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둥근 두 개의 놋쇠판을 한손에 잡고 서로 부딪쳐 연주하는 타악기.
조선시대 궁중정재인 향발무에 무구로 쓰인 타악기이다. 자바라의 하나로 냄비 뚜껑같이 생긴 아주 작은 두 개의 놋쇠판을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낸다.
향발은 서양 악기 심벌즈처럼 생긴 자바라 계통의 타악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바라 계통의 악기는 시대, 지역, 용도, 크기,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기록되었다. 고려시대 군대 행진에 북ㆍ호적 등과 함께 사용된 요발(鐃鈸), 민간과 불교음악에 쓰인 발(鈸/鉢), 바라(哱囉) 등의 명칭이 있으며, 군영 악대에서는 ‘자바라’로 불렸다. 향발은 조선시대 궁중정재인 향발무에 무구로 쓰이며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설」과 권8 「향악정재악기도설」에 소개되었다. ‘동발[鈸]을 울린다[響]’는 뜻으로 무구를 지칭하는 용어이며, 향발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향발의 사용은 향발무와 역사를 같이 한다. 조선 후기 『무신진찬의궤』 「악장」의 원주 기록에서는 향발무의 유래에 관하여, “중국 당나라 궁중 연회악의 한 종류인 ‘동발상화’를 본뜬 것”이라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전기에 창안한 향악정재로, 세종조에 향발정재는 항상 연습해야 하는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연산군은 향발정재에 쓸 향발 20부를 바삐 만들어 들이라고 하기도 했다. 숙종 45년(1719) 기해진연에서 기로신(耆老臣)들에게 잔치에 베풀면서 향발무를 공연하게 하였으며, 영조 20년(1744) 갑자진연에서 외연(外宴)의 제3작 절차에 무동이 향발무를 추도록 정하기도 하는 등, 이 외 순조조 이후 각종 의궤에 향발무는 빠지지 않고 추어진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를 통틀어 즐겨 연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향발무는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에 무보가 전하며 시대별 무원(舞員)의 수에 변화가 많으나, 무구 향발은 조선 후기 연향의궤인 『무자진작의궤』(1828), 『기축진찬의궤』(1829), 『무신진찬의궤』(1848), 『정해진찬의궤』(1890), 『임인진연의궤』(1902)의 악기도설에 의하면 제도와 모양은 거의 같다.
① 구조와 형태
『악학궤범』에 의하면, 향발은 놋쇠를 펴서 만든다. 뒷면 가운데에 사슴가죽 끈을 달고, 오색 매듭을 늘어뜨린다. 『악학궤범』의 향악정재악기로 함께 소개된 동발과 모양이 같으나, 동발의 지름은 4촌 7푼이고 향발은 지름이 2촌 1푼으로 작다. 동발은 처용무의 무구로 쓰이고, 불교의식에서 사용되었다.
『기축진찬의궤』(1829), 『무신진찬의궤』(1848), 『정해진찬의궤』(1890) 에 「악기풍물」의 향발 재료가 기록되어 있으며, 유소에 사용된 실이 5색진사, 6색융사라는 차이가 있다.
② 연주 방법과 기법
한 사람마다 두 쌍씩 가지는데, 향발무를 출 때 두 손의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집게)손가락에 각각 하나씩 붙들어 매고 마주쳐 소리를 낸다. 반주 음악에 맞추어 매 장단에 친다. 향발무의 가장 핵심적인 춤사위는 향발을 치는 동작으로, 향발을 칠 때에는 두 번 또는 세 번씩 엇바꾸어 치고, 춤의 대형은 서로 마주어 보는 대무(對舞)와 서로 등지고 추는 배무(背舞)로 변화를 꾀한다.
『증보문헌비고』 『악학궤범』 『무자진작의궤』 『기축진찬의궤』 『무신진찬의궤』 『정해진찬의궤』 『임인진연의궤』
장사훈, 『한국악기대관』, 한국국악학회, 1969. 최윤희, 「조선후기 여령정재 복식과 무구 연구」, 안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3.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