본 향악은 당시 공연 문화를 알게 해줄뿐만 아니라 왕실과 민간 문화가 교류했던 연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려사』 「악지」 『목은시고』 『목은집』 『삼국사기』 「잡지」 『악학궤범』 『원사(元史)』 『용재총화』 『은거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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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영(尹娥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