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때 신라의 현악기 금(琴)을 담당한 악공.
신라의 금은 212년(내해왕 17)에 물계자(勿稽子)가 연주한 기록이 있고, 자비왕(458~478) 때 백결선생이 방아소리를 내기 위해 연주한 금(琴)이 있다. 백결선생이 신라의 금으로 연주한 곡은 대악(碓樂)이며, 이 곡은 807년 대금무(碓琴舞)로 전승되었다. 대금무를 연행할 때도 신라의 금이 사용되었다.
백결선생 시대 신라 금의 형체는 4~5세기 신라 토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악기에 양이두(羊耳頭)가 있는 특징을 지녔다. 689년(신문왕 9) 신라 왕실 잔치 때 하실열무, 사내무, 한기무, 상신열무, 소경무, 미지무를 연행할 때 금척(琴尺) 1인이 편성되었고, 807년(애장왕 8) 1369 사내금(思內琴)과 대금무를 연행할 때도 금척이 편성되었다. 금척의 활약은 일본 황실에까지 확대되었고, 일본인들은 신라의 금을 ‘신라금(新羅琴)’으로 기록하고, ‘시라기고토(しらぎこと)’라 불렀다.
『삼국사기』, 일본후기, 『일본문덕천황실록』 김성혜, 「신라토우의 음악사학적 조명(1): 신라고를 중심으로」, 『韓國學報』, 91,92, 『일지사』, 1998, 61-101쪽 및 『신라토우 속의 음악과 춤』, 민속원, 2009, 9-58쪽. 김성혜, 「정창원 신라금의 가야금 관련에 대한 일고찰」, 「악성 우륵의 생애와 대가야의 문화」, 고령군 대가야박물관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6, 177-207쪽 및 『정창원의 신라금』, 「도상을 통해본 통일신라음악 연구」, 민속원, 2016, 188-215쪽에 복간.
김성혜(金聖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