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은 종묘제례의 초헌례(初獻禮) 절차에 등가(登歌)에서 연주하는 《보태평》의 아홉 번째 곡이며, 선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26년(인조 4)에 첨입한 것이다.
중광은 1626년(인조 4)에 선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김류가 지은 악장을 〈역성〉의 선율에 얹어 《종묘제례악》에 첨입한 곡이다.
중광의 선율은 〈보태평〉의 〈역성〉과 같다. 노랫말은 선조가 황정욱을 명나라로 보내 왕실 선계(先系)에 관한 『대명회전』의 기록 오류를 바로잡은 일과, 여진 오랑캐의 반란을 진압하여 북방 강역을 수호한 일을 내용으로 하였다.
이처럼 악장의 내용이 문무(文武)의 두 뜻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중광의 첨입 위치가 《보태평》과《정대업》을 오가며 여러 차례 변동되었다. 당초 《정대업》에 두었다가, 초헌(初獻) 악장의 자구가 아ㆍ종헌(亞ㆍ終獻)의 악장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태평》의 〈정명〉 다음에 두기도 했다. 『악원고사』에서는 《정대업》의 〈혁정〉 뒤에 있으며, 『종묘의궤』에서는《보태평》의 〈대유〉 다음과《정대업》의 〈혁정〉 다음에 두었다. 한편 1743년(영조 19)에 인입(引入)장과 인출(引出)장을 제외한 《보태평》 악곡 수를 아홉으로 만들기 위해 〈현미〉와 〈정명〉을 합하여 〈현미정명〉이라 하였다가 다시 분리하고, 〈용광〉과 〈정명〉을 하나로 합쳐 〈용광정명〉이라 하면서, 〈중광〉을 아홉 번째 곡으로 첨입했다. ‘중광’이라는 악곡 명은 악장의 ‘준덕중광(峻德重光)에서 따온 것이다.
○ 음계, 박법, 장단 중광은 황(黃:C4)·태(太:D4)·중(仲:F4)·임(林:G4)·남(南:A4)의 황종 평조이고, 네 글자마다 박을 한 번 친다[四字一拍]. 박 여덟이 한 곡을 이루었으나[八拍一聲] 현재는 박 넷이 한 곡을 이루는[四拍一聲]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중광은 인조대에 첨입되었으므로, 현행 《종묘제례악》이 『세조실록』 악보의 장구가락을 현행 리듬에 적용한 것과 달리 『대악후보』의 장구가락을 현행에 적용하였다. 국악전집 제18집 『종묘제례악』에 수록된 중광의 장구점은 『대악후보』 악보에 비해 장구점의 위치가 변화된 곳이 한 군데, 형태가 변화된 곳이 두 군데 나타난다.
오황선조(於皇宣祖) 아아! 위대한 선조 임금께서는,
준덕중광(峻德重光) 높은 덕으로 거듭 빛을 내셨네.
격천소무(格天昭誣) 중국에 가서 잘못됨을 밝히시고,
정아종방(正我宗祊) 우리 종계를 바로 잡으셨네.
항의제흉(抗義除匈) 의를 지켜 흉노를 제거하고,
전아봉강(奠我封疆) 우리 강역을 정하셨네.
수희계후(受釐啓後) 복을 받아 앞길 여니
유구치창(悠久熾昌) 유구하게 빛나고 창성하리.
중광은 《종묘제례악》의 한 곡이지만, 다른 곡과 달리 1626년(인조 4)에 첨입되었으며, 중광이 첨입됨으로써 현재 전승되는 《종묘제례악》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대악후보』 『대한예전』 『보태화지악』 『속악가사』 『속악원보』 『악원고사』 『악장요람』 『조선악개요』 『종묘악장』 『종묘의궤』 『춘관통고』
『대악후보』, 국립국악원, 1986. 『종묘의궤』, 국립국악원, 1990. 김종수, 『역주 증보문헌비고』, 국립국악원, 1994. 송지원ㆍ이숙희ㆍ김영숙, 『종묘제례악』, 민속원, 2008.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보존회, 『종묘제례악』, 은하출판사, 2018. 윤호진, 『역주 악원고사』, 국립국악원, 2006. 김영주, 「조선 중기 종묘악장에 대한 사적 고찰」 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조성욱, 「종묘제례악의 장고점 변천의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