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682년 신문왕이 동해 용(龍)에게 받은 대나무로 만든 신비로운 적(笛
이 적(笛)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에는 날이 개는 등 숱한 어려움이 한순간에 잠식되므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이름하였다. 693년(효소왕 2)에 이 적이 국선(國仙) 부례랑(夫禮郞)을 무사히 귀환시키는 사건이 있었기에 이 악기를 다시 ‘만만파파식적’이라 이름하였다. 만파식적의 실체는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유적에 새겨진 도상 자료에서 엿볼 수 있는데, 도상 자료의 종류는 682년 감은사 서탑사리함, 7세기 후반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 판불 중 횡적 주악상 등이 대표적이다. 만파식적의 실체에 관하여 음악학자는 ‘횡적(橫笛)’ 혹은 ‘삼죽의 모체’, ‘대금(大笒)’ 등으로 해석하며, 역사학자는 ‘황종관(黃鍾管)’, ‘쌍피리’로 해석한다. 만파식적을 ‘황종관(黃鍾管)’과 ‘쌍피리’로 보는 견해는 신라사 관련 문헌에 황종관과 쌍피리에 대한 기록이 없고 고고학 자료 역시 지금까지 발굴된 사례가 없기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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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혜(金聖惠)