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문신 채홍철(蔡洪哲, 1262~1340)이 지은 노래
자하동은 고려 말 채홍철이 지은 노래로, 『고려사』의 고려속악 항목에 자하동의 한문 노랫말과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노랫말은 채홍철이 자하동 중화당에서 기로(耆老)들과 더불어 펼친 연회의 장면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대악후보』에 〈자하동일(紫霞洞一)〉ㆍ〈자하동이(紫霞洞二)〉의 악보가 전한다.
자하동은 고려의 시중(侍中) 채홍철이 지은 것이다. 채홍철은 자하동에 살았고, 날마다 자신의 집 중화당에 기로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마음껏 즐겼는데, 자하동을 지어 자기 집 여종에게 부르게 하였다.
자하동 노랫말의 내용은 채홍철이 자하동 중화당에서 기로(耆老)들과 더불어 펼친 연회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다. 노랫말은 구의 길이가 불규칙한 장단구(長短句)의 한시와 우리말, 이어(俚語)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려사』에 이어(俚語) 노랫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고려사』에 기록된 〈자하동〉 노랫말의 원문과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가재송산자하동(家在松山紫霞洞) 집이 송악산의 자하동에 있고,
운연상접중화당(雲烟相接中和堂) 중화당은 구름과 안개와 서로 닿아 있네.
희문금일기영회(喜聞今日耆英會) 오늘 기영회가 열린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는데.
래헌일배연수장(來獻一杯延壽漿) 찾아와서 바치는 한 잔의 수장을 맞이하네.
일배가획천년산(一杯可獲千年筭) 한 잔이면 천년의 수명을 얻네.
원군일배부일배(願君一杯復一杯) 원컨대 그대들은 한 잔에 또 한 잔을 들어라.
세상춘추도부관(世上春秋都不管) 세상의 봄과 가을을 도무지 상관하지 마시라.
지당생춘초원류편명금(池塘生春草園柳徧鳴禽) 연못의 둑에는 봄풀이 돋아나고, 정원의 버들에는 우는 새가 가득하네.
삼한원로개연중화당(三韓元老開宴中和堂) 삼한의 원로들이 중화당에서 잔치를 여네.
백발대화수파김상상권주(白髮戴花手把金觴相勸酒) 흰 머리카락에 꽃을 꽂고 손에는 금술잔을 잡고, 서로 술을 권하네.
수도풍류승신선역하상(雖道風流勝神仙亦何傷) 풍류로움이 신선보다 낫다고 말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월류금주태평년(月留琴奏太平年) 달빛이 거문고에 머물고, <태평년>을 연주하니,
원공명정막사취(願公酩酊莫辭醉) 원컨대 공들께서는 실컷 마셔서 취하기를 사양하지 마시라.
인생무처사존전(人生無處似尊前) 인생에는 술통 앞보다 나은 곳이 없나니,
단송백년무과주(斷送百年無過酒) 결단코 백년을 술을 지나치지 않고 보내리.
배행도수막류잔(杯行到手莫留殘) 술잔이 손에 이르면 남기지 마시라.
은근위공가일곡(殷勤爲公歌一曲) 정중하게 공들을 위해 한 곡을 노래하나니,
시하곡조만년환(是何曲調萬年懽) 이것이 무슨 곡조인가? <만년환>이라네.
차생무부견희황(此生無復見羲皇) 이 생애에 다시는 희황을 만나지 못할 테니,
원군노력일일음(願君努力日日飮) 원컨대 그대들은 애를 써서 날마다 마시라.
태평신세유취향(太平身世惟醉鄕) 태평시절의 신세를 오직 취향에 두노라.
자하동중화당관현성리(紫霞洞中和堂管絃聲裏) 자하동 중화당 음악 소리 속에서.
만좌가빈개시삼한국로(滿座佳賓皆是三韓國老) 좋은 손들이 자리에 가득한데, 모두 삼한의 국로들.
백발대화수파김상상권주(白髮戴花手把金觴相勸酒) 흰 머리카락에 꽃을 꽂고, 손에는 금술잔을 잡고, 서로 술을 권하네.
봉래선인각시미풍류(蓬萊仙人却是未風流) 봉래산의 선인이 도리어 풍류스럽지 않다고 이르리오.
운운이어(云云俚語) …… 이하 우리말
조선후기에 편찬된 『대악후보』에 노랫말이 기록되지 않은 〈자하동일〉ㆍ〈자하동이〉의 악보가 전한다. 〈자하동일〉은 선율이 복잡하고 느리며, 〈자하동이〉는 〈자하동일〉 선율 중 중요한 음만 추출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선율이 간단하고 빠르다. 궁(宮)을 중심으로 궁의 아래 위 다섯 음으로 표기한 오음약보로 기보되어 있고, 선법은 계면조로 명시되어 있다. 『대악후보』의 자하동은 16정간을 한 행으로 하는 68행으로 되어 있는데, 여음 선율에 따라 전체 악곡은 제1~36행, 제37~58행, 제59~68행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자하동은 고려 의종 때 정서가 지은 〈정과정〉과 관련된 〈진작〉의 선율과 형식을 차용하여 만들어졌고, 조선시대 〈횡살문(橫殺門)〉 선율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자하동은 노랫말은 채홍철이 새로 지은 것이지만, 선율은 기존에 있던 〈진작〉의 것을 변화시켜 만들어졌다. 악곡의 속도에 따라 느린 〈자하동일〉과 빠른 〈자하동이〉가 악보에 전하는 점도 〈진작〉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진작〉의 영향을 받은 자하동 선율은 조선시대 〈횡살문〉 선율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자하동은 〈진작〉 계통의 악곡의 선율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악곡이라 할 수 있겠다.
『고려사』 『대악후보』 이혜구, 『보정 한국음악사』, 국립국악원, 2011. 장사훈,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여운필, 『역주 고려사 악지』, 도서출판 월인, 2011. 강혜진, 「『대악후보』 소재 〈자하동1〉에 대한 음악적 연구: 〈진작1〉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45, 2022. 송지원, 「고려시대 작곡가 채홍철」, 『문헌과 해석』 37, 2006. 정경란, 「〈자하동〉의 가사와 음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학위논문, 1988. 허철회, 「중암 채홍철의 시가연구」, 『한국문학연구』 14, 1992.
강혜진(姜惠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