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권근이 지은 경기체가
〈상대별곡〉은 조선 초기 권근(權近, 1352~1409)이 〈한림별곡〉과 〈신도가〉의 영향을 받아 지은 경기체가 양식의 악장이다. 창작 시기는 권근이 사헌부 대사헌 직을 맡았던 1400년(정종2) 3~7월로 추정된다. 〈상대별곡〉은 주로 사헌부의 연회에 사용되었고, 군신과 신료 간의 화합을 표현한 궁중 악장으로 전승되었다.
‘상대((霜臺)’란 사헌부의 별칭이다. 〈상대별곡〉은 권근이 사헌부 대사헌 직을 맡았을 때 〈한림별곡〉과 〈신도가〉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경기체가이다. 〈한림별곡〉이 예문관 잔치에 사용된 것처럼 〈상대별곡〉은 사헌부 잔치에 사용되었고, 〈상대별곡〉에는 〈신도가〉와 같이 공간적 배경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악장가사』의 속악가사 항목에 〈상대별곡〉의 노랫말이 기록되어 있다. 1~4장 노랫말은 〈한림별곡〉과 유사한 형태로 되어 있으나, 마지막 5장 노랫말은 변화된 형태로 되어 있고, 엽(葉)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다. 즉, 〈상대별곡〉은 〈한림별곡〉의 영향 아래 만들어졌으나, 5장의 파격은 〈한림별곡〉과 변별된다.
1장 원문
화산람(華山南) 한슈븍(漢水北) 쳔년승디(千年勝地)
광통교(廣通橋) 운죵개(雲鐘街) 건나드러
락락댱숑(落落長松) 뎡뎡고ᄇᆡᆨ(亭亭古栢) 츄상오부(秋霜烏府)
위 만고쳥풍(萬古淸風)ㅅ 경(景) 긔 엇더ᄒᆞ니잇고
엽(葉)
영웅호걸(英雄豪傑) 일시인ᄌᆡ(一時人才)
영웅호걸(英雄豪傑) 일시인ᄌᆡ(一時人才)
위 날조차 몃분니잇고
1장 번역
화산의 남쪽, 한강의 북쪽은 천년을 내려온 명승지에
광통교 건너 운종가로 들어가면
낙락장송 우거지고 오래되고 우뚝 자란 잣나무에 에워싸인 서릿발 같은 사헌부
아아, 오랜 세월동안 맑은 기백의 광경 그 어떠합니까
엽
영웅호걸이며 당대의 인재여
영웅호걸이며 당대의 인재여
아아 나까지 모두 몇 분입니까
5장 원문
초ᄐᆡᆨ셩음(楚澤醒吟)이아 녀는 됴ᄒᆞ녀
록문댱왕(鹿門長往)이아 너는 됴ᄒᆞ녀
명량샹우(明良相遇) 하쳥셩ᄃᆡ(河淸盛代)예
총마회집(驄馬會集)이아 난 됴이다
5장 번역
초나라 연못가에서 술 깬 채 읊조리는 굴원과 같은 삶이 너는 좋으냐
녹문산에 일생동안 숨어 지내는 방덕공과 같은 삶이 너는 좋으냐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는 얻기 힘든 이 태평성대에
청총마 타고 모인 인재들의 잔치가 나는 좋다네
제1장은 노래의 배경인 한양과 사헌부 공간을, 제2장은 사헌부 관원의 출근 모습을, 제3장은 사헌부 관료 간의 협의와 군신 간의 협치를, 제4장은 사헌부 감찰단의 퇴청 이후 벌인 잔치 모습을 묘사하였다. 제5장은 정치 의식을 공유한 사헌부 관료 집단의 자긍심과 포부를 집약적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냈다.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악학편고』에서 〈상대별곡〉이 세종 때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에는 〈상대별곡〉은 권근이 지은 것으로, 사헌부의 소미연(燒尾宴)에서 공인(工人)으로 하여금 창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하필기』에도 양촌(陽村, 권근의 호)이 소미연에서 〈상대별곡〉을 읊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기반으로 〈상대별곡〉은 권근이 사헌부 대사헌 직에 있던 1400년(정종2) 3~7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림별곡〉이 예문관 연회에 주로 사용되었듯이 〈상대별곡〉은 사헌부 연회에 주로 사용되었다. 『용재총화』에는 〈상대별곡〉이 사헌부의 허참례(許參禮)에 사용된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연산군 11년(1505), ‘상대별곡체(霜臺別曲體)’에 따라 곡을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연산군대에 〈상대별곡〉은 새로운 악장 제작의 모범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별곡〉은 김구(金絿, 1488~1534)가 지은 경기체가 〈화전별곡(花田別曲)〉에도 영향을 끼쳤다.
〈상대별곡〉은 궁중의 연향 뿐만 아니라 사연에서도 가창되었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충효(忠孝)를 좌우명으로 삼은 손순효(孫舜孝, 1427~1497)가 친구와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크게 취하면 〈상대별곡〉의 ‘임금은 밝고 신하는 곧다’라는 의미의 노랫말 ‘군명신직(君明臣直)’을 노래하고, 잔치에서 기생들에게 이 노랫말을 부르게 하였고 한다. 즉, 〈상대별곡〉은 군신의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고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별곡〉은 공동체의 존숭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군신과 신료 간의 화합을 표현한 경기체가 형식의 궁중 악장이다. 〈한림별곡〉과 〈신도가〉의 맥을 잇는 한편, 경기체가 작품의 모범으로 인식되어 〈화전별곡〉과 같은 후대 경기체가 제작에 영향을 끼쳤으므로 조선시대 악장의 변천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성종실록』 『악장가사』 『악학편고』 『양촌집』 『연산군일기』 『용재총화』 『임하필기』 『증보문헌비고』 김명준, 『악장가사』 역수, 도서출판 다운샘, 2004. 조규익, 『고려속악가사ㆍ경기체가ㆍ선초악장』, 한샘, 1993. 길진숙, 「16세기 초반 시가사의 흐름: 김구의 시가작품을 중심으로」, 『한국시가연구』 10, 2001. 김명준, 「〈상대별곡〉의 주제와 의미」, 『한국문학과 예술』 48, 2023. 전유재, 「「상대별곡」에 나타난 화자의 시선과 텍스트 미의식」, 『고전문학연구』 41, 2012. 최용수, 「권근의 「상대별곡」에 대하여」, 『한국시가연구』 1, 한국시가학회, 1997.
강혜진(姜惠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