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신증가령(玄琴新證假令), 금보신증가령(琴譜新證假令), 금보신증가령 단(琴譜新證假令 單)
신성(申晟, 1623∼1680)이 1680년에 완성한 거문고 악보집
신성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였고, 스무 살 때 거문고를 탈 줄 알았으며, 장악원의 악관(樂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신성은 여러 집안의 거문고 악보에서 결함을 발견하였고, 1680년(숙종 6) 홍천(洪川) 현감을 지낼 때 병에 걸려 요양하던 중, 전에 모아 만들어두었던 금보를 날마다 고치고 고증하여 『신증금보』라 이름 붙였다.
『신증금보』는 『현금신증가령』, 『금보신증가령』으로도 불린다. 『현금신증가령』은 원 소장자 이혜구가 발문 내용에 근거하여 붙인 이름이고, 『금보신증가령』은 국립국악원에서 발행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2권에 수록된 악보의 표제명이며, 국립국악원에 소장된 청사본 악보의 표제명은 『금보신증가령 단』 이다. 원본은 6ㆍ25 전쟁 때 없어졌고, 국립국악원에 청사본으로 떠둔 것에 모필(毛筆)로 가필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신증금보』의 서문의 시작과 끝 부분에는 ‘금보신증가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문의 수지명(手指名, 손가락 이름을 설명한 부분), 지법, 현법, 탄법, 합자법 중 수지명만 제외하면 모두 『악학궤범』에서 거문고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하거나 요약하여 기록한 것이다. 고려대 소장 『금보』A는 『신증금보』의 거문고 연주법과 기보법에 관한 내용을 그대로 전사하였다.
서문 다음에 이어지는 ‘신증금보’라고 기록된 부분에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악보에는 평조 〈만대엽〉, 평조와 평조계면조의 〈중대엽〉 1ㆍ2ㆍ3, 〈북전〉, 〈삭대엽〉 1ㆍ2ㆍ3과 우조의 〈중대엽〉 1ㆍ3, 〈북전〉, 〈삭대엽〉 2ㆍ3, 우조계면조의 〈중대엽〉 1ㆍ2, 〈삭대엽〉 2ㆍ3, 〈평조조음〉, 〈우조 조음〉, 〈여민락〉, 〈보허자〉, 〈영산회상〉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발문에 〈여민락〉 〈보허자〉 〈영산회상〉 등의 별곡은 세종 때 박연과 성현이 교정한 것을 그대로 따라서 가감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산회상〉은 앞부분 일부만 남아 있다. 『신증금보』 발문에는 악보에 ‘강(腔)’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은 악보에 빈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고, 정간보의 대강(大綱)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신성은 발문에서 일부 금보에 전하는 속된 음악을 지적하고, 『신증금보』에 기록한 음악은 너무 순박하거나 소략하지 않고, 절주가 어긋나지 않고, 5음이 실처럼 이어진다고 하였다. 또한, 거문고의 바른 소리가 이 악보에 있고, 이 악보가 세상의 음란한 소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신증금보』의 〈만대엽〉은 『양금신보』의 것을 옮겨서 쓴 것이다. 〈중대엽〉, 〈북전〉, 〈삭대엽〉은 평조ㆍ평조계면조ㆍ우조ㆍ우조계면조의 4개 악조 체계로 구분되어 수록되어 있고, 〈중대엽〉과 〈삭대엽〉은 1ㆍ2ㆍ3으로 분화되어 있다. 『신증금보』는 관찬악보가 아니지만, 신성이 장악원 악관을 지낸 영향으로 인해 서문에 『악학궤범』의 거문고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가사가 있는 〈여민락〉 10장 전체가 수록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신증금보』는 신성의 음악관이 반영된, 병자호란 이후 거문고 음악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악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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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진(姜惠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